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 일으키는 열매, 씨앗 멀리 보내려는 전략

조홍섭 2013. 0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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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멀리 보내려면 열매에 변비 성분을, 빨리 배설하게 하려면 설사 성분 넣어

반달가슴곰은 씨앗 퍼뜨리는 '숲의 농부', 산양은 헛개나무 '자궁'

 

seed0.jpg » 열매의 목적은 씨앗을 잘 퍼뜨리는 것이다. 까치가 먹는 이 감에 들어있는 탄닌 성분은 변비를 일으켜 감 씨앗을 더 먼 곳에 배설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하는지 모른다. 사진=강재훈 선임기자

 
■ 누구를 위한 열매인가

 

과육이 있는 열매는 야생동물에게 소중한 영양원이다. 그러나 열매를 맺느라 많은 투자를 한 식물로서는 잘 영근 씨앗을 멀리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야생동물과 열매 맺는 식물 사이에는 단지 먹고 먹히는 관계를 넘어선 복잡한 밀고 당기기가 벌어진다.
 

가지 속의 식물 열매에는 글리코알칼로이드가 들어있다. 이 화학물질이 식물에는 아무 소용이 없지만 열매를 먹는 새에게 변비를 일으킨다. 새는 이 열매를 먹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러니까 원래 식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씨앗을 배설한다. 화학물질이 씨앗의 확산을 부추기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가 생기는 것도 감의 씨앗 퍼뜨리기 전략과 관련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반대로 열매를 먹는 동물에게 설사를 일으켜 빨리 배설하도록 유도하는 열매도 있다. 씨앗의 활력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식물은 열매의 색깔, 향기, 맛으로 동물을 유인하고 동물은 이것을 당분, 비타민, 미네랄 등의 단서로 여긴다. 하지만 모든 식물이 솔직한 것은 아니다. 들쭉나무 열매 표면에는 안토시아닌 색소가 있어 먹음직하지만 그 정도의 농도로는 아무런 효능이 없다. 심지어 포도당보다 1000배나 단 인공 감미료 성분을 내어 동물을 유인하는 과일도 있다.
 

이처럼 식물 자체 필요가 아닌 먹는 동물을 위해 열매에 생기는 화학물질을 2차 대사물질이라고 부른다. 페놀, 탄닌, 알칼로이드 등이 그것인데, 이들이 정확히 동물에게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씨 뿌리는 ‘숲의 농부’ 반달가슴곰
 

seed1.jpg » 나무의 어린순을 따먹으며 노는 어린 반달가슴곰. 반달가슴곰의 주식은 채깃이고 제철 열매를 즐겨 먹는다.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요즘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머루와 다래 열매를 따 먹느라 분주하다. 곧이어 도토리로 배를 채우게 될 것이다. 5살 이상 된 반달가슴곰은 어린 멧돼지를 잡아먹기도 하지만 이들의 주식은 식물이고 곤충으로 단백질을 보충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이 2005~2011년 사이 지리산에서 수거한 73점의 반달가슴곰 배설물을 분석한 결과 가장 중요한 먹이는 조릿대 잎, 신갈나무 열매(도토리), 벚나무와 산뽕나무의 열매 등이었다.
 

곰의 먹이 가운데 과육과 함께 통째로 삼키는 씨앗은 배설물과 함께 산으로 돌아간다. 이배근 종복원기술원 동물복원부장은 6일 “반달가슴곰은 열매를 씹지 않고 다량 섭취한 뒤 여기저기 배설하기 때문에 씨앗을 확산시키는 구실을 한다. 여름이 오기 전 중요한 먹이인 버찌와 요즘의 머루·다래는 그런 열매”라고 설명했다.
 

seed3.jpg » 지리산 발달가슴곰 배설물에서 채취한 산벚나무 씨앗(오른쪽)은 나무에서 그냥 받은 씨앗보다 발아율도 높고 생장상태도 좋았다.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은 단지 씨앗을 퍼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싹트기를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종복원기술원은 반달가슴곰의 배설물에서 골라낸 산벚나무 씨앗과 나무에서 직접 딴 버찌 씨앗을 심어 비교했다. 그랬더니 배설물 속 씨앗의 발아율은 21%로 곰의 장기를 거치지 않은 씨앗의 발아율 12.5%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 부장은 “배설물 속 씨앗의 싹트기와 생장상태가 모두 좋았는데, 이는 소화과정에서 무언가의 이유로 씨앗을 휴면상태에서 깨우고, 씨앗 겉껍질에 영향을 주어 생장하면서 토양으로부터 영양분을 원활하게 흡수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선 반달가슴곰의 생태계 영향에 관한 연구가 활발한데, 도쿄대 신수케 코이케 연구원 등은 국제학술지 <오이코스>에 실린 논문에서 반달가슴곰이 15~20시간 동안 씨앗을 뱃속에 보유하는데다 장거리를 이동하기 때문에 온대지역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씨앗 확산자 노릇을 한다고 밝혔다. 이 연구에서 반달가슴곰이 먹은 씨앗의 40%는 나무에서 500m 떨어진 곳에 배설됐고 최고 확산거리는 22㎞에 이르렀다.
 

산양 똥 자리에서만 싹트는 헛개나무

 

seed2.jpg » 똥 자리에서 되새김질을 하는 월악산 산양. 그 옆에 대형 헛개나무가 자란 것이 보인다.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알코올성 간 손상을 개선하는 약용식물로 최근 인기가 높은 헛개나무는 중부지방 계곡이나 산 사면의 비교적 높은 곳 돌 틈에서 드물게 자라는데, 특히 월악산과 설악산에 많다.
 

월악산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산양을 복원해 현재 43마리가 서식하고 있으며, 산양의 이동 경로와 배설물 기록이 모두 남아있다. 산양은 한 곳에 똥 자리를 만들어 그곳에서 배설을 하는데 종복원기술원 연구진은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똥 자리에서 헛개나무가 잔뜩 돋아나고 있던 것이다. 조사 결과 산양은 헛개나무 열매를 다량 섭취한 뒤 똥 자리에 그 씨앗을 집중적으로 배설했다.
 

이용욱 산양복원팀장(현 치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등 연구진은 산양 배설물 속 헛개나무 씨앗과 산양이 먹지 않은 씨앗을 따로 심어 비교했다. 그 결과 산양의 소화기관을 거쳐 배설된 헛개나무 씨앗의 32.5%에서 싹이 튼 반면 산양이 먹지 않은 씨앗의 발아율은 0.8%에 그쳤다. 산양의 소화기관을 거치면서 발아율이 40배나 높아진 것이다.
 

헛개나무는 씨앗이 두꺼워 싹이 잘 트지 않기로 유명한데, 시중에선 황산을 이용해 씨앗의 껍질을 부식시키는 방법을 주로 쓴다. 이씨는 “산양이 헛개나무 열매를 먹고 되새김질을 하는 동안 씨앗의 두꺼운 껍질이 위산 등에 의해 소화돼 종자 발아를 촉진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연구진은 또 산양 배설물 속 헛개나무 씨앗을 배설물과 함께 심었을 때와 씨앗만 심었을 때의 발아율을 비교했는데, 배설물과 함께 심었을 때가 월등히 높다는 결과를 얻었다. 산양의 배설물은 양분뿐 아니라 수분을 더 오래 간직하는 등 헛개나무가 싹을 틔울 조건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관련 기사: 헛개나무는 산양이 '낳아' 기른다)
 

아마존의 씨 뿌리는 물고기

 

seed4.jpg » 아마존강에서 우기 때 열매를 먹어 씨앗을 퍼뜨리는 대형 물고기 탐바키의 모습. 사진=티노 스트라우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아마존강 유역에서는 홍수기마다 한반도보다 넓은 면적이 반년 이상 물에 잠긴다. 열대 칡 등 아마존 강변의 습지를 이루는 이 독특한 숲은 열매를 먹어 씨앗을 퍼뜨리는 물고기가 없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질 앤더슨 미국 듀크대 생물학과 교수 등 연구진은 포유류, 조류에 이어 어류가 식물의 씨앗 확산에 결정적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아마존강 지류에서 열매를 먹는 대형 어종인 탐바키의 몸속에 원격통신 장치를 삽입해 3년에 걸쳐 이동거리와 씨앗 확산 능력을 조사한 결과이다.
 

이 물고기는 물 위에 떨어진 열매를 소화시킨 뒤 남은 씨앗을 육지의 다른 어떤 동물 못지않게 멀리 떨어진 곳에 배설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거리는 평균 337~552m이고 최고 5.5㎞에 이르렀다. 탐바키 230마리의 뱃속에서 22종의 나무 열매 씨앗 7만 개를 온전한 채로 발견했다. 마리당 평균 300여 개의 씨앗이 들어있는 셈이다.
 

이는 이제까지 장거리 씨앗 매개동물로 꼽히던 아프리카 큰부리새와 인도코끼리의 기록을 넘어서는 것이다. 게다가 물고기에 의한 씨앗 확산은 육지에서보다 매우 효율이 높아 씨앗의 90%가 싹이 틀 수 있는 곳에 안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홍수가 나 숲이 물에 잠기면 나무들은 일제히 열매를 맺어 물 위에 떨어뜨린다. 탐바키 등에 먹힌 열매의 씨앗은 배설돼 물속에 가라앉는다. 범람기가 끝나 물이 빠지면 씨앗은 싹이 튼다.
 

씨앗을 퍼뜨리는 탐바키는 피라나 비슷하게 생겼으며 길이 1m, 무게 30㎏까지 자라 상업적으로 중요한 어종이다. 그러나 남획으로 이 물고기는 지역에 따라 90%까지 감소했고, 대형 개체만 포획을 허용함에 따라 평균 크기도 많이 감소했다.
 

연구진은 이런 남획이 아마존 습지 숲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경고한다. 큰 개체일수록 많은 씨앗을 간직해 더 먼 거리에 확산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영국왕립학회회보-비>에 실렸다.(▶ 관련 기사: 아마존숲 지키는 대형 물고기)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이용욱, 배창환, 정동혁,정승준, 정대호, 이배근(2011) 산양이 헛개나무 종자의 발아에 미치는 영향, 한국환경생태학회지 25(3) : 302~306, Kor. J. Env. Eco. 25(3) : 302~306. 2011

 

Jill T. Anderson, Tim Nuttle, Joe S. Saldaña Rojas, Thomas H. Pendergast, and Alexander S. Flecker, Extremely long-distance seed dispersal by an overfished Amazonian frugivore, Proc. R. Soc. B. 2011 278 1723 3329-3335doi:10.1098/rspb.2011.0155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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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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