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판상어의 빨판은 어디서 왔을까…재활용

조홍섭 2013. 06. 20
조회수 32302 추천수 1

새끼 발달 과정에서 등지느러미가 변형돼 형성 밝혀져

미 스미스소니언 동물학자 논문, 자연의 재활용 능력 보여줘

 

remora1.jpg » 빨판상어의 옆, 위, 정면 모습. 사진=데이브 존슨 외, <형태학>

 

동아프리카의 일부 원주민은 살아있는 물고기로 거북을 잡는다. 산호초에서 배를 타고 돌아다니다 거북을 보면 꼬리에 줄을 묶은 이 물고기를 거북을 향해 던진다. 물고기는 재빨리 거북의 등에 들러붙는다. 줄을 당기면 물고기와 함께 거북이 딸려온다. 빨판의 들러붙는 힘은 제법 세서 작은 거북이면 뱃전으로 그대로 들어올린다. 이 물고기가 바로 빨판상어다.
 

이 물고기는 고래나 상어, 가오리, 거북, 듀공 같은 큰 바다 동물은 물론이고 다랑어 같은 큰 물고기 그리고 배나 잠수부 등에도 들러붙는다. 힘 안 들이고 이동을 하면서 숙주의 먹이 찌꺼기나 기생충, 배설물을 먹고산다.
 

Angelaponte_640px-Sea_turtle_and_remora.jpg » 거북에 들러붙은 빨판상어. 동아프리카에서 호주 북부에 이르는 인도양에선 빨판상어를 이용해 거북을 잡는 전통이 있다. 사진=안젤라폰테, 위키미디어 코먼스

 

우리나라 연안에서도 볼 수 있지만 더운 바다에 주로 사는 빨판상어는 머리 윗부분에 24개의 흡반이 달려있는 독특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예전엔 배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다고 믿었는데, 그래서 에케네이스라는 학명을 얻었다. 배에 들러붙는 것이 아니라 “배를 붙잡는 것”이란 뜻이다. 빨판상어는 스스로 뒤로 미끄러지면 흡착 강도가 높아지고 앞으로 나아가면 빨판이 떨어지게 할 수 있으며, 스스로도 헤엄을 칠 수 있다.
 

그런데 이 물고기의 빨판이 어디서 왔는지는 최근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19세기에는 지느러미가 변해서 빨판이 됐을 것이란 주장이 있었지만 근거를 대지는 못했고,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서 됐다는 설명도 있었다.
 

Gabriel Barathieu_640px-Mother_and_baby_sperm_whale.jpg » 새끼 향고래의 몸에 여러 마리의 빨판상어가 붙어있다. 사진=가브리엘 바라티유, 위키미디어 코먼스

 

최근에 와서야 빨판상어의 비밀이 풀렸다. 데이브 존슨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박물관 동물학자 등 연구진은 지난해 발간된 국제학술지 <형태학>에 실린 논문을 통해 이 물고기의 빨판은 등지느러미가 변형돼 형성된 것임을 밝혔다.
 

연구진은 이 물고기가 알에서 깨 자라나면서 빨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가까운 친척인 민물 농어의 발달과정과 비교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빨판상어는 이름과 달리 연골어류인 상어가 아니고 농어목의 경골어류이다).
 

연구진은 지느러미의 세 가지 요소가 급격한 변화를 거쳐 빨판으로 자라난다는 것을 보였다. 알에서 깬 치어는 처음 농어처럼 등지느러미가 발달했다. 그런데 이 물고기의 길이가 1㎝쯤 됐을 때부터 등지느러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remora3.jpg » 빨판상어가 14.1㎜였을 때와 28.8㎜였을 때의 빨판 모양 변화. 사진=데이브 존슨, <형태학>

 

지느러미의 형태, 지느러미 밑부분,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뼈에 작은 변화가 쌓이면서 지느러미의 밑바닥 부위가 크게 팽창해 빨판으로 바뀌었다. 물고기가 3㎝ 길이로 성장하면 길이 2㎜의 완벽한 빨판이 형성된다.
 

이 연구로 빨판상어의 빨판이 물고기가 진화하면서 전혀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지느러미를 재활용한 진화의 결과임이 분명해졌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Ontogeny and Homology of the Skeletal Elements That Form the Sucking Disc of Remoras (Teleostei, Echeneoidei, Echeneidae)
Ralf Britz and G. David Johnson
JOURNAL OF MORPHOLOGY
DOI: 10.1002/jmor.2006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보디페인팅이 벌레 물리는 것 막아준다보디페인팅이 벌레 물리는 것 막아준다

    조홍섭 | 2019. 01. 24

    줄무늬 그리면 흡혈 파리 10분의 1로…얼룩말과 같은 원리얼룩말의 줄무늬가 왜 생겼냐는 수수께끼는 오랜 논란 끝에 최근 ‘흡혈 곤충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가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진다(■ 관련 기사: 얼룩말의 줄무늬는 파리 때문에 생겼다). ...

  • ‘끈끈이 그물’로 상어 퇴치, 먹장어 점액 무기의 비밀‘끈끈이 그물’로 상어 퇴치, 먹장어 점액 무기의 비밀

    조홍섭 | 2019. 01. 21

    방출 직후 1만배 팽창, 실타래서 나온 실과 엉겨 포식자 질식 상어와 그루퍼 같은 대형 포식자가 먹장어를 삼키려다 끈끈이 그물에 숨이 막혀 뱉어내는 뉴질랜드 테 파파 통가레와 박물관의 유튜브 영상. 먹장어는 우리에게 ‘꼼장어’로 널리 ...

  • 가장 외로운 개구리 ‘로미오’, 10년 만에 짝 찾아가장 외로운 개구리 ‘로미오’, 10년 만에 짝 찾아

    조홍섭 | 2019. 01. 17

    멸종 앞둔 볼리비아 운무림 개구리, 발렌타인데이 기부로 ‘줄리엣’ 만나지난해 발렌타인데이 때 세계 최대 데이팅 사이트인 ‘매치’에는 이색적인 짝찾기 후보가 올랐다. 이름은 로미오, 세웬카스 개구리 종의 마지막 개체로 동족인 짝을 찾는다는...

  • 꿀벌 진드기는 피 아닌 ‘간’ 빤다, 50년 만에 잡힌 오류꿀벌 진드기는 피 아닌 ‘간’ 빤다, 50년 만에 잡힌 오류

    조홍섭 | 2019. 01. 16

    꿀벌응애 표적은 체액 아닌 지방체…방제 방식 바뀔 듯꿀벌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요인은 크기 1㎜ 남짓한 진드기다. 꿀벌응애라 불리는 이 절지동물은 세계적으로 양봉산업에 가장 심각한 피해를 준다. 우리나라에도 꿀벌에 만성적으로 기생하며, 특...

  • 북극토끼는 청소동물, 스라소니와 동족 사체 먹어북극토끼는 청소동물, 스라소니와 동족 사체 먹어

    조홍섭 | 2019. 01. 15

    먹이 부족한 혹한기 죽은 동물 사체 일상적으로 먹어평소 천적인 스라소니, 동족 토끼, 뇌조 깃털도 메뉴에‘다람쥐는 도토리를 먹고, 토끼는 풀을 먹고…’ 초식동물에 관한 이런 통념이 깨지고 있다. 다람쥐는 애벌레가 많아지는 봄이 오면 이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