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판상어의 빨판은 어디서 왔을까…재활용

조홍섭 2013. 06. 20
조회수 31231 추천수 1

새끼 발달 과정에서 등지느러미가 변형돼 형성 밝혀져

미 스미스소니언 동물학자 논문, 자연의 재활용 능력 보여줘

 

remora1.jpg » 빨판상어의 옆, 위, 정면 모습. 사진=데이브 존슨 외, <형태학>

 

동아프리카의 일부 원주민은 살아있는 물고기로 거북을 잡는다. 산호초에서 배를 타고 돌아다니다 거북을 보면 꼬리에 줄을 묶은 이 물고기를 거북을 향해 던진다. 물고기는 재빨리 거북의 등에 들러붙는다. 줄을 당기면 물고기와 함께 거북이 딸려온다. 빨판의 들러붙는 힘은 제법 세서 작은 거북이면 뱃전으로 그대로 들어올린다. 이 물고기가 바로 빨판상어다.
 

이 물고기는 고래나 상어, 가오리, 거북, 듀공 같은 큰 바다 동물은 물론이고 다랑어 같은 큰 물고기 그리고 배나 잠수부 등에도 들러붙는다. 힘 안 들이고 이동을 하면서 숙주의 먹이 찌꺼기나 기생충, 배설물을 먹고산다.
 

Angelaponte_640px-Sea_turtle_and_remora.jpg » 거북에 들러붙은 빨판상어. 동아프리카에서 호주 북부에 이르는 인도양에선 빨판상어를 이용해 거북을 잡는 전통이 있다. 사진=안젤라폰테, 위키미디어 코먼스

 

우리나라 연안에서도 볼 수 있지만 더운 바다에 주로 사는 빨판상어는 머리 윗부분에 24개의 흡반이 달려있는 독특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예전엔 배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다고 믿었는데, 그래서 에케네이스라는 학명을 얻었다. 배에 들러붙는 것이 아니라 “배를 붙잡는 것”이란 뜻이다. 빨판상어는 스스로 뒤로 미끄러지면 흡착 강도가 높아지고 앞으로 나아가면 빨판이 떨어지게 할 수 있으며, 스스로도 헤엄을 칠 수 있다.
 

그런데 이 물고기의 빨판이 어디서 왔는지는 최근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19세기에는 지느러미가 변해서 빨판이 됐을 것이란 주장이 있었지만 근거를 대지는 못했고,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서 됐다는 설명도 있었다.
 

Gabriel Barathieu_640px-Mother_and_baby_sperm_whale.jpg » 새끼 향고래의 몸에 여러 마리의 빨판상어가 붙어있다. 사진=가브리엘 바라티유, 위키미디어 코먼스

 

최근에 와서야 빨판상어의 비밀이 풀렸다. 데이브 존슨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박물관 동물학자 등 연구진은 지난해 발간된 국제학술지 <형태학>에 실린 논문을 통해 이 물고기의 빨판은 등지느러미가 변형돼 형성된 것임을 밝혔다.
 

연구진은 이 물고기가 알에서 깨 자라나면서 빨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가까운 친척인 민물 농어의 발달과정과 비교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빨판상어는 이름과 달리 연골어류인 상어가 아니고 농어목의 경골어류이다).
 

연구진은 지느러미의 세 가지 요소가 급격한 변화를 거쳐 빨판으로 자라난다는 것을 보였다. 알에서 깬 치어는 처음 농어처럼 등지느러미가 발달했다. 그런데 이 물고기의 길이가 1㎝쯤 됐을 때부터 등지느러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remora3.jpg » 빨판상어가 14.1㎜였을 때와 28.8㎜였을 때의 빨판 모양 변화. 사진=데이브 존슨, <형태학>

 

지느러미의 형태, 지느러미 밑부분,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뼈에 작은 변화가 쌓이면서 지느러미의 밑바닥 부위가 크게 팽창해 빨판으로 바뀌었다. 물고기가 3㎝ 길이로 성장하면 길이 2㎜의 완벽한 빨판이 형성된다.
 

이 연구로 빨판상어의 빨판이 물고기가 진화하면서 전혀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지느러미를 재활용한 진화의 결과임이 분명해졌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Ontogeny and Homology of the Skeletal Elements That Form the Sucking Disc of Remoras (Teleostei, Echeneoidei, Echeneidae)
Ralf Britz and G. David Johnson
JOURNAL OF MORPHOLOGY
DOI: 10.1002/jmor.2006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꿀벌은 편애, 말벌은 증오? 1%가 낳은 ‘편견’꿀벌은 편애, 말벌은 증오? 1%가 낳은 ‘편견’

    조홍섭 | 2018. 10. 16

    녹지·공원 늘면서 급증…도심선 파리가 주 먹이, 사체 청소도생태계 건강 입증, 병해충 막는 기능도…피해 줄이는 관리 필요우리나라에서 사람에게 가장 큰 신체적 손해를 끼치는 동물은 말벌일 가능성이 크다. 반려동물 급증과 함께 개 물림 사고...

  • 바다 천덕꾸러기 해파리, 생태계 기초 식량 가능성바다 천덕꾸러기 해파리, 생태계 기초 식량 가능성

    조홍섭 | 2018. 10. 12

    펭귄, 다랑어, 뱀장어, 해삼…다양한 포식자가 먹어칼로리 낮지만 쉽게 잡고 소화 잘돼…’보릿고개’ 식량보름달물해파리만 잔뜩 걸린 그물을 끌어올리는 어민은 ‘바다는 비어가고 해파리가 그 자리를 채운다’고 한탄한다. 남획과 수질오염 등으로 물...

  • 고래처럼 턱 부풀려 사냥하는 심해 ‘풍선장어’고래처럼 턱 부풀려 사냥하는 심해 ‘풍선장어’

    조홍섭 | 2018. 10. 11

    아래턱에 펠리컨 닮은 자루 풍선처럼 부풀려 사냥태평양과 대서양서 잇따라 살아있는 모습 촬영 성공온대와 열대바다에서 가끔 어선에 잡히는 풍선장어는 수수께끼의 심해어이다. 75㎝ 길이의 몸은 길쭉한 뱀장어이지만 몸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

  • 멸종 위기 수원청개구리, 5곳서 ‘지역 절종’ 사태멸종 위기 수원청개구리, 5곳서 ‘지역 절종’ 사태

    조홍섭 | 2018. 10. 11

    이대 팀, 3년 간 첫 전국조사 결과북부와 남부 서식지 분단, 멸종 재촉전국서 울음 확인 2510마리뿐, “논 지켜야”우리나라에는 두 종의 청개구리가 산다. 흔한 청개구리는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일본·러시아 등 동북아에 널리 분포하며 낮 동안 ...

  • 곤충계 최고 포식자 사마귀, 물고기도 잡아먹는다곤충계 최고 포식자 사마귀, 물고기도 잡아먹는다

    조홍섭 | 2018. 10. 02

    하루 2마리씩 구피 사냥, 닷새 동안 이어져척추동물 중 새 이어 물고기도 먹이 목록에체온을 높이려고 농로나 등산로에서 나와 아침 햇살을 쬐는 사마귀가 많이 눈에 띈다. 커다란 집게발을 가지런히 앞에 모으고 뒷발로 선 이런 모습을 보고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