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딱따구리를 향한 따뜻하고도 가혹한 시선

조홍섭 2011. 07. 16
조회수 21342 추천수 1
자연의 속살을 드러내는 김성호 교수의 우직하고 따뜻한 시선
세번째 관찰기 <까막딱따구리의 숲>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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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시나무 둥지에 날아온 까막딱따구리 수컷.

자연은 관찰자의 속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달리는 차창 밖으론 산이 보일 뿐이지만 걸으면 그 속의 나무와 꽃이 보인다. 제자리에 멈춰야 비로소 보호색으로 위장한 벌레를 볼 수 있다. 자연은 멈춘 사람에게만 그 속살을 보여준다. 
 
새의 번식을 관찰할 때도 한 장소에 붙박혀 장기간 지켜 보는 방법을 쓴다. 텔레비전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우리는 흔히 위장막 속에서 새의 번식을 촬영하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어떤 다큐멘터리 작가도 새들이 둥지를 틀어 알을 낳고 부화시켜, 자란 새끼가 둥지를 떠날 때까지 줄곧 지켜보지는 않는다. 며칠씩 촬영한 장면을 이어붙일 뿐이다. 시간은 덜 들이지만 시청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내시경 카메라를 둥지 속에 집어넣기도 하고, 둥지가 가장 잘 보이는 정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등 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조류 관찰의 새로운 패러다임, '김성호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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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딱따구리 수컷. 크낙새가 사라진 현재 국내 최대의 딱따구리이자 법정 보호종이다.

그러나 김성호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의 방식은 다르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둥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몇 달씩 관찰을 계속한다. 암·수가 하루에 몇 번 교대하는지, 누가 밤새 둥지를 지키는지, 먹이는 몇 번 물어오는지 같은 기본적인 사항은 물론이고 암·수가 교대할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나르는 먹이의 종류와 크기는 어떻게 변하는지 등 세세한 모습을 꼼꼼히 기록하고 잰다.
 
그는 이렇게 2007년 큰오색딱따구리의 번식을 50일 동안 지켜보았고 동고비는 2년에 걸쳐 80일 동안, 그리고 이번엔 까막딱따구리 한 쌍의 번식과정을 2년에 걸쳐 6달 동안 관찰했다.
 
어떤 조류 전문가나 아마추어 애호가 또는 다큐멘터리 작가도 이런 ‘무식한’ 또는 수도자와 같은 고행을 시도하지 않는다. 하루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해, 몰려오는 졸음에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면서 한 점 둥지를 응시하는 그의 관찰방식을 전문가들도 서서히 ‘김성호 류’라고 인정하고 있다. 자신은 학대할지언정 자연에 대한 개입은 최소화하고, 섬세하고 내용이 풍부한 관찰기를 내놓는다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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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딱따구리 숲>(지성사/3만원)은 김 교수가 내놓은 세번째 새 관찰기이다. 산림이 잘 발달한 곳에서만 드물게 사는 국내 최대의 딱따구리인 까막딱따구리를 보기 위해 그가 잠복을 시작한 곳은 어느 원시림이 아니라 강원도 화천의 한 은사시나무 숲이었다.
 
그는 이미 <한겨레> 웹진 물바람숲에 수종개량의 대상으로 전락한 은사시나무를 위한 변명(꽃가루 골치 은사시나무, 새들에겐 천국)을 개진한 바 있거니와, 자연을 인간으로부터 떼어내 절대 보존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사람과 가까운 곳에 자연이 풍요로울 수 있고, 자연을 잘 이해한다면 인간과 자연의 조화도 가능하리라는 낙관도 가능해 보인다. 그가 철저히 자연에 간섭하는 것을 꺼리는 한편으로 외래종인 은사시나무를 보호하자는 융통성을 보이는 바탕에는 자연을 깊이 있게 관찰해 아는 것이 깔려 있다.
 
김 교수의 관찰 일정은 이랬다. 방학이나 안식년을 잡아 시간을 넉넉히 잡아둔다. 화천 읍내 찜질방에 숙소를 정한 뒤 새벽 3시50분에 알람을 설정해 둔다. 새벽 4시쯤 숲에 도착해 관찰을 시작한다. 점심을 노부부 집에서 해결하고 새들이 모든 활동을 멈춘 밤 10시쯤 숙소로 돌아온다. 이것저것 정리하고 자정 무렵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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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가 나무에 뚫어놓은 구멍은 숲속의 모든 새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틈만 나면 둥지를 가로채려는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둥지를 노리던 원앙이 안에 있던 까막딱따구리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다. 

이런 살인적인 일정 속에서도 은사시나무에 구멍을 뚫고 둥지를 튼 까막딱따구리를 향한 그의 집중력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세밀한 관찰 내용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둥지를 파는 모습을 묘사한 내용이다.
 
“보통 10분쯤 둥지를 판 뒤에 나무 부스러기를 밖으로 던집니다. 부스러기는 5번에 걸쳐 나누어 버릴 때가 많지만 13번까지 버리기도 합니다. 나무 부스러기를 버리는 방법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먼저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살핀 다음 둥지로 다시 내려가 부스러기를 물고 입구로 올라와서 고개를 최대한 접었다가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듯 쫙 펴면서 힘껏 던집니다.”(140쪽)


단지 관찰을 위한 관찰이 아니다. 세밀한 관찰은 도구를 쓰지 않고도 나무 둥치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알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알을 품을 때 하루 4번 교대가 이뤄지다가 교대 빈도가 갑자기 빨라진다면 둥지 안에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제 같으면 아직 두 번째 교대도 일어나지 않았을 시간에 세 번째 교대가 이루어졌습니다. 부화가 일어난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48쪽)


새끼가 깨어났으니 먹이를 물어 나르려면 더 자주 둥지를 드나들어야 한다. 그런데 드나드는 까막딱따구리 부부의 부리에 먹이가 물려있지 않다.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그 답은 관찰이 제공한다. 어미가 밖에서 잡은 먹이를 토해 새끼에게 먹이는 듯한 행동이 목격된 것이다. 밖에서 돌아온 어미의 꼬리 끝이 흔들리다 멈추는 동작이 계속되고, 돌아서는 어미의 부리 끝에 묻은 끈적한 액체와, 그리고 마침내는 다 자란 새끼에게 바깥에서 먹이를 토해 먹이는 모습을 관찰한다.

집 지키고, 먹이 나르고, 수컷의 눈물겨운 자식 사랑

관찰기에서 흥미로운 건 까막딱따구리 수컷의 애틋한 새끼 사랑이다. 둥지를 틀고부터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 내보낼 때까지 밤새 둥지를 지키는 것은 오로지 수컷의 몫이다. 
 
암컷이 아침에 일찍 교대를 해 주지 않으면 밤새 배를 쫄쫄 굶고 있으면서도 둥지를 비우지 못하고 애타게 암컷을 기다리는 것은 수컷이다. 또 새끼를 기를 때 암컷은 차츰 냉담해져 먹이를 가져오는 빈도가 떨어지고 아예 오지 않는 날도 있다. 이럴 때 수컷은 더 분발할 수밖에 없다. 따뜻한 눈길의 관찰자인 김 교수도 이런 모습을 보고 “화가 난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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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모습. 알을 낳고 나서도 사랑 행위는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검은딱따구리의 부부의 사랑이 타산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관찰 기간 동안 가장 일관되고 규칙적인 행동은 둘 사이의 섹스였다. 하루에 두번 아침과 저녁, 그리고 어떤 때는 낮에도 한 번 만나 사랑을 나눈다. 게다가 알을 낳고 난 뒤에도 한 동안 짝짓기는 계속된다. 동물의 사랑이 단지 유전자를 교환하기 위한 행위만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집중력에도 한계가 있다. 첫해 까막딱따구리 한 마리가 무사히 자라 이제 둥지 떠나기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김 교수는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고 만다.
 
이제 어린 새가 점점 더 많이 고개를 내밀고 마침내 둥지를 떠나려면 1주일쯤 남았다는 안도감에서 소주 반 병으로 스스로를 축하하다 다음날 ‘늦잠’을 자고 만 것이다. 그날의 관찰일기는 이렇게 적혀 있다.
 
“06:33 숲에 도착했을 때 계곡 너머로 아빠 새의 소리가 몇 번 들립니다. 오늘의 첫 번째 먹이를 전해 주고 다시 먹이를 구하러 나서는 길일 것입니다.
07:33 이상합니다. 어린 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08:33 정말 이상합니다. 어린 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11:33 어린 새는 정말 보이지 않습니다.
18:37 아빠 새가 둥지 입구에 내려앉아도 둥지는 여전히 침묵합니다.
00:00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하겠습니다. 어린 새는 내가 숲에 도착하기 전 둥지를 떠났습니다.”


이 하루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이듬해 그는 다시 이 숲에서 여러 달을 잠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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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 둥지 주변엔 수많은 다른 동물도 산다. 스트레칭을 하는 다람쥐도 숲속 식구의 하나다.

두 번씩이나 쓰러져 정신을 잃을 정도로 온 몸을 던져 새를 관찰해 그 상세한 기록을 세권이나 출판했는데도 조류학계에서는 별 반응이 없다. 김 교수는 “참 희안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김 교수가 생물학자이기는 하지만 식물생리학이 전공이어서 조류학계에선 아마추어 취급을 받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제가 만일 조사비를 받거나 남의 밥그릇에 손을 댔다면 무사하지 못했겠지요.”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지만 그가 받은 지원은 전혀 없다.
 
김 교수는 새에 미친 사람이 아니다. 학교 주변에서 우연히 만난 큰오색딱따구리가 그를 5년 동안 이리로 이끈 것이다. 그의 관심사는 자연이다. 그가 이번에 자연의 어느 주인공에 눈을 맞출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김성호 교수

* 7월19일 일부 맞춤법 오류를 바로잡았습니다.
* 8월3일 제목을 손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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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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