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바람 일으켜 포자 퍼뜨린다

조홍섭 2013.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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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갓에서 수증기 내 주변 냉각, 공기대류 이끌어

하루 수십억개 포자 확산 비결은 '내가 만든 바람'

 

Patrick Hickey.jpg » 광대버섯의 포자가 날리는 모습. 작은 키이지만 스스로 만든 공기흐름을 타고 이동한다. 사진=패트릭 히클리

 

식물은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동물의 털에 들러붙고 날개를 이용해 바람을 타거나 동물에 먹히기도 한다.
 

버섯은 식물처럼 보여도 동물도 식물도 아닌 균류라는 생물 집단에 속한다. 흙속의 균류가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땅위로 내미는 버섯(자실체)이 바로 식물의 생식기관인 꽃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버섯의 갓 아래에 촘촘하게 난 주름 속에서 성숙한 포자는 식물의 씨앗과 마찬가지로 멀리 퍼져나가야 한다. 그러나 식물에 견줘 버섯은 불리한 여건을 안고 있다. 땅 표면에서는 바람이 거의 없어 키가 작은 버섯이 포자를 바람에 날려보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미사일처럼 포자를 멀리 쏘아 날리거나 빗방울, 또는 동물의 힘을 비는 버섯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버섯은 단지 바람의 힘으로 포자를 퍼뜨린다. 그런데도 밀의 녹병 곰팡이가 바람을 타고 2000㎞나 퍼진 기록이 있는 것처럼 균류의 포자는 일단 바람을 타면 아주 멀리까지 이동한다.
 

이를 위해 포자는 식물의 씨앗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고 수가 많다. 먼지버섯은 성숙하면 갓이 갈라지면서 포자가 바람에 날아가는데, 살아남기 적당한 곳에 도달할 확률은 로또에 당첨될 만큼 낮다. 따라서 이 버섯 하나는 수 조개의 포자를 만들어 날린다.
 

Emilie Dressaire & Marcus Roper.jpg » 미세한 표고버섯의 포자가 날리는 모습(왼쪽). 사진=에밀리 드레세르, 마르쿠스 로퍼

 

가벼운 포자를 많이 날리는 것만으로 균류의 번창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과학자들은 최근 버섯이 갓 주변의 공기 흐름을 미묘하게 바꾸어 포자를 확산시킨다고 믿고 있다.
 

갓이 종 모양인 버섯은 키가 작지만 하루 수십억 개의 포자를 퍼뜨리는 등 포자 확산 능력이 빼어나다. 기류의 미묘한 흐름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갓 바로 밑에는 바람의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지는 두께 2~3㎜의 공기 띠가 있고, 그 밑에서는 공기의 속도가 빨라진다. 갓에서 떨어진 포자가 다시 갓의 주름에 갇히지 않고 떨어져 빠른 공기를 타고 퍼지도록 한 것이다.
 

땅바닥 근처에는 공기가 거의 흐르지 않는 층이 있고, 버섯에서 바람이 불어가는 쪽에는 공기의 소용돌이가 생긴다.
 

mush.jpg » 버섯 주변의 공기 흐름. 갓 바로 아래에는 속도가 낮고 그 아래에서 강해진다. 지표 근처에는 정체된 층이 있다. 버섯 바람아래에는 와류가 흐른다. 그림=호주 국립식물원

 

최근 미국 과학자들은 버섯 주변에 생기는 이런 미세한 공기변화를 버섯이 일으킨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버섯이 스스로 바람을 만들어내 포자를 그 바람에 실어 보낸다는 것이다.
 

에밀리 드레세르 미국 트리니티 대 교수팀은 25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미국물리학회 유체역학 분과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이런 주장을 폈다.
 

연구진은 느타리버섯과 표고버섯이 포자를 퍼뜨리는 모습을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뒤 수치 모델링 기법을 이용해 분석했다. 그랬더니 버섯은 갓 주변에 수증기를 내 공기를 국부적으로 냉각시키는데, 더운 공기가 상승하고 찬 공기가 하강하는 순환을 연쇄적으로 불러 버섯 주변의 공기를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드레세르는 “이 공기 흐름은 포자를 버섯에서 내보내기에 충분했으며, 이를 통해 주변에 아무리 바람이 없는 환경에서도 버섯은 포자를 날릴 수 있었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공동 연구자인 마르쿠스 로퍼(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는 “보통 버섯은 포자를 만드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연구로 버섯이 바람을 만들어 미기후를 변화시키는 구실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2_600px-Barometer_Earthstar_(1025504238).jpg » 빗방울을 받으면(오른쪽) 폭발하듯 포자를 밖으로 방출하는 목도시흙밤버섯의 일종.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버섯은 공기를 통하지 않고도 포자를 퍼뜨리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했는데, 목도시흙밤버섯은 빗방울이 버섯을 때리면 포자가 튀어나오며, 찻종버섯은 포자가 들어있는 자낭이란 주머니가 수분을 흡수해 내부 압력을 늘려가다 결국 미사일을 발사하듯 포자 주머니를 쏘아낸다. 또 송로는 땅속에서 열리지만 향기에 이끌린 동물이 먹도록 유도해 배설물과 함께 퍼지기도 한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 Deering et. al., “Airflow patterns around mushrooms and their relationships to spore dispersal”, Mycologia 95(2001) 732-73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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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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