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죽이는 풀…전국 하천에 '덩굴 대란'

조홍섭 2013. 10.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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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식물 가시박 비상…4대강 사업 이후 급격히 확산, 내년 대발생 우려

옥수수밭 등 농작물 피해도 속출, 강변에서 철도와 경작지로 확산

 

ga1.jpg » 지난달 26일 가시박 천지로 바뀐 금강 상류 범람원인 호탄 습지. 수많은 벌이 개화한 가시박 꽃에 모여 윙윙거리고 있었다. 올 봄 기사박을 제거하기 위해 갈풀로 덮여 있던 곳을 굴착기로 한 번 갈아엎은 뒤 후속 관리를 하지 않자 가시박이 습지를 완전히 점령했다.

 
가시박 병풍 친 내성천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크게 휘돌아 흐르는 경북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는 ‘모래 강’으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국내에서 생태계 교란식물인 가시박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강바닥과 강변의 모래처럼 수많은 외래 덩굴식물이 강변 둑과 언덕의 사면을 채우고 있다.
 

ga2.jpg » 경북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의 한 농민이 “지긋지긋한 잡초”라며 가시박 덩굴을 따 보여주고 있다.

 

지난 2일 찾은 회룡포의 강변 둑에는 밝은 초록빛의 호박잎 크기의 잎 위로 잔털이 가득 난 꽃대를 세우고 있는 가시박이 수 ㎞에 걸쳐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다른 식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유명한 관광지여서 수시로 제거작업을 하지만 가시박은 전혀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들깨를 털고 있던 주민 최순녀(56)씨는 “가시박이 7~8년 전부터 보였는데 올해 유난히 심하다. 약을 쳐 봐도 워낙 씨가 많아 한 포기만 남아도 무섭게 번진다. 열매의 가시가 옷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아 옷을 버려야 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ga3.jpg » 달라지는 여름 강변의 풍경. 가시박이 나무를 타고 올라 덩굴을 늘어뜨린 낯선 모습을 어느 강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사진은 금강 상류 영동군의 강변 모습.

 

ga4.jpg » 가시박이 점령한 금강 상류 영동군의 강변 풍경. 지난달 26일의 모습이다.

 

‘낙동강 제1경’을 자랑하던 경북 상주의 경천대도 회룡포처럼 강물이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곳이지만, 4대강 공사로 모래밭 위로 물이 벙벙하게 차 있는데다 강변과 언덕을 가시박이 뒤덮어 낯선 모습이었다. 가시박은 강변의 덤불과 나무를 덮은 데 이어 정자가 있는 언덕의 절반 가까이 기어오르며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덩굴은 멀리서 초록색 거미줄처럼 보였다.
 

동행한 홍선희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연구소 박사는 회룡포와 경천대에 가시박이 많은 이유를 “안동과 예천 등 주변에 가시박 씨앗의 유입원인 축산단지가 많은데다 강물이 자주 넘쳐 씨앗이 쉽게 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대강 사업이 당긴 ‘방아쇠’


ga9.jpg » 낙동강 상주보 아래 강변의 가시박 덩굴이 주기적인 제거작업에도 남아있다. 가시박은 4대강 사업 현장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이 됐다.  

 

북아메리카 원산의 덩굴성 식물인 가시박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1990년대 말부터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환경부가 생태계 교란 야생식물로 지정했지만, 최근 폭발적으로 번창해 ‘덩굴의 재앙’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보통은 나무 아래 풀이 자라지 못하지만, 마치 황소개구리가 뱀을 잡아먹듯이 1년생 풀이 나무를 죽이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가시박은 6~8월 왕성하게 자라 하루에 30㎝ 이상도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잎겨드랑이마다 열매를 맺는 다산성이어서 가시박 한 포기에서 최대 2만 5000개의 씨앗을 생산한다. 수박 씨앗처럼 생겼고 크기는 그보다 큰 가시박 씨앗은 땅속에 묻히면 60년 이상 발아력을 간직한 채 휴면할 수 있다.
 

ga7.jpg » 15~24개의 씨앗을 담고 있는 가시박 열매. 가시는 미세한 미늘이 달려 잘 빠지지 않으며 쉽게 부러져 찔리면 덧나기도 한다.

 

ga8.jpg » 수박처럼 생긴 가시박의 씨앗. 다른 식물보다 커 땅속 깊이 묻혀도 싹이 튼다.  

 

홍 박사팀이 가시박이 무리지어 자라는 경기도 양평의 강변에서 조사했더니 ㎡당 최고 2000개의 씨앗이 나왔다. 홍 박사는 “일반적으로 가시박이 있는 곳 토양 속에는 ㎡당 1000개의 씨앗이 묻혀있다고 보면 된다. 어마어마한 예비군이 땅속에 잠복해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가시박은 주로 강물을 따라 전파된다. 가시가 많고 가벼운 열매가 물에 떠 홍수기 때 하류로 이동하는 것이다. 하천 주변이 가장 먼저 가시박으로 뒤덮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이동한 씨앗은 땅속에 묻혀 싹트기 좋은 때를 기다린다.
 

강변의 토착 식물을 모조리 제거하고 햇빛이 잘 비치는 황무지로 만들어놓은 4대강 사업은 가시박에게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1980년대 말부터 가시박의 위험을 역설해 온 강병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명예교수는 2010년 발표한 논문에서 “4대강변의 ‘자전거 길’은 ‘가시박 길’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예견은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 교수는 “우리가 하천변을 너무 파헤쳤다. 전 국토에 외래종이 번창할 토양을 조성한 것이다. 가시박은 찬바람이 불면 곧 사라지지만 내년엔 더 무서운 기세로 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ga_3.jpg » 상주보 옆 잔디밭에서 9월에 싹이 터 벌써 꽃을 피운 어린 가시박. 4대강 사업 공사현장에 다량의 가시박 씨앗이 묻혀있음을 보여준다.

 

낙동강 상주보 아래 강변은 수시로 제거작업을 했는데도 가시박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보 인근 잔디밭 한가운데 어른 손가락만 한 가시박이 돋아나고 있었다. 9월에 싹튼 어린 개체임에도 벌써 꽃을 매달아 악착같은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홍 박사는 “흙 속에 가시박 씨앗이 많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낙동강의 상류부터 하류까지 강둑은 가시박으로 거의 이어져 있다. 특히 강정보 주변 달성습지에는 대규모 가시박 군락이 펼쳐져 있다.
 
잘못 손대면 더 번져


ga11.jpg » 섣부른 제거작업으로 오히려 가시박 천지가 된 금강 호탄 습지.

 

가시박은 생태교란 외래종으로 지자체마다 제거작업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이 덩굴식물을 이길 뾰족한 방제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하천변에선 수질오염 때문에 제초제를 사용하지 못한다. 자칫 제거작업이 오히려 가시박을 번창하게 하는 역효과를 빚을 우려도 있다.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의 금강 범람원인 호탄 습지가 그 예이다.
 

습지에 들어서면, 바닥에 끝없이 펼쳐져 있고 10m가 넘는 포플러 나무까지 집어삼킨 가시박에 압도된다. 200~300종의 식물이 살던 이 습지에는 현재 가시박 등 손가락에 꼽을 식물밖에 없다.
 

ga5.jpg » 호탄 습지에서 기존 식물 위로 가시박이 덮어 '가시박 무덤'이 형성됐다.

 

ga6.jpg » '가시박 무덤' 안에서 밖을 본 모습. 원 식물은 누렇게 죽었고 초록 가시박이 그 위를 덮고 있다.  

 

지난봄까지 이곳엔 다년생 토종 식물인 갈풀이 덮고 있었다. 그대로 두었더라면 가시박이 나오더라도 일부를 차지하는데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6월 지자체는 가시박을 퇴치하기 위해 이 일대를 굴착기로 갈아엎었다. 공사 뒤 3주일이 지나자 습지는 다시 가시박으로 덮였다.
 

홍 박사는 “기왕 갈아엎으려면 늦여름에 한 번 더 했다면 토양 속 종자를 소진시키는 효과를 봤을 것이다. 가시박을 제거하려면 싹이 모두 나오는 9월 초 꽃 피기 직전 하는 것이 좋고, 이를 7년간 계속해야 모두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ga10.jpg » 상주보 상류 자전거 도로 옆 강변에서 가시박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두 주일쯤 지나면 고스란히 원 상태로 돌아간다.

 

일회성으로 봄에 가시박 제거 행사를 벌여 봐야 보름 뒤엔 원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시박 제거에 장기간 관심을 갖고 예산을 투입할 지자체는 많지 않아 보인다. 

 

홍 박사팀은 현재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용역을 받아 가시박에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과 가시박을 죽이는 식물 추출물을 개발하는 등 종합 방제 대책을 3년째 연구하고 있다. 
 
농경지도 위험하다
 

ga18.jpg » 경기 남양주시의 한 비닐하우스 단지에 침투해 들어가가는 가시박 군락의 모습.

 

가시박은 넓은 잎으로 햇빛을 가리고 영양분과 수분을 독차지해 강변 습지 등의 자생식물은 물론 나무까지 말라죽게 한다. 생물다양성을 위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덩굴식물이 강변에서 내륙의 철로변, 도로, 야산으로 번지면서 최근 농경지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불현리는 강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가시박이 농지를 포위한 가운데 농민들은 이 외래식물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료용 옥수수를 재배하는 밭에는 가시박 덩굴에 덮여 수확을 포기한 옥수숫대가 눈에 띈다. 가시박은 인삼밭 차양막 일부를 뒤덮고 있었고 덩굴 일부는 이미 안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ga12.jpg »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불현리의 옥수수밭은 이미 가시박의 피해를 입고 있다.

 

ga13.jpg » 가시박 등쌀에 수확을 포기한 옥수숫대가 서 있다.

 

옥수수밭 3만 3000㎡를 경작하고 있는 주민 정지선(73)씨는 지난해 가시박 덩굴에 덮인 밭 2000㎡를 갈아 엎은데 이어 올해엔 660㎡에서 수확을 포기했다. 올해 가시박이 줄어서가 아니라 “밭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덩굴을 잘라낸 덕분”이다.
 

그는 “3.3㎡에서 17개꼴로 가시박 싹이 나온다. 매주 뽑아내는데 몇 개만 빠뜨려도 엄청난 기세로 번진다. 게다가 옥수수가 큰 뒤에는 가시박을 뽑기도 쉽지 않고 제초제 비용 부담도 커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가시박과의 전쟁’을 4년째 해 오고 있다.
 

ga14.jpg » 경기 안성시 보개면 불현리의 한 폐가를 가시박이 '접수'했다. 집 주변의 가시박을 방치하고 몇 주일 집을 비우다간 이런 꼴을 당하기 십상이다.

 

보개면사무소는 가시박이 담장처럼 둘러싸고 있다. 불현리 마을에서 한때 양잠을 하던 버려진 건물은 가시박이 완전히 점령해 ‘녹색 집’이 됐다. 여름 한철 기승을 부리다 사라지던 낯선 덩굴식물의 침공이 본격화하고 있다.
 
상주·예천·안성/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가시박은 어떤 식물?

 

ga15.jpg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고려대 부속농장에 있는 향나무를 뒤덮은 가시박의 밑둥. 1년생 풀이면서 몇 달 새 지름 5㎝ 크기로 자랐다.

 

북아메리카 원산인 한해살이 박과 덩굴식물이다. 자생지인 미국에서도 옥수수와 콩 작물의 유해 잡초로 등록돼 있으며 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등에서 생태계 교란과 옥수수 등 농업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일본에서는 옥수수밭 10㎡당 가시박 15~20개체가 들어오면 수확량이 80% 감소하고 28~50개체 침입으로 수확량의 90~98%가 사라졌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나라는 사료용 옥수수의 대량 도입과 일상적인 하천개발로 세계적으로도 가시박이 높은 밀도로 번진 나라로 꼽힌다.
 

ga16.jpg »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역 역사 옆의 가시박 군락.

 

ga17.jpg » 경기도 남양주시 양정역 근처 철도 주변을 가시박이 덮고 있다.  

 

1970년대 초반과 후반 각각 경북 안동의 논둑과 경기 포천의 군부대 주변에서 무성한 가시박을 보았다는 주민의 증언이 있어 그때부터 축산단지에 사료와 함께 유입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1989년 안동시 농촌지도소는 하천변에 자라던 이 식물을 박과 식물의 접붙이기 밑나무용으로 활용하는 길을 열었고 그 공으로 1992년 제1회 대산농촌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때 가시박은 ‘안동 오이’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가시박이 확산한 원인은 대목 활용이 아니라 축산단지에 사료용 옥수수와 섞여 들어온 씨앗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다른 식물보다 늦은 5월 초에 싹이 나는데, 이때는 음지에서 광합성 효율이 높은 특성을 보인다. 여름에 왕성한 생장을 보여 3~4개로 갈라진 덩굴손을 사방에 뻗어 10m 이상 되는 나무도 기어오른다.
 

물에 2~3일만 잠기면 쉽게 죽지만 올해 큰비가 오지 않아 예년보다 더 번창한 것으로 보인다. 서리를 받으면 곧 죽는데, 죽은 덩굴이 나무에 그물처럼 걸려 겨우내 강변에 을씨년스런 풍경을 연출한다.
 

ga19.jpg » 중앙선 폐 철도를 뒤덮은 가시박 군락. 주변의 농경지와 야산으로 확산되는 교두보 구실을 한다.

 

한강의 춘천, 원주, 서울, 양수리 등에 널리 분포하고 낙동강 전역, 금강과 영산강, 섬진강에도 군데군데 출현한다. 서울에서는 난지도 하늘공원,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 워커힐 호텔 앞, 밤섬 등에 분포하고 경기도 남양주시의 양정역 일대, 금곡역 앞, 중앙선 폐 철도 등에도 대규모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가시박은 오래 전에 국내에 유입된 환삼덩굴, 칡과 더불어 ‘덩굴의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3대 덩굴 식물의 하나이지만, 이들 가운데 가장 급속한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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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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