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여행 뱀장어 맛있는 고래 밥

조홍섭 2014. 02. 27
조회수 26237 추천수 0

유럽 뱀장어 추적장치 삽입 조사 결과, 수심600m서 들쇠고래에 먹혀

먼바다 심해 산란지 향하는 뱀장어 한살이 신비 일부 밝혀져

 

european eel_s__Anders Asp.jpg » 최근 급격한 개체수 감소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유럽산 뱀장어. 담수에 서식하다 성숙하면 대서양 한가운데 바다로 이동해 산란한다. 사진=앤더스 아스프

 

뱀장어는 신비스런 물고기였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뱀장어를 잡았지만 아무도 새끼나 알을 본 사람이 없었다. 강이나 호수의 다 자란 뱀장어가 망망대해의 깊은 바다로 긴 여행을 해 알을 낳고 그 새끼가 다시 길을 되짚어 어미가 자라던 민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91년에야 알려진 아시아 뱀장어의 산란장은 필리핀 서쪽, 마리아나 해구 북쪽의 해저 산맥이다. 20세기 초에 밝혀진 유럽 뱀장어의 산란장은 대서양 서쪽 버뮤다 근처인 사르가소 해이다.
 

뱀장어가 알을 낳는 곳은 알았지만 거기까지 어떻게 가는지는 요즘에야 차츰 밝혀지고 있다. 뱀장어의 몸속에 추적장치를 삽입하는 방법이 개발되고부터의 일이다.
 

최근 유럽산 뱀장어는 개체수의 90%가 사라져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덴마크 연구자들은 유럽연합 차원에서 뱀장어 감소 원인을 찾기 위해 벌이는 조사사업의 일환으로 길이 1m에 이르는 성숙한 뱀장어 150마리에 이런 추적장치를 달아 프랑스와 아일랜드에서 풀어놓았다. 이 장치는 30초마다 수심을, 5분마다 온도를 측정해 저장하는데, 나중에 자료를 분석하면 뱀장어의 이동 경로를 자세히 알 수가 있다.
 

map.jpg » 뱀장어를 풀어놓은 지점(별표)과 포식자에게 잡아먹힌 지점(점). 그림=<심해 연구 I>

 

풀어놓은 뱀장어 가운데 35마리로부터 추적장치를 회수했다. 강에서 자란 뱀장어한테 바다 여행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회수된 장치의 25%인 8개의 데이터는 그 장치를 간직했던 뱀장어가 포식자에게 먹혔음을 나타냈다.

 

뱀장어는 낮 동안은 수심 700~800m가량의 깊은 곳을 헤엄치다 밤에는 이보다 200m쯤 얕은 500~600m 수심을 헤엄쳐 이동하는 규칙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그런 양상이 어느 순간 중단되면 무언가에 잡아먹혔음을 알 수 있다. 연구진은 5마리는 대륙붕에서 큰 물고기에 먹혔고, 나머지 3마리는 수심 600m 심해에서 해양 포유류에 먹혔다고 추정했다.
 

1-s2_0-S0967063714000077-gr3.jpg » 뱀장어에 삽입했던 추적장치의 데이터. 낮엔 깊은 바다, 밤엔 얕은 수심으로 헤엄치는 규칙적인 유영을 하다 어느 순간 잡아먹힌 뒤 온도가 포유류 체온인 36도로 치솟는다. 그림=<심해 연구 I>

 

이 조사에서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해양 포유류가 고래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추적장치에 저장된 데이터의 변화가 독특했다. 바닷물의 온도인 10도를 가리키던 온도 데이터가  36도로 치솟았다. 포유동물의 뱃속에 들어갔다는 증거이다. 온도는 이 동물이 먹이와 함께 물을 섭취할 때 약간 떨어지다가 다시 상승하는 양상을 보였다.
 

수심 자료는 더 눈길을 끈다. 바다 표면에서 5~7분 머문 다음 11~12분 동안은 수심 250~860m로 잠수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특히 수심 600~700m 지점에서 초속 1~2m의 빠른 속력으로 수직 하강하는 특이한 ‘스프린트 다이빙’을 했다.
 

연구진은 이 수역에 서식하는 물개는 이렇게 깊이 잠수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뱀장어를 삼킨 동물이 고래일 것으로 추정했다. 고래의 뱃속에서 뱀장어가 발견됐다는 보고는 지난 120년 동안 단 한 건에 불과할 정도로 드문 일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로 고래는 깊은 바다에서 산란장으로 이동하는 뱀장어의 유력한 포식자임이 드러났다. 고래 가운데서도 연구진은 오징어를 주로 사냥하는 들쇠고래의 잠수특성이 이번 데이터와 거의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학술저널 <심해 연구 I> 최근호에 실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agnus Wahlberg et. al., Evidence of marine mammal predation of the European eel (Anguilla anguilla L.) on its marine migration,  Deep-Sea Research I Volume 86, April 2014, Pages 32?38, http://dx.doi.org/10.1016/j.dsr.2014.01.00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해충이 한 마리도 없는 세상은 완벽할까해충이 한 마리도 없는 세상은 완벽할까

    이강운 | 2017. 10. 23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상강가을 끝자락 산속의 명상…곤충 생활사는 아찔한 예술지구 생물종 4분의 3 차지하는 곤충 없으면 인간도 못 살아산꼭대기 참나무가 누렇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신나무의 울긋불긋한 단풍이...

  • 배불리 피 빤 모기가 귀신같이 도망치는 비결배불리 피 빤 모기가 귀신같이 도망치는 비결

    조홍섭 | 2017. 10. 22

    다리 힘 아닌 초당 600번 날갯짓으로 날아올라긴 다리로 충격 완화, 포유류 감지 한도의 4분의 1모기는 냄새와 색깔 등 여러 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먼 거리에서도 적당한 상대를 찾아낸 다음 2개의 초소형 펌프를 이용해 자신의 체중 1∼2배에 ...

  • 골칫덩이 등검은말벌, ‘치명적 유혹’으로 퇴치한다골칫덩이 등검은말벌, ‘치명적 유혹’으로 퇴치한다

    조홍섭 | 2017. 10. 19

    성호르몬으로 수컷 유인 성공분비량 1천분의 1에도 민감 반응등검은말벌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유럽 등 세계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침입종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대 영남지역을 시작으로 전국에 퍼지면서 꿀벌과 사람에 대한 피해가 커...

  • 3천m 잠수 부리고래의 비밀 밝혀져3천m 잠수 부리고래의 비밀 밝혀져

    조홍섭 | 2017. 10. 13

    작은 몸집, 산소 고갈되면 무산소호흡으로 버텨수면 돌아와 1시간 이상 휴식, 해군 소나 피해도허파로 숨을 쉬어야만 살아가는 동물 가운데 깊은 바다를 잠수해 먹이를 찾는 종이 여럿 있다. 코끼리물범, 바다사자, 물개 같은 포유류와 황제펭귄, ...

  • 더워지는 바다 ‘니모’ 찾기 힘들어진다더워지는 바다 ‘니모’ 찾기 힘들어진다

    조홍섭 | 2017. 10. 11

    수온 상승이 말미잘 백화현상 불러 흰동가리는 스트레스로 번식률 73% 격감     태평양과 인도양의 산호가 있는 얕은 바다에 사는 흰동가리는 ‘니모를 찾아서’란 애니메이션으로 명성을 얻은 물고기이다. 노랑이나 주황색 몸통에 선명한 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