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 새에게 먹히는 달팽이 번식전략

조홍섭 2011. 07. 13
조회수 211951 추천수 2
직박구리 등 뱃속에서 생존해 터전 옮겨 자손 확산
껍데기 덕에 쪼이지 않고 소화 막는 점액 분비 추정

faeces.jpg
새의 배설물에 섞인 달팽이 껍질. 7~8마리 가운데 하나는 살아남아 종자를 멀리 퍼뜨린다.
 
맛있는 열매로 새들을 유혹해 씨앗을 퍼뜨리는 전략은 식물에 흔하다.
 
그런데 육지의 달팽이가 비슷한 전략을 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달팽이가 새들에 먹혀 자손을 확산시키는 현상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도호쿠 대학의 대학원생 와다 신이치로 등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생물지리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통해 달팽이가 새들의 소화기관을 통과해서도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dongbak.jpg
동박새

연구진은 일본 동쪽 오가사와라 제도에 있는 하하지마 섬에서 달팽이를 즐겨 먹는 동박새와 직박구리에게 달팽이를 먹인 뒤 얼마나 살아남는지 조사했다.
 
놀랍게도 새들에 먹힌 달팽이 7~8마리에 한 마리꼴(평균 15%)이 살아있었다. 달팽이는 새에게 먹혀 소화관을 통과하면서도 생존했으며, 한 마리는 배설 직후 새끼를 낳기도 했다.
 
달팽이가 비교적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폭풍이나 파도에 휩쓸리거나 혹은 새의 몸에 부착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또 연못에서 물고기가 다슬기를 이동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비교적 단거리 이동에 새들의 소화관을 이용한다는 사례는 없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로 새들이 식물의 씨앗을 확산시키는 것처럼 달팽이를 퍼뜨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연구진은 이 섬에 분포하는 달팽이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유전적 변이가 크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무언가의 힘으로 달팽이가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달팽이의 유전적 다양성과 이들을 먹이로 삼는 새들의 서식밀도 사이에 상관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했다.

 jigbakguri.jpg 
직박구리

그렇다면 어떻게 달팽이는 죽지 않고 소화관을 통과할 수 있을까.
 
연구진은 이 달팽이가 껍데기의 평균 길이가 2㎜에 불과해 부리에 쪼이지 않고 통째로 삼켜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덩치가 큰 달팽이의 생존율은 작은 달팽이보다 떨어졌다.
 
또 이 달팽이가 삼켜진 뒤 점액을 분비해 소화를 막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연구진은 “새의 포식이 종의 확산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 이 연구의 의미”라며 “배설 직후 새끼를 낳은 개체가 있다는 것은 소화관 통과가 출산의 신호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초록으로 바뀌는 히말라야 만년설초록으로 바뀌는 히말라야 만년설

    조홍섭 | 2020. 01. 22

    만년설 녹은 곳에 고산식물 확장…14억 물 공급원 영향 주목기후변화로 에베레스트 산 자락 등 히말라야 산맥의 만년설이 녹으면서 그 자리에 식물이 자라는 면적이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빙설대의 식생대 확장이 히말라야의 물 공급 ...

  • ‘천년 나무’ 은행나무의 장수 비결‘천년 나무’ 은행나무의 장수 비결

    조홍섭 | 2020. 01. 20

    나이 먹어도 노화현상 없어…20대 저항력 천살까지 유지은행나무는 2억년 전 쥐라기 공룡시대부터 지구에 분포해 온 ‘살아있는 화석’이다. 한때 지구 전역에 살았지만, 현재 중국 동부와 서남부에 극소수만 자생한다(사람이 인공증식한 가로수 은행나...

  • 인제서 ‘야생 반달곰’ 발자국 발견…“3~8마리 서식”인제서 ‘야생 반달곰’ 발자국 발견…“3~8마리 서식”

    조홍섭 | 2020. 01. 17

    눈길에 새끼 데리고 있는 어미 흔적…지리산 곰과는 별개 야생 가족 가능성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대암산·향로봉 일대에서 새끼를 데리고 있는 어미 반달가슴곰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이들은 지리산에서 이동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 지난해 비무장지...

  • 그을린 코알라, 미리 본 야생동물의 '기후 종말’그을린 코알라, 미리 본 야생동물의 '기후 종말’

    조홍섭 | 2020. 01. 14

    허겁지겁 물 얻어 마시는 화상 코알라서식지와 산불 발생지 80% 겹쳐환경 당국 개체수 30% 사망 추정“야생동물 피해는 10억 마리 이를 듯”피해 규모, 면적, 속도 “재앙적 수준”시민단체 뜨개질로 주머니, 벙어리장갑 만들기 나서기록적 가뭄, ...

  • 탄자니아 표범은 왜 원숭이가 주식일까탄자니아 표범은 왜 원숭이가 주식일까

    조홍섭 | 2020. 01. 13

    놀라운 융통성…중형 발굽 동물 없자 소형 포유류로 먹이 대체표범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분포하는 고양잇과 맹수이다. 특히 아프리카표범은 열대우림부터 사막까지 다양한 곳에 살며 쥐, 새, 영양, 원숭이, 가축 등 92종의 동물을 먹이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