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끌어들인 한옥, 구석구석 배인 과학

신준환 2013.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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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없는 마당의 상승기류가 대청 통해 시원한 바람 끌어들여

나무 통해 보존과 개발 융합 가능, 이용할 숲과 보존할 숲 잘 가려야

 

 경주시 양동마을 전통 한옥2_탁기형.jpg » 경주시 양동마을의 전통 한옥 대문. 자연을 향해 열린 구조이다. 사진=탁기형 기자

 

나무는 우리가 흔히 접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지만, 우리를 놀랍고도 아름다운 세계로 연결시켜 준다. 특히 나무는 경제와 환경을 같이 키워 준다. 사람들은 경제성장과 환경보전이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나무를 통해 보면 이들이 서로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람과 숲이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경제발전과 환경보전을 분리해서 고집할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로 엮어낼 수 있는 창의력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자연애호가 중에는 나무로 만든 제품을 쓰는 것은 좋아하지만 벌목은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이율배반은 숲의 생태학을 잘 몰라서 나오는 것이다. 숲은 이산화탄소 흡수와 산소 생산과 같은 공기정화, 기후조절, 맑은 물 공급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만, 모든 나무를 하나도 자르지 않고 자연림으로만 두면 생물다양성이 감소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어나기 쉽다.

 

특히, 사람이 만든 숲을 그냥 방치하면 이런 문제가 훨씬 심각해진다. 숲을 만들 때는 ㏊당 3000 그루의 나무를 심는데 이들을 솎아 베지 않고 그냥 방치하면 나무가 너무 빽빽하게 자라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 결과 숲 속에 생물이 살 수 없고 낙엽이 분해되지 않아 수자원 함양이 안 되며 병해충도 많이 발생할 뿐 아니라 숲이 쇠퇴하여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폭발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특수조림지의 전나무 숲_직경 16~18센티미터 직경으로 자랐다.jpg » 대관령의 전나무 조림지. 1970년대 조림사업의 대표적인 성공지역이다. 사진=조홍섭 기자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를 보면, 상수리나무림을 잘 가꾸면 30년생일 때  ㏊당  매년 14.5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그런데 숲이 쇠퇴해 축적된 이산화탄소가 한꺼번에 환경에 방출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따라서 숲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입지에 맞게 계획적으로 나무를 잘라 경제적 수익도 올리고 환경 보전에도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나무는 또한 오래 간다. 늦어도 13세기 초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진 부석사 무량수전은 아직도 튼튼하다. 이런 나무는 온실가스를 보존하는 탄소 통조림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를 보면, 한 변이 10.5㎝이고 길이가 3m인 정사각형 나무기둥 하나에는 약 6㎏의 탄소가 저장되어 있다. 더구나 건축 재료를 만들 때 건조한 나무에 비해 철강은 191배, 알루미늄은 무려 791배의 에너지가 든다고 한다.

 

따라서 목재를 사용하여 집을 짓는 것은 제2의 산림을 조성하는 것과 같다. 또한 주택의 수명이 다해도 나무는 계속 여러 가지 용도로 쓸 수 있다. 이렇게 목재를 활용하는 것은 지구온난화를 제어하는 나무-문턱 또는, 나무-고개 구실을 한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탄소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탄소는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탄소가 없었으면 생명의 진화도 어려웠을 것이다.

 

가회동 한옥마을_박미향.jpg » 서울 가회동 한옥마을의 한 모습. 사진=박미향 기자

 

또한 광합성과 호흡을 비롯한 모든 생명 현상도 탄소가 주요 구성성분인 유기물에 의한 것이다. 탄소 carbon의 어원은 숯을 뜻하는 라틴어 carbo라고 하는데, 사실 숯은 에너지 집약체로 불을 때도 연기도 안 나고 그을음도 생기지 않아 가장 효율적인 탄소 저장고이다.

 

미래의 에너지 재앙에 대비해 비상용 에너지로 침대 밑을 모두 숯으로 채우자는 사람도 있다. 숯을 방안에 두면 습도 유지와 냄새 제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식이조일 것이다. 재미난 것은 숯은 비결정성 탄소로 결정성인 흑연과 다이아몬드와는 동소체이다. 인류 문화의 핵심인 탄소를 잘 활용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나뭇결의 패턴은 사람의 심장박동 리듬과 닮았다고 한다. 나뭇결에는 바람의 살랑거림, 나뭇잎 사이로 흐르는 햇빛, 물소리 등이 녹아 있는데, 여기에 새소리, 반딧불이의 반짝거림, 고요함의 파동이 공조된다.

 

이런 나뭇결은 자연의 숨결을 집안으로 들이고 인류가 진화과정에서 나무를 만지면서 형성된 안정감이 녹아 있어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기분을 좋게 한다. 목재는 향기도 좋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주며 원적외선에 가까운 열선이 나와 건강에도 이롭다고 한다. 집은 제2의 자궁, 제3의 피부라는 말이 있는데 집에 목재를 많이 쓰면 도시 환경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닥나무 껍질로 만든 한지는 ‘숨을 쉬는 종이’라고 하듯 공기가 잘 통해 천년 이상 보존이 가능하다. 빛을 적당히 투과하고 습도와 온도를 조절할 뿐 아니라 한 겹일 때와 두 겹일 때 울림도 달라서 자연은 물론 사람과도 부드럽게 소통한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곳에 따라 창호의 앞뒤로 한지를 붙여서 만든 공기층으로 더 나은 보온효과를 누렸다. 여름이 덥고 겨울이 추운 우리나라에서 과거 대가족이면서도 개인 공간을 확보해야 했던 만큼 한옥은 개방적이면서도 폐쇄적인 이중성을 띠고 있다고 한다. 경주 양동마을의 회재 이언적 선생의 집은 안채가 매우 폐쇄적인 공간인 듯해도 햇볕도 잘 들어오고 바람도 잘 통한다.
 

tree1.jpg » 우리 조상들은 햇빛, 물소리, 바람소리를 집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사진=신준환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발행한 <고택 속 숨은 이야기와 전통과학>을 보면, 한옥은 기둥과 기둥을 한 칸으로 하는데, 한 칸은 약 2.5m로 문이 열리는 것을 고려해 4등분하면 각 부분은 사람의 어깨 넓이보다 조금 넓어 활동에 불편함이 없는 최적의 공간 구성이 된다.

 

방은 주로 앉아서 생활할 때 편안한 높이인 2.3m, 대청은 서서 생활할 때 편안한 높이인 3.1m로 짓는다고 한다. 방에 앉아 몸을 기대고 밖을 볼 수 있는 머름(바람을 막거나 모양을 내기 위하여 미닫이 문지방 아래나 벽 아래 중방에 대는 널조각)의 높이, 마루의 높이, 창호와 방문의 길이나 대문의 높이 등 한옥 곳곳에 인체공학적인 전통과학이 녹아 있다.

 

한옥의 처마는 한 여름 태양이 가장 높이 걸리는 남중고도 76.5도일 때는 햇빛을 막아 주지만, 한 겨울 남중고도 29.5도일 때는 집안 깊숙이 햇볕을 끌어들이게 되어 있다. 마당에는 밝은 빛깔의 흙을 깔아 빛을 반사하여 집안을 밝게 비춰주어 중국의 전통 가옥에 비해 한옥의 처마가 깊은 편임에도 내부는 밝다고 한다.

 

마당 안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을수록 빛이 더 잘 반사되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마당을 잘 쓸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마당에 나무를 심지만, 우리는 마당(口)에 나무(木)를 심으면 곤(困) 자처럼 되어 괴롭다고 하였다.

 

우리 한옥은 마당의 열기를 받은 공기가 위로 올라가면 그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대청 뒤의 창호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게 만든 구조인데, 여기에 나무를 심으면 바람이 안 통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대청마루는 시원하고, 마루 아래는 텅 비워 놓아서 통풍이 잘 되고 시원하게 만들어 음식을 보관하는 광의 냉방 시스템으로도 활용하였다고 한다.

 

우리 조상은 대부분 정원을 집안에 가두지 않고 사방의 자연을 끌어들이는 차경(借景) 효과를 노렸다. 하회마을의 북촌에서는 마을의 주산, 부용대, 낙동강, 남산과 병산이 다 보이고, 명재 윤증 선생의 고택에서는 주변 풍광은 물론 멀리 계룡산도 볼 수 있다.

 

tree0.jpg » 차경의 효과. 명재 윤증 고택에서 저 멀리 계룡산이 보인다. 사진=신준환

 

그러나 자연과 소통하는 한옥이니 사람이 살지 않으면 곧 무너지고 야생동물의 소굴이 되기 쉽다. 그런데, 사람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갈 수도 없지만 자연과 격리될 수도 없다.

 

나무를 활용하는데 눈이 어두워 중요한 자연림을 없애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 자연의 맥락으로 보아서 자연림이 있어야 할 곳은 철저히 보존해야 한다. 인공림과 자연림 어느 하나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대립을 해소하고 원융(圓融)을 지향하는 나무를 보고 사람과 자연의 공생을 배워야 할 것이다.

 

신준환/ 국립수목원장·농학박사

 

이 글은 월간 <과학과 기술> 6월호에 실린 것을 일부 수정해 필자의 허락을 얻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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