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에 ‘인술’ 펴는 지리산 야전병원

김정수 2014.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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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복원 야생동물의료센터 가보니

성미 급해 큰 외상 없어도 곧잘 쇼크사, 큰 외상 없어도 마취

반려동물보다 다루기 힘들지만 '지리산 생명 지킴이' 보람

 

ji1.jpg » 지난달 24일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의료센터 의료진이 여우에게서 정자를 채취하는 시술을 하고 있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자 약간 불쾌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소독 약품과 동물의 체취와 배설물 등이 뒤섞인 냄새였다.

 

지난달 24일 오후 찾아간 전남 구례군 화엄사 아래 지리산 초입의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의료센터는 지리산은 물론 전국 국립공원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야생동물들을 위한 ‘야전병원’이다. 국립공원에서 다치거나 탈진한 상태로 관리공단 직원들에게 발견된 야생동물 가운데 집중 치료가 필요한 개체들이 이곳으로 후송된다.
 

이날 오후 야생동물의료센터에서는 일반적인 진료와는 다른 특별한 시술이 진행됐다. 지난해 8월 소백산에 있는 종복원기술원 중부복원센터에서 야생 적응 훈련 중 오른쪽 앞다리가 부러져 들어와 골절 치료가 끝난 1년생 여우에게서 정자를 받아내는 작업이었다.
 

언뜻 간단할 것으로 생각되는 정자 채취가 야생동물에게는 센터 소속 수의사 3명과 수의간호사 2명이 모두 달려들어야 하는 일이었다. 메스만 사용되지 않았을 뿐 수술이나 다름없었다.

 

시술은 전신 마취돼 수술대에 올려진 여우의 요도에 정동혁(37) 센터장이 오줌 배출을 위한 관을 삽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관으로 양정진(35) 팀장이 식염수를 주입했다 뽑아내기를 반복해 방광을 깨끗하게 비운 뒤, 정 센터장이 항문에 전극을 집어넣었다.

 

스위치를 올려 약한 전기 자극을 가하자 생식기에서 정액이 조금씩 사출됐다. 마취에서부터 2시간 가까이 걸린 이날 시술에서는 그러나 기대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받아낸 정액에서 활동성 있는 정자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정 센터장은 “지난번 다른 여우에게서는 같은 방식으로 성공했다. 이번 개체는 성적으로 덜 성숙됐거나 교미기를 넘겼거나, 무정자증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 회복되면 한 번 더 시도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ji5.jpg » 24일 오후 야생동물의료센터 의료진으로부터 정자 채취 시술을 받은 뒤 입원실에서 회복 중인 여우.

 

국립공원관리공단 야생동물의료센터는 2005년 국립공원연구원 종복원센터에서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에 대한 의료 지원을 전담할 수의사 1명을 채용한데서 출발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센터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지리산에 인공 증식된 반달곰 29마리를 관리하는 일이다.
 

반달곰을 포획해 목이나 귀에 매달아 둔 추적용 무선 발신기를 교체하는 것에서부터 올무에 걸린 곰을 응급 구조하는 일까지 반달곰에 손을 대야 하는 모든 일은 야생동물의료센터 의료진에게서 시작된다. 곰에게 다가가 마취총을 쏘고, 마취총을 맞고 쓰러진 곰에게 가장 먼저 접근해 다른 직원들이 다음 단계 작업을 진행해도 될 정도로 충분히 마취됐는지 확인하는 것도 수의사들의 일이다.
 

수의사가 표적을 맞추지 못하든 반달곰의 안전을 고려하느라 제때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든 포획 작업의 마침표를 찍는 데 실패하면, 종복원기술원 동료 직원들이 반달곰을 찾아내기 위해 여러 날 능선과 골짜기를 뒤진 노력은 헛수고가 된다. 25일 오전 반달가슴곰 포획에 필요한 장비를 점검하던 정 센터장은 “동료 직원들의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 포획 작업에 나가기 전에는 사격 연습도 한다”며 웃었다.
 

ji3.jpg » 야생동물의료센터 공주연 수의사(왼쪽)와 정동혁 센터장이 지난달 25일 반달곰 포획에 필요한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ji2.jpg » 야생동물의료센터 정동혁 센터장이 지난달 25일 지리산 자연적응 훈련장 감시초소에서 폐쇄회로텔레비전 모니터로 반달곰을 관찰하고 있다.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의료센터는 전담 수의사 한두 명으로 운영되는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 야생동물의료센터에 비해 탄탄한 의료진을 갖추고 있다. 2012년 국제자연보호기구(Future for Nature)의 ‘세계의 젊은 보전학자 10인’에 선정되기도 한 정 센터장, 지리산 생활 8년째인 양 팀장,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면서 합류한 새내기 공주연(29) 수의사, 돌보는 야생동물의 이빨과 발톱에 상처를 입고 피부병이 옮는 것을 마다 않는 수의간호사들의 열정도 어느 곳에든 뒤질 것 같지 않다.

 

국민의 관심이 많은 반달가슴곰 건강관리를 전담하다 보니 치료실, 수술실, 실험실, 계류장은 물론 부검실까지 갖추고 있다. 이런 인력과 시설이 센터가 지리산 국립공원 인근 지역의 다른 야생동물 환자들에게까지 ‘인술’을 펼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아쉬운 한 가지는 의료센터 본 건물과 수리부엉이, 독수리 등의 동물 환자들을 수용한 계류장이 200여m가량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그런 배치는 아니었다.

 

지난해까지 야생동물의료센터 바로 옆에 있었던 계류장이 공원관리공단의 지리산 생태탐방연수원 신축 부지에 포함되면서 밀려난 것이었다. 진료실과 입원실이 이렇게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의료진이 동물 환자들을 수시로 관찰하며 제대로 돌볼 수 있지 의문이었다.
 

 ji6.jpg » 지난달 13일 강원도 화천에서 뒷다리가 마비된 채 발견된 뒤 센터로 후송돼 치료 받고 있는 산양.

 

야생동물들이 가혹한 자연 속에서 단련돼 뛰어난 적응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론 그 반대다. 별다른 외상도 없이 단지 인간에게 구조돼 자유를 빼앗긴 데 따른 스트레스만으로도 폐사하는 야생동물도 드물지 않다는 것이 야생동물의료센터 의료진의 경험이다.

 

그러다 보니 야생동물을 치료하는 일도 가축이나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치료하는 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들고 까다롭다. 야생동물들은 기력이 있는 한 인간이 자신에게 손을 대는 것을 참지 않는다.

 

발버둥치다 부상을 더 악화시키고 의료진까지 위험하게 만들곤 한다. 야생동물들은 치료는 말할 것도 없고 진단까지도 전신 마취를 하고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정 센터장이 털어놓는 애로사항이다.
 

 마취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르기 사전에 마취 대상의 건강 상태를 정확히 진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야생동물의 경우 완전히 탈진한 상태가 아니라면 마취를 하지 않고서는 진단조차 어렵다는 것이 문제죠. 그러다 보니 늘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2월 말 현재 야생동물의료센터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거나 회복 단계에 있는 동물 환자들은 추락에 의한 신경 손상으로 설악산의 북부복원센터에서 후송된 산양 1마리, 골절과 목 종양 등을 치료하기 위해 소백산의 중부복원센터에서 보내온 여우 6마리, 전남 홍도에서 탈진 상태로 발견돼 후송된 매, 그밖에 남원, 하동, 산청, 구례 등 지리산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수리부엉이, 솔부엉이, 큰소쩍새, 삵, 너구리, 새매, 독수리, 원앙 등 모두 11종 18마리다. 이들은 갖가지 사고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많은 야생동물 가운데 특별히 운이 좋은 동물들이다.
 

ji4.jpg » 야생동물의료센터 직원들. 왼쪽부터 정동혁 센터장, 안은주 수의간호사, 공주연 수의사, 양정진 팀장이다. 나머지 3명은 바빠 함께하지 못했다.

 

구조된 야생동물들이 모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치료에 배정된 예산과 인프라의 제한 때문에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 등으로 지정돼 법적 보호를 받는 동물들이나 상대적으로 희귀한 동물, 포유류나 조류 가운데 사람들에게 친근한 동물이 아니면 치료 혜택을 받기 쉽지 않다.

 

현재 야생동물의료센터의 입원 환자들만 봐도, 큰소쩍새와 너구리를 뺀 16마리가 모두 멸종위기종 아니면 천연기념물이다. 치료 대상이 되지 못한 야생동물들에 인간이 베푸는 마지막 자비는 안락사다. 안락사 시행 여부 결정도 수의사들의 몫이다.
 

정 센터장은 “치료를 할지 안락사시킬지는 완치 가능성, 치료한 뒤에 남게 될 장애, 자연으로 돌려보내 졌을 때 적응할 수 있을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의 하나”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구례/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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