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2급 독미나리 최대 자생지 발견

조홍섭 2008. 11. 11
조회수 16169 추천수 0

 횡성 현천 산업단지 들어설 채비, 훼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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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풀과 방울고랭이, 물꼬챙이가 빽빽이 돋아 있는 곳에 한 걸음을 내딛자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자연습지 경관이 펼쳐져 있는 이 지역은 10여년 전까지만 논과 밭이었다. 농민이 떠나자 자연은 재빨리 농경지 이전의 습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껑충한 키에 작은 꽃들이 모인 흰 우산 모양의 꽃다발을 여러 개 매단 식물이 줄지어 서 있었다. 멸종위기종 2급인 독미나리다. 소담스런 모습이어서 맹독성 식물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에서 독미나리의 국내 최대 자생지가 발견됐다. 그러나 이곳은 산업단지가 들어설 예정지이기도 하다. 횡성군은 이 곳을 개발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길 원한다.

 

지난 18일 한국자생식물원과 원주지방환경청 관계자와 찾은 새 독미나리 자생지는 전형적인 자연습지의 모습이었지만 논두렁이었을 둔덕과 수초인 가래가 가득 떠 있는 둠벙이 묵논임을 보여줬다.

 

김영철 한국자생식물원 희귀멸종위기식물연구실장은 “이곳은 독미나리가 살 수 있는 남쪽 한계지이자 이제까지 발견된 어떤 자생지보다 자연성이 높고 개체수도 많아 보전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식물원 조사단이 잰 습지바닥 온도는 20도로 기온보다 8도가 낮았다. 여름에도 이렇게 낮은 지온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은 남한에서 드물다. 독미나리가 희귀한 이유이기도 하다.

 

강원도개발공사는 횡성군·강원도와 함께 현천리 일대 85만여㎡에 615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산업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의약품·식품·전자부품 제조업체를 유치해 선진국 수준의 기업특화 산업단지를 만드는 것은 재정자립도 17%인 횡성군수의 중요한 공약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전환경성 검토 과정에서 독미나리의 대규모 자생지가 발견되자 원주지방환경청은 지난해 12월 보완을 요청해 현재 정밀조사가 진행되고 있다.횡성군은 독미나리가 많이 분포하는 산단 예정지의 북쪽 끝 습지 15만㎡를 애초에 산단 예정지에서 제외시키는 한편 산단 지역 내 자생지는 자연형 하천을 조성해 최대한 원형을 보전하고 나머지는 이식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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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날 확인한 바로는 예정지 안 저지대 거의 대부분에서 수천 개체의 독미나리가 분포하고 있어, 산단이 들어서면 자생지 훼손은 불가피해 보였다. 김 실장은 “독미나리의 번식과 이식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종 자체의 분포실태 등에 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훼손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가 산업단지 조성을 촉진하기 위한 특례법까지 만드는 판이어서 과연 새로운 독미나리 자생지가 보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차항리에서도 지난해 독미나리 자생지가 발견됐다. 농촌진흥청 축산기술연구소 한우시험장의 방목지인 이곳에서 이날 500여 개체의 독미나리가 예전 물길을 따라 약 6천㎡ 면적에 띠 모양으로 분포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자생지는 도로건설로 물길을 돌리는 바람에 육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습지식물인 독미나리에는 치명적이다. 그러나 웃자란 곰취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데서 보듯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기온이 28도인데도 지온은 18.8도에 그치는 등 독미나리가 살아갈 여건은 나쁘지 않았다.

 

최재윤 원주지방환경청 자연환경과장은 “한우시험장과 협의해 독미나리 분포지가 습지로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까지 국내 유일의 독미나리 자생지이던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의 분포지는 자연적인 물 공급이 끊기는 등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

 

토지소유주 오용해(43)씨가 선뜻 자기 땅을 보호지역으로 내놓으면서 이곳을 지날 예정이던 지방도가 독미나리 분포지를 우회하게 됐지만, 포장도로가 물길을 끊어 건너편 산에서 호스로 물을 끌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온이 오르고, 또 가정오수가 그대로 흘러들어 고마리 등 다른 물풀이 무성해지면서 독미나리의 생육을 억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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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는 “율곡이 대관령에서 가져온 독미나리를 이 마을에 옮겨 심고 허기를 달랠 때 주로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말했다. 대기리의 독미나리가 자생지로서의 보전가치보다는 주민과 당국의 협력모델로서 더 가치있어 보이는 대목이다.

 

횡성·평창·강릉/글·사진 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소크라테스 독배’ 원료설…잘 먹으면 약, 잘못 먹으면 독

▷독미나리란 어떤 식물?

2_copy.jpg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강원도 대관령 이북과 중국·시베리아·일본·유럽·북미 등에 분포한다. 우리나라가 분포의 남한계지에 해당하고 희귀해,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으로 지정한 보호종이다.

 

습지의 물가에서 주로 분포하며 키가 1m까지 자란다. 6~8월에 흰 꽃을 피운다.

 

독미나리에는 키큐톡신이란 독성물질이 들어있는데, 사람이 먹으면 한 시간 안에 구토, 복통 등을 일으키며 경련과 발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뿌리 부분에 독성이 심해 한 입만 먹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그리스에서 독미나리를 독배 원료로 써 소크라테스를 처형할 때 이것이 쓰였다는 주장이 있으나, 북부 유럽이 자생지인 이 식물을 지중해 지역에서 썼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독성이 약한 어린 잎을 먹거나 약용으로 쓰기도 한다.

 

독미나리는 보통 미나리에 비해 잎자루에서 갈라진 가지가 더 많고 이파리의 톱니가 더 깊이 패여 있으며, 키가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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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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