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려난 제돌이를 친구들은 어떻게 알아봤을까

조홍섭 2013. 08. 13
조회수 31377 추천수 0

큰돌고래 개체마다 독특한 휘파람 신호음…이름처럼 부르면 대답해

기억 기간은 최소 20년, 제돌이 등 3~4년 헤어져 동료 기억은 너끈

 

04787870_P_0.jpg » 제주 바다에 풀려난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등지느러미에 '1'이란 숫자가 적힌 개체)가 지난 3일 동료 무리와 함께 헤엄치고 있다. 사진=제돌이방류시민위원회

  
지난 7월18일 공연용으로 불법포획된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춘삼이가 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아갔다. 앞서 가두리에서 야생 적응 훈련을 받던 삼팔이도 탈출했다. 다행히 이들 세 마리의 돌고래는 모두 동료 돌고래 무리에 섞여 헤엄치는 모습이 곧 확인됐다. 고향을 떠난 지 3~4년 만에 다시 만난 예전 무리의 돌고래가 이들 세 마리의 귀향 돌고래를 어떻게 알아봤을까.
 

직접 증거는 없지만, 분명한 건 옛 동료가 이들을 알아채고 무리에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이런 대화를 나눴을까. “소리를 들으니 너 맞구나!” “응, 반가워. 오랜만이다.”
 

dol2.jpg » 물 위로 뛰어오르는 스코틀랜드의 야생 큰돌고래. 사진=빈센트 재니크, 세인트 앤드류스 대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먼저, 돌고래가 서로 ‘이름’을 부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국과 미국 연구자들은 야생 큰돌고래 250마리를 임시로 포획해 서로 보지는 못하고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격리한 채 실험을 했다. 돌고래들은 아주 빈번하게 휘파람 비슷한 소리를 냈다.
 

흥미롭게도 한 돌고래가 내는 휘파람 소리를 다른 돌고래가 흉내 냈다. 흉내 낸 돌고래가 평소에 내는 휘파람 소리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이 돌고래가 흉내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돌고래가 자기 소리를 흉내 내면 대답하기도 했고, 떨어져 있을 때 찾는 돌고래의 소리를 내 부르기도 했다. 이 큰돌고래의 휘파람 소리는 사람의 이름 부르기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런 소리 흉내는 가족이나 가까운 동료 사이에서만 나타났다.

 

dol1-1.jpg » 큰돌고래의 휘파람 신호 음파 분석. 맨위가 한 수컷의 신호, 가운데는 이것을 흉내낸 소리, 맨아래는 흉내낸 수컷의 내는 휘파람. 그림=킹 외, <Proc R Soc B>

 

그렇다면 돌고래는 친구의 소리를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할까. 미국 시카고대 연구자들은 동물원과 수족관 6곳에서 기르고 있는 43마리의 큰돌고래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이들은 번식을 위해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녔지만 모든 기록이 잘 보관돼 있었다.
 

연구진은 수족관에서 돌고래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 물속 스피커를 통해 녹음한 돌고래의 휘파람 소리를 들려주었다. 예전에 함께 살았던 돌고래라면 즉시 스피커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주변을 돌아다니며 신호를 보냈다. 심지어 한 돌고래는 자기 새끼를 데리고 와 자기가 알던 돌고래의 소리를 들려주기도 했고, 스피커를 치우자 화를 내기도 했다.
 

반대로 함께 있지 않았던 돌고래의 소리는 무시했다. 또 어릴 때 무리의 지도자였던 거친 수컷 돌고래의 소리를 들려주자 경계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이 실험에서 극단적인 사례는 베일리라는 이름의 돌고래다. 이 돌고래가  2살 때 4살짜리 돌고래 앨리와 함께 지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년 6개월이 지난 뒤 베일리에게 앨리의 소리를 들려줬더니 즉각 알아챘다. 이것을 볼 때 다른 돌고래와 열 살까지 함께 살았고 4년 동안 그들과 헤어진 제돌이를 동료가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들이는 건 큰돌고래에게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Kai was one of the dolphins in the study, he was 16 years old when this picture was taken.jpg » 기억력 실험에 참여한 16살짜리 큰돌고래 카이. 사진=제이슨 부룩  
 

큰돌고래는 약 50살까지 사는 장수동물이고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다시 합류하기도 하는 복잡한 사회생활을 한다. 따라서 멀리서도 상대가 반가운 친구인지 피하는 게 좋은 돌고래인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돌고래의 소리가 개체의 이름처럼 독특하고 오랜 기간 기억된다면, 앞으로 흉터나 지느러미 모양과 함께 돌고래의 개체를 식별하는 주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ruck JN. 2013 Decadeslong, Social memory in bottlenose dolphins, Proc R Soc B 280: 20131726, http://dx.doi.org/10.1098/rspb.2013.1726

 
King SL, Sayigh LS, Wells, RS, Fellner W, Janik VM. 2013 Vocal copying of individually distinctive signature whistles in bottlenose dolphins.  280: 20130053, http://dx.doi.org/10.1098/rspb.2013.0053
 

Stephanie L. King and Vincent M. Janik, Bottlenose dolphins can use learned vocal labels to address each other, PNAS, 0.1073/pnas.130445911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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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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