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과 눈은 왜 점봉산 북사면에만 수북할까

조홍섭 2008.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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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슭→마루 바람 따라 남사면에서 넘어가 쌓여
‘눈이불 덮인 낙엽’,식물 분포·효소 활성도 영향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점봉산과 인연을 맺은 세월이 15년을 넘겼다. 점봉산에 갈 때면 우리는 보통 아침 일찍 서울을 떠나곤 했다. 출근길이 막히기 전에 복잡한 도회 길을 벗어나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 6시에 서울을 떠나면 예전에는 홍천을 지나 구성포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점봉산 초입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런 일정을 밟아 연구지에 이르면 대략 오후 3시가 되었다.

 

두꺼운 눈 이불 덮은 북사면 땅은 얼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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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쯤이면 바람은 산기슭으로부터 마루를 향해서 분다. 가을부터 초겨울에는 그 바람을 타고 떨어진 낙엽이 산을 거슬러 오르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연구지에서는 많은 낙엽이 남사면에서 북사면으로 넘어가 쌓인다. 그런 까닭에 남사면 땅 위에는 낙엽이 아예 없는데 북사면에는 수북하게 쌓인다(남사면에는 때로 조릿대가 있는데 이때는 사정이 다르다). 북사면의 낙엽은 깊은 눈 아래서 겨울잠을 잔다.

 

비슷한 이치와 햇볕 때문에 겨울에도 남사면에는 눈이 쉽게 쌓이지 않는다. 그러나 북사면에는 겨울 내내 하늘과 남사면으로부터 날아온 눈이 쌓이고 따스한 햇볕마저 닿지 않으니 눈은 오래 견디며 버티고 있다. 3월이 지나 봄이 더욱 깊어 햇살이 강해지고 낮이 길어지면 북사면의 눈은 일시에 녹아내린다.

 

겨울에도 햇빛이 오래 닿는 남사면은 딱딱하게 얼어도 두꺼운 눈 이불을 덮은 북사면의 땅은 얼지도 않는다. 그 눈 이불 아래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곳에서 어떤 생물들이 겨울을 나고, 그 아래 두텁게 쌓인 낙엽은 그들의 삶에 어떤 존재일까? 깊은 눈에 눌려 떡처럼 뭉친 낙엽은 어떤 남다른 운명을 겪는 것일까? 겨울에도 얼지 않는 따스함과 축축한 물기 덕분에 빠르게 썩어 가는 그 모습은 말라 비틀어져 쉽사리 땅과 섞이지 못하는 도회의 낙엽과는 사뭇 다르다.

 

창덕궁 후원에서도 북사면엔 낙엽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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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의 점봉산 연구는 남-북 사면에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낙엽과 눈의 축적량이 도대체 그 땅에 무슨 조화를 부리는지 알고 싶어 시작되었다.

 

유역 단위의 생태계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분수령을 가로질러 들고나는 물질의 양을 비교한다. 1960년대 유역 생태계 연구로 생태학 분야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은 미국 예일대학교 보만(F. Herbert Bormann) 교수와 그의 연구 동료 라이컨스(Gene E. Likens) 박사다. 각각 삼림생태학자와 육수생태학자인 두 사람의 만남은 절묘한 인연이었다.

 

그들은 뉴햄프셔주 하바드브룩 시험림의 한 유역에서는 숲을 베어내고 제초제를 뿌려 2년 동안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하고, 비슷한 크기의 다른 유역은 자연 그대로 유지하면서 여러 가지 생태적 현상을 비교했다. 이를테면 비와 눈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물이 유역으로 공급되고, 증발산과 강물로 어느 정도의 물이 빠져나가는지 관찰했다. 또 유역에 공급되고 유실되는 물질의 양도 비교했다. 이렇게 계획된 생태계 수준의 연구는 여러 가지 새로운 결과물을 내었다. 육상 생태계 수준에서 진행된 유일한 성공적 실험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그들은 낙엽이 능선을 넘는 부분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태계에서 그런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많은 양의 눈과 낙엽이 이쪽 유역에서 저쪽으로 넘어간다면 전체 과정에서 그 부분을 무시해서는 안 될 특이한 현상이다. 나중에 강릉대학교에서 식물군집을 연구하는 이규송 교수는 점봉산에서 낙엽이 쌓이는 정도에 따라 식물의 분포에도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최근에 연세대학교 강호정 교수는 남-북 사면의 토양에서 효소 활성도의 차이를 밝히고, 쌓인 낙엽의 양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추론했다. (2008년 현재 일본 생태학회지 발표 준비 진행)

 

이런 독특한 현상은 아마도 점봉산 지형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나 서울 근교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어느 해 2월 초 창덕궁 후원에서 나는 그 광경을 목격했다.

 

※ 2004년에 낸 졸저 <흐르는 강물 따라>와 <이장 소식지> 2004년 10월호>에 실은 것을 일부 고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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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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