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청 높인 ‘네 탓’ 공방에 기후변화 대응 먹구름

김정수 201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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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 기후회의 결산

결정문에 '공약' 대신 '기여' 표현, 각국 목표치 제출 시한도 모호

필리핀 태풍 하이옌 여파로 '손실과 피해' 메커니즘 마련 성과

 

바르샤바 기후회의2.jpg » 제19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의장인 마르친 코롤레츠 폴란드 환경부 장관과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이 22일 바르샤바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바르샤바/신화 뉴시스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기후변화 대응 체제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계속 가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런 합의가 늦지 않게 이뤄질지, 그렇게 만들어질 기후변화 대응 체제가 지구를 기후 재앙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한층 짙어지게 됐다.
 

지난 11일부터 23일까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9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9)에 참석한 190여개국 대표단이 논의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하나는 2020년 이후 적용할 새로운 기후변화 대응 체제 협상이 2년 뒤 프랑스 파리 제21차 당사국총회에서 마무리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협상 일정을 확정하는 것이었다. 이번 총회에서 이 문제에 진전이 없으면 2021년으로 예정된 새 기후 체제 출범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새 기후 체제에서의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둘러싼 미국, 유럽연합 등의 선진국 그룹과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 사이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회의 폐막 예정일을 하루 넘긴 23일 오후(현지시각)에야 마무리됐다. 회의에 참가한 190여개 나라 대표단은 22일 밤을 꼬박 새운 30여시간의 마라톤회의 끝에 “모든 나라가 새로운 기후 체제에서의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5년 말 제21차 당사국총회 개막 이전에 명확히 제시한다”는 데 합의했다.
 

개발도상국들은 1992년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구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진국들은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당사국총회에서의 합의에 따라 개도국도 선진국과 같은 감축 의무를 져야한다고 맞섰다.

 

이런 대립은 모호한 표현으로 타협됐다. 이번 회의의 결정문에는 각 나라가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용돼 온 ‘공약한다(commitment)’는 표현보다 구속력이 떨어지는 ‘기여한다(contribution)’는 표현이 사용됐다.
 

각 국이 내놓는 감축 목표를 바탕으로 한 상향식 감축량 결정이 제대로 되려면 2014년 말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제20차 당사국총회 전까지 각 나라의 감축 목표가 모두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목표 제출 시한은 2015년 말 파리 당사국총회 개막 시점으로부터 ‘상당히 앞선 시간(well in advance)’과 ‘준비가 된 나라들은 2015년 1분기까지’로 결정됐다. 중국과 인도 등 일부 개도국의 반대로 모호하게 설정된 감축목표 제출 시한은 2015년 협상 완료 목표달성 자체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바르샤바 기후회의3.jpg » 제19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가한 예브 사뇨 필리핀 수석대표가 23일 폐막식에서 '71만107명이 필리핀과 함께 한다'고 쓰인 포스터 뒤에 앉아 있다. 사진=바르샤바/신화 뉴시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일찍 제출해 국제사회의 집중적인 평가 대상이 되는 것을 좋아할 나라는 없다. 결국 각 나라는 다른 나라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제출 시기를 조절하게 된다. ‘준비가 된 나라들’의 제출 시한이 2015년 1분기로 설정된 것에 미뤄보면, 대부분의 나라가 2015년 1분기 이후부터 회의 개막 직전까지 사이에 집중적으로 감축 목표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이번 결정대로면 각 국의 온실가스 감축의지가 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 국이 제시한 감축 목표가 형평성에 맞는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2℃ 상승 억제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것인지 평가하고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된다”고 말했다.

 

각 나라가 제출한 감축 목표를 얼기설기 엮어 2015년 기후변화 협상 마감시한을 맞추지 않으려면 협상 마감시한을 2015년 이후로 늦춰야만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후체제 구성 합의문을 각 국이 비준해서 발효시키는 시한을 고려할 때, 합의가 2015년 이후 이뤄지면 새 기후체제의 2020년 출범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번 회의는 다른 주요 의제들에서도 주목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20년 새로운 기후체제가 출범하기 전까지 교토의정서에 기초해 온실가스 감축이 계속돼야 하지만,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이미 쿄토의정서 불이행 방침을 천명한 상태다.

 

게다가 일본은 이번 회의 기간에 온실가스 감축 공약을 애초 1990년 배출량 대비 25% 감축에서 2005년 배출량 대비 3.8% 감축으로 바꾸겠다고 밝혀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3% 늘리겠다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회의에서는 교토의정서 이행과 관련해선 아직 2020년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국가들에게 감축 목표를 빨리 내놓으라고 촉구하는 선에 머물렀다.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재정 지원에 대한 논의도 핵심인 2020년까지 녹색기후기금(GCF)으로 1000억달러를 조달할 방안에 대한 구체적 진전은 없었다. 사무국 유치국인 우리나라가 장기 재원 논의를 위한 고위급 작업반을 설치하자고 제안한 것이 일부 수용돼, 2년 마다 기후재정 관련 장관급 회의를 열고 선진국에게 재원확대 전략 제출을 요구하는 것 등이 최종 결정문에 반영됐다.
 

이번 회의에서 구체적 진전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2005년부터 시작된 개도국의 산림 전용과 산림황폐화 방지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REDD+) 협상을 마무리한 것과, 기후변화에 특히 취약한 개발도상국들이 기후변화로 입는 ‘손실과 피해’에 대응하기 위한 ‘바르샤바 메커니즘’을 구축한 것 정도다.
 

‘손실과 피해’ 문제는 지난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기후변화 당사국총회 결정문에 등장한 지 1년 만에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에 대한 위험관리, 관련기구와 조직ㆍ이해관계자 간 연계, 재정ㆍ기술 지원 등을 위한 별도의 집행위원회를 설치에 합의하는 단계까지 나갔다. 새로운 재정 부담을 우려한 선진국들이 강하게 반대하는 가운데서도 이만큼이나마 진전된 것은 당사국총회 개막 사흘 전 초강력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의 해안도시 타클로반에 불러온 참상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총회를 주최한 폴란드의 의장국가로서 이해할 수 없는 행보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역사의 오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폴란드는 총회 기간에 세계석탄협회 총회를 개최하고, 당사국총회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총회 의장인 마르친 코롤레츠 환경부장관을 전격 해임하기까지 했다. 기후변화 회의의 성공은 주최국이 합의 도출에 얼마나 적극적이냐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에서 이번 회의에서 더 진전된 성과가 나오지 못한 데는 폴란드의 책임도 적지 않다.
 

안병옥 소장은 “지금으로서는 내년 9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초청으로 뉴욕에서 열리는 기후정상회의에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새로운 기후체제에 대한 완전한 합의는 2016년이나 그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기고 /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최악'으로 기록될 바르샤바 기후협상

 

바르샤바 기후회의1.jpg » 환경운동가들이 22일 회의장인 바르샤바 국립경기장 밖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부터), 아베 일본 총리, 메르켈 독일 총리,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기후변화에 더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바르샤바/신화 뉴시스

 

예상했던 대로 그들이 바르샤바로 가져온 가방 속에 이렇다 할 카드는 들어있지 않았다.  퇴장과 철수, 상호 비난 등으로 얼룩진 회의였지만 190여 개국 대표단들이 결정문에 도장은 찍었으니 파국은 피한 셈이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2015년 새로운 기후체제에 합의해야 하는 기후변화 당사국총회가 열릴 ‘파리로 가는 길’은 더 불투명해졌다.
 

이번 회의를 통해 해소되길 기대했던 주요 쟁점의 하나인 온실가스 감축책임 분담과 관련해 각 국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공약’(commitment)한다는 표현 대신 ‘기여(contribution)’한다는 애매한 결정문이 나온 것은 2011년 더반 플랫폼에서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당시 유럽연합은 새 기후체제의 법적 구속력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 ‘법적 체제'(legal instrument)를 가진 의정서’라는 구절을 넣으려 했지만 ‘법적 결과물'(legal outcome)로서의 의정서’를 고집하는 인도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야 했다. 결국 ‘법적 효력을 가진 합의 결과물(agreed outcome with legal force)’이라는 타협적 표현으로 봉합됐지만, 이 표현이 어느 정도의 구속력을 의미하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다.
 

또 다른 쟁점인 녹색기후기금(GCF)도 여전히 신기루에 가깝다.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까지 조성하기로 한 1000억 달러를 누가 얼마나 내놓을 것인지 구체적인 결정은 기약 없이 미뤄졌고, ‘새롭고 추가적인 재원’에 대한 해석과 조달 방식은 불씨로 남겨졌다. 기후변화에 따른 극한 기후현상과 해수면 상승 등의 피해 구제를 위한 ‘손실과 피해’ 대응도 기존 적응체제 아래서 시작하되 3년마다 효과를 평가하는 것을 전제로 한 ‘바르샤바 메커니즘’으로 타협됐지만, 재원 조달과 관련해선 마찬가지로 어떤 결정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총회는 산림 분야에서 2억8000만 달러 규모의 재정 지원과 평가방법론, 운영조직 설립, 재정지원 방안 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는 등 성과도 일부 남겼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기후변화협상의 역사에서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더반 플랫폼 합의 이후 2년이 흘렀지만 2015년까지 협상을 타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의지와 준비가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바르샤바 당사국총회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패했다. 지난 9월27일 발표된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제5차 보고서는 지구 평균 기온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 이내에서 억제하려면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이 1조t을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과 같은 배출 추세를 유지할 경우 이 수치는 2040년 11월25일에 도달하게 된다. 해야 할 숙제를 뒤로 미룰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주 화요일 바르샤바 총회장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연과 협상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2035년까지 에너지 수요를 엄청나게 부풀린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부터 바로잡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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