소고기 등급기준 ‘마블링’은 자본의 음모

조홍섭 2008.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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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독서] <잡식동물의 딜레마>

 

잉여 옥수수 처분위해 사료로 써 ‘음식 세계화’
값싼 고기 얻으려 소에게 소 먹이는 비극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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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과 조류인플루엔자의 여파가 애꿎은 단체급식소와 식당으로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은 급식소에서 나눠준 소고깃국을 거들떠보지 않고 삼계탕 등 식당들도 손님이 줄어 울상이다. 보수언론에선 “광우병 괴담 때문에 못 살겠다”는 한우 사육농가와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강조하며, 광우병에 대한 ‘철없는’ 문제제기를 겨냥하고 나섰다.

 

지난번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 파동 때도 시민들은 소비를 줄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런 반응은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가. 이럴 때마다 장관과 사회지도층이 나서 시식행사를 함으로써 대중의 무지함을 간접적으로 나무랐다. 익힌 닭고기에 조류바이러스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면서도 선뜻 먹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을 먹을지를 놓고 혼란에 빠져 있는 미국인의 식생활을 근본적으로 성찰한 책 <잡식동물의 딜레마>(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다른세상 펴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음식은 문화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가지 않고 만드는 과정이 투명하지 않은 것이라면, 음식이든 뭐든 선택할 이유가 없다.

 

치약, 일회용기저귀, 잡지표지 광택까지도 옥수수

 

나아가 그는 요즘의 음식에서 세계화의 그림자와 그것을 극복할 전망을 본다. “음식이 세계화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수많은 가치의 강력한 메타포”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기농 달걀에 조금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결정은 세계화의 획일적 음식문화에 저항하는 정치적 행위가 된다.

 

그가 산업적 음식사슬에서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옥수수이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4만5천 가지의 물품을 조사했더니 넷 중 하나에 옥수수가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옥수수로 만든 원료는 청량음료, 맥주 등 식품은 물론이고 치약, 일회용기저귀, 잡지표지의 광택 등 도처에 널려 있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먹는 음식과 같다’는 말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대부분은 바로 옥수수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량 생산된 옥수수를 고기로 만드는 것은 음식 세계화의 핵심과정이다. 풀을 먹던 소들은 농장을 떠나 집중가축사육시설에서 옥수수를 먹게 됐다. 잉여 생산된 옥수수를 처분하기 위해서다.

 

소와 풀의 진화론적 협력은 자연의 경이라고 그는 평가한다. 소는 나무가 들어서는 것을 막아 초원이 햇빛을 독차지하도록 해 줄 뿐더러 풀씨를 퍼뜨리고 발굽으로 씨앗을 심어둔 다음 배설물로 비료를 주는 서비스를 아끼지 않는다.

 

풀은 그 대가로 반추동물에게 풍요롭고 배타적인 음식을 제공한다. 반추동물은 풀을 단백질로 바꿀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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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과 소 떼놔 값비싼 대가…‘경이로운’ 순환 고리 무너져

 

폴란은 남는 옥수수로 값싼 고기를 얻기 위해 풀과 소를 떼어놓는 바람에 값비싼 비용을 치르게 됐다고 강조한다. 농작물과 가축을 함께 기르면, 작물 부산물로 가축을 먹이고, 가축 부산물을 작물 비료로 쓰는 간단하고 우아한 순환구조가 만들어진다. 이 고리를 끊으면서 환경오염과 소, 땅, 인간의 건강이 모두 피해를 입게 됐다는 것이다.

 

옥수수를 먹여 약 15개월 만에 속성으로 키운 소의 고기는 풀을 먹고 자란 소의 고기보다 포화지방이 더 많고 오메가-3 지방산이 더 적다. 야생고기만 먹는 원주민이 현대인보다 심장병을 덜 앓는 것은 이 때문이다.

 

칼로리가 높은 옥수수로 기른 소고기의 근육에는 지방이 대리석 무늬처럼 박힌 ‘마블링’ 현상이 나타난다. 미국 농무부가 고안한 소고기 등급체계는 바로 옥수수를 먹인 소에 대한 보상체계이기도 하다고 그는 꼬집었다.

 

값싼 칼로리원으로 옥수수에 주목한 축산자본이 소의 부산물을 사료에 넣기로 마음먹은 것은 자연스런 논리였다. 적어도 광우병이 문제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런 관행은 완전히 폐기되지 않았다고 폴란은 말한다. 부산물 가운데 피와 지방은 예외적으로 사료에 쓸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의 부산물을 닭, 돼지 등 다른 가축에 먹인 뒤 그 가축 부산물을 소에 먹이는 우회로도 열려 있다.

 

소 반추 막고 항생제 남용 불러…O-157 등 새 병원체 유발도

 

그는 풀 대신 옥수수를 먹게 된 소의 고통에 대해서도 눈을 돌린다. 전분이 너무 많고 섬유질이 적은 먹이를 먹으면 반추가 중단돼 가스를 내보내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위에 거품이 나고 점액질층이 형성돼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폐를 압박한다. 가스를 제 때 빼주지 않으면 소가 질식할 수도 있다.

 

중성이어야 할 반추위가 산성이 되면서 소에게 속 쓰림과 같은 질병과 항생제 남용을 초래했고, 산성에 견디는 O-157 같은 새로운 병원체의 출현을 유발했다.

 

산업적 음식사슬은 화석연료에 의존한다. 그는 소 한 마리가 하루 12㎏의 옥수수를 먹고 600㎏까지 자라는 데 석유 132ℓ가 드는 것으로 계산했다. 고기는 태양이 아니라 석유에 기반을 둔 식품이란 얘기다. 그는 “우리는 고기일 뿐 아니라 옥수수이며 석유이기도 하다”고 단언했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그 음식이 먹는 음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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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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