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똥구리가 굴리는 경단은 ‘이동식 에어컨’

조홍섭 2013.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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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기발한 여름나기…체온 조절 위한 오랜 적응과 진화

'코끼리는 귀와 성긴 털로, 새는 부리로, 그리고 사람은 땀으로'

 

더위를 이기는 것은 동물에게 종종 생사가 걸린 문제이다. 오랜 진화 과정에서 동물은 적절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과 몸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쇠똥구리에서 코끼리까지, 그리고 사람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 경단에 올라 증발열로 식혀
 

heat1.jpg » 배설물 경단 위에 오른 남아프피카 사바나 쇠똥구리의 적외선 사진. 푸른색이 낮은 온도, 붉은색은 높은 온도를 가리킨다. 사진=요켄 스몰카


남아프리카 사바나의 한낮 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땡볕에 고스란히 노출된 흙 온도는 57도까지 오른다. 여기서도 쇠똥구리는 부지런히 초식동물의 배설물을 둥글게 뭉친 경단을 굴린다.

 

변온동물인 이 딱정벌레는 어떻게 익어버리지 않을까. 스웨덴 룬트대학의 동물행동학자는 현장 실험을 통해 배설물 경단 굴리기 자체에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아냈다.
 

지면 온도가 50도 이하이면 쇠똥구리는 부지런히 경단만 굴렸다. 하지만 온도가 높아질수록 쇠똥구리는 경단 위로 올라가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지면 온도가 60도일 때 경단 위에서 70%의 시간을 보냈다.
 

경단 위에 올라가서는 앞다리로 반복해 입 주변을 쓰다듬었다. ‘방향 잡기 춤’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세히 보니 앞다리로 게워낸 액체를 머리에 발라 그 증발열로 몸을 식히는 행동이었다.
 

지면에 앞다리를 딛고 물구나무를 선 자세로 경단을 굴리는 쇠똥구리에게 앞다리는 가장 쉽게 지열로 달궈진다.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해 보니, 경단을 한 번 굴릴 때마다 앞다리의 온도는 10도씩 올라갔다. 그러나 경단 위에 올라가면 10초 안에 7도가 떨어졌다.
 

경단이 온도를 떨어뜨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지름 3~4㎝에 지나지 않지만 경단은 땅바닥에 견주면 고도가 높아 공기가 더 잘 흐른다. 따라서 경단 위로 올라서는 것만으로도 쇠똥구리는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갓 배설된 똥으로 빚은 경단에는 습기가 많아 증발열 때문에 경단의 온도는 주변보다 훨씬 낮은 31.8도에 지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은 경단은 쇠똥구리가 일하는 경단 아래 모래의 온도도 1.5도 떨어뜨렸다.
 

결국 쇠똥구리에게 똥 경단은 먹이이자 알을 낳는 번식지에 더해 ‘움직이는 에어컨’ 구실까지 하는 것이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쪼이는 그늘 한 점 없는 사바나의 평원에서 굴려가는 먹이 자체가 온도를 낮춰준다는 얼개는 기발하다. 이 연구는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렸다.
 
◇ 코끼리는 털로 열 식힌다, 컴퓨터처럼
 

heat3.jpg » 아프리카코끼리의 성긴 털. 열을 방출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사진=코너 미르볼드


덩치가 큰 동물은 체온조절이 골칫거리다. 단위 무게당 표면적이 작아 열을 방출하기가 불리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뇌나 내장이 손상되는 치명적 사태가 온다. 그래서 코끼리는 커다란 귀를 펄럭이며 대개 물가에서 멀리 떠나지 않는다.

 

특히 코끼리의 귀는 에어컨의 방열기 구실을 하는데, 표면적이 넓은 귀에 혈관이 많이 나 있어 이곳에서 피의 온도를 식힌다. 체온이 높을수록 귀로 보내는 혈액량이 늘어나고 귀를 부채처럼 자주 펄럭인다.
 

하지만 귀만으로 코끼리가 적절한 체온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학계의 논란거리였다. 최근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자들은 코끼리의 몸에 성글게 돋아난 털의 기능에 주목했다. 열을 방출하는 핵심 기관인 귀에도 돋아난 성긴 털은 보온이 아닌 냉각 기능을 하며 체온을 상당히 낮추는 구실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동물의 털은 공기의 흐름을 막아 체온을 유지하는 단열층을 형성한다. 그런데 털의 밀도가 성겨지면서 차츰 그런 기능이 줄어들어 어느 한계에 이르면 더는 단열 기능을 하지 않고 오히려 냉각 기능으로 전환된다.

 

성긴 털의 윗부분의 공기 흐름은  털 아래보다 빠르기 때문에 털 자체가 열을 바깥으로 뿜어내는 통로 구실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컴퓨터에서 과도한 열을 식히는데 쓰는 ‘핀-휜 형 방열판’도 코끼리의 성긴 털처럼 뾰족한 침이 다닥다닥 붙은 모습이다.
 

Muhammad%20Mahdi%20Karim_800px-African_elephant_warning_raised_trunk.jpg » 아프리카코끼리. 혈관이 밀집한 귀를 펄럭여 열을 식힌다. 사진=무하마드 카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진은 코끼리의 털이 평균 5% 이상의 열 조절 능력이 있으며, 특히 체온 조절이 절실한 풍속이 낮은 때에 그 효과는 23%에 이른다고 밝혔다. 피부 ㎡당 털이 30만 개보다 적을 때 털은 단열에서 방열로 기능을 바꾸는데, 코끼리의 털은 ㎡당 1500개 정도이다.

 

선인장의 성긴 가시도 코끼리 털처럼 냉각기능을 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연구결과는 미국 과학공공도서관이 발행하는 온라인 공개 학술지 <플로스 원>에 실렸다.

(■ 자세한 내용은 '코끼리 털은 냉각장치로 밝혀져' 기사 참조)
 
◇ 새들의 부리는 방열기
 
heat2.jpg » 세계에서 가장 부리가 큰 토코큰부리새. 혈관이 겉에서도 보일 정도로 밀집해 있어 혈액을 식힌다. 사진=새라와 레인, 위키미디어 코먼스

 

새는 비행을 하기 때문에 몸의 대사량이 많고 체온도 높다. 무더위 때 체온을 식히는 게 급선무이지만 몸이 깃털로 덮여있어 열을 내보내기가 쉽지 않고, 또 입을 열어 헐떡이다간 수분이 많이 빠져나가 건조한 곳에선 그럴 수도 없다.
 

다행히 부리가 열을 내보내는 방열판 구실을 한다. 부리는 새의 몸에서 깃털로 덮이지 않은 드문 부위인데다 계속 자라기 때문에 혈관이 밀집해 있어 체온을 식히기엔 맞춤한 기관이다.
 

브라질의 연구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부리를 가진 토코큰부리새의 부리가 몸속 열의 60%까지 방출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새가 몸길이의 3분의 1이 부리일 만큼 큰 부리를 지닌 이유를 놓고 짝짓기 상대를 유혹하려는 용도라거나 열매를 먹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분분했지만, 적어도 중요한 기능 하나가 밝혀진 것이다.
 

실험 결과 이 새의 부리는 몸 표면적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데, 혈관이 겉에서 보일 정도로 잘 발달해 휴식 때 내는 열의 4배를 방출하는 능력을 지닌다. 특히 비행 때 급격히 오르는 체온을 식히는 일이 중요하다.

 

이 새는 몸길이가 64㎝나 되는데, 30도이던 체온이 비행 10분 만에 37도로 솟아올랐다. 연구자는 “열을 내보내는 창문으로 코끼리에게 귀가 있다면 큰부리새에겐 부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bird%20bill.jpg » 울참새의 적외선 사진. 혈관이 몰려있는 부리가 주변보다 10도쯤 높다. 사진=러셀 그린버그 외, <진화>

 

최근의 연구에서는 울참새 등 작은 새의 부리도 열 방출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사실이 밝혀졌다.

(■ 자세한 내용은 '새들이 더위를 이기는 뾰족한 방법, 부리' 기사 참조)
 
◇ 잊히는 사람의 특권, 땀 흘리기
 

03986820_P_0.jpg » 땀 흘리는 사람.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넥타이를 풀고 반소매 셔츠를 입는 시원한 복장(쿨맵시)을 하면 에어컨 설정온도를 2도쯤 높여도 쾌적하다고 정부가 적극 권장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국립환경과학원의 실험 데이터를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실내온도가 25도일 때는 일반복장보다 쿨맵시를 한 사람의 피부 온도가 훨씬 낮게 나오는데, 온도가 27도로 오르면 그 차이가 거의 없어지고 기존 복장을 입은 어떤 이는 오히려 피부 온도가 더 낮다. 땀이 나면서 체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다른 연구에서도 이런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에어컨을 트는 시원한 사무실에서는 쿨맵시의 효과가 나지만 온도가 올라가면 ‘땀의 힘’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여름엔 땀을 부채나 선풍기로 식히고 손수건으로 찍어내며 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사실, 그것은 인간이 진화하면서 획득한 썩 괜찮은 냉각 방식이다.
 

포유류 가운데 땀을 흘리는 동물은 꽤 있지만 사람처럼 대량의 땀을 흘려 몸을 식히는 동물은 사람과 말뿐이다. 피부의 땀 1㎖가 수증기로 증발할 때 빼앗아 가는 열은 580㎈에 이른다.

 

피부 근처로 혈액을 많이 보내 증발열로 식힌 뒤 몸속으로 돌려보내는 방식으로 체온을 낮춘다. 사람은 하루에 최고 8~14ℓ까지 땀을 흘릴 수 있다.
 

게다가 땀에는 ‘덤시딘’이란 항균물질이 들어있으며 땀과 함께 분비되는 페로몬이 미묘한 메시지 전달 기능도 있음이 최근 드러나고 있다. 여름엔 어느 정도 땀을 흘리는 것도 나쁠 것 없다.
(■ 자세한 내용은 '여름철 땀은 내몸 안 천연 에어컨' 기사 참조)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ochen Smolka et. al., Dung beetles use their dung ball as a mobile thermal refuge, Current Biology Vol 22 No 20

 

Myhrvold CL, Stone HA, Bou-Zeid E (2012) What Is the Use of Elephant Hair? PLoS ONE 7(10): e47018. doi:10.1371/journal.pone.0047018

 

Glenn J. Tattersall et al., Heat Exchange from the Toucan Bill Reveals a Controllable Vascular Thermal Radiator Science 325, 468 (2009); DOI: 10.1126/science.1175553

 

Greenberg R, Cadena V, Danner RM, Tattersall G (2012) Heat Loss May Explain Bill Size Differences between Birds Occupying Different Habitats. PLoS ONE 7(7): e40933. doi:10.1371/journal.pone.004093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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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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