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 잘 죽는 곳, 독수리 귀신처럼 안다

조홍섭 2014. 01. 20
조회수 38706 추천수 0

동아프리카 독수리, 세렝게티 초원의 초식동물만 따라다니지 않아

무선 원격 측정 결과, 우기 땐 한반도 면적 돌아다니며 사망률 높은 찾아다녀

 

Corinne Kendall_WCS_s.jpg » 누의 주검으로 배를 채운 주름민목독수리가 날개를 편 채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사진=코린 겐달, 세계 보전 협회

 

동아프리카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발굽동물 집단이 철 따라 이동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케냐 마사이 마라 국립고원 사이를 130만 마리의 누와 18만 마리의 얼룩말 그리고 25만 마리의 톰슨가젤과 그랜트가젤이 먹이인 풀을 찾아 이동한다.
 

 

마라-세렝게티 생태계라 불리는 이곳은 오로지 죽은 동물만 먹고사는 청소동물의 최대 분포지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독수리는 굶주림이나 질병으로 죽은 동물을 먹는 대표적 청소동물인데, 최근 급격히 수가 줄고 있다.
 

 

Stig Nygaard_640px-Wildebeests_walking.jpg » 11월 건기가 절정인 동아프리카 초원을 누 무리가 걸어가고 있다. 이때 누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 사진=스티그 니고어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제까지 독수리는 대규모 초식동물의 이동 경로를 따라다니며 죽은 동물을 먹는 것으로 추정해 왔다. 동물이 많은 곳에 당연히 죽는 동물도 많을 것이다. 누는 해마다 25만 마리가 태어나는데 이 가운데 25%는 한 돌을 맞지 못하고 죽는다. 또 먹을 것이 없는 건기엔 하루에도 수백 마리의 대형 초식동물이 죽어나간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독수리는 언제나 동물 무리를 따라다니는 것만은 아니었다. 코린 켄달 미국 콜럼비아대 박사 등 연구진은 이 지역에 서식하는 주름민목독수리, 흰허리민목독수리, 두펠독수리 등 3종 39마리에 무선 원격측정장치를 부착해 이동 경로를 조사했다.
 

 

map.jpg » 3가지 독수리의 이동 경로(점 무늬). 회색 부분은 누 무리를 나타낸다. 우기에는 독수리와 누의 경로가 상당 부분 중복되지 않고 건기에 일치함을 보여준다. 위 왼쪽 1~4월(우기), 위 오른쪽 5~6월(우기에서 건기로), 아래 왼쪽 7~10월(건기), 아래 오른쪽 11~12월(건기에서 우기로). 그림=코린 겐달, <플로스 원>

 

조사 결과 독수리와 초식동물의 이동 경로가 중복되는 것은 이제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30%에 지나지 않았다. 독수리들은 건기 동안은 초식동물을 따라다녔지만 우기 때는 다른 곳에서 주로 먹이를 찾았다.
 

 

마라-세렝게티에는 해마다 2월 초부터 4월 말까지 비가 오고 11월부터 12월 사이에도 잠깐 우기가 온다. 건기는 6월부터 11월까지 계속되는데, 초식 동물에게 이 기간은 매우 힘든 시기이고 따라서 성체의 사망률도 이때 최고조에 이른다.
 

 

Hein waschefort_640px-Lioness_at_kill.jpg » 암사자가 먹고 남긴 얼룩말의 주검을 주름민목독수리가 노리고 있다. 사진=하인 워쉬포르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독수리는 건기 동안 초식동물 무리를 따라다니며 번식을 한다. 다량의 먹이가 지속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새끼를 기르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기가 오면 독수리들은 상대적으로 건조한 곳을 찾아 먼길을 떠난다. 연구책임자인 켄달은 “독수리가 찾아다니는 곳은 야생동물이 가장 풍부한 곳이 아니라 그들이 가장 잘 죽는 곳임을 우리 연구는 보여준다. 다시 말해 독수리에게 중요한 건 먹이 동물의 풍부함이 아니라 그 사망률이라는 것이다.”라고 ’야생동물 보전 협회(WCS)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Zeddammer_640px-Gyps_rueppellii_(Avifauna,_NL).jpg » 루펠독수리의 머리 모습. 제다머, 위키미디어 코먼스

 

아프리카 독수리는 죽은 동물을 찾는 날카로운 시력과 에너지를 덜 들이고 상승기류를 타고 멀리까지 날아가는 비행 능력, 먹이에 대한 정보에 관한 소통 능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연구로 독수리는 먹이 동물의 사망률이 높은 곳을 찾아내는 탁월한 감각이 있음을 보여준다. 마라-세렝게티에는 지역에 따라 강우량이 400~1200㎜에 이를 만큼 차이가 크고, 건조한 기후로 먹이가 고갈되면 폐사하는 초식동물이 급증한다.
 

 

켄달은 또 우기 동안 독수리들이 방대한 면적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아다니는데, 어떤 개체는 한반도 전체 면적에 육박하는 20만㎢ 이상을 돌아다닌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최근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독수리 개체수의 보전과 관련해서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특히 케냐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에서는 야생동물이 감소해 먹이가 줄어든 독수리가 급감하고 있다.
 

 

Gyps_africanus.jpg » 흰허리민목독수리. 보호구역 밖에서 살충제를 주입한 죽은 가축을 먹고 죽어가고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런데 독수리의 이동 범위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넓어 국립공원을 벗어나 먹이를 찾아다니기 때문에 더욱 취약한 상태임이 드러난 것이다. 보호구역 밖에서는 목축업자들이 사자 등 포식자를 퇴치하기 위해 죽은 가축에 독물을 주입하는 행태가 광범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독수리 보전사업을 벌이고 있는 스티브 잭 야생동물 보전 협회 박사는 “이번 연구는 동아프리카의 독수리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이제 국립공원 경계선 밖의 지역 사회가 독물 주입을 막는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라고 강조했다.
 

 

독수리 등 청소동물은 대규모 초식동물 서식지에서 죽은 동물을 신속하게 처리해 광견병 등 질병이 도는 것을 막아 주는 생태계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연구는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이 발간하는 온라인 공개학술지 <플로스 원> 8일치에 실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Kendall CJ, Virani MZ, Hopcraft JGC, Bildstein KL, Rubenstein DI (2013) African Vultures Don’t Follow Migratory Herds: Scavenger Habitat Use Is Not Mediated by Prey Abundance. PLoS ONE 9(1): e83470. doi:10.1371/journal.pone.008347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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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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