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 줄무늬 비밀, 사자보다 흡혈파리

조홍섭 2014. 04. 08
조회수 33135 추천수 0

얼룩말 줄무늬 150년 수수께끼 풀렸나, "흡혈파리 회피 가설이 가장 타당"

흡혈파리 하루 사람 헌혈량 만큼 피 빨아…멀리서 줄무늬 잘 못 봐

 

st2_Maryam Laura Moazedi.jpg » 아프리카 사바나의 얼룩말. 줄무늬가 왜 있는지를 둘러싼 논란은 긴 역사를 지닌다. 월러스는 어스름 때 줄무늬가 잘 안 보이게 해 준다고 주장했지만 다윈은 오히려 눈에 잘 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사진=마리암 로라 모아제디, 위키미디어 코먼스  

 

얼룩말이 줄무늬를 진화시킨 까닭을 둘러싼 논쟁은 150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 수수께끼를 두고 갖가지 가설이 나왔는데, 크게 5가지로 나뉜다. 등에 등 흡혈 파리 회피, 포식자의 눈 혼란시키기, 열 조절 효과, 숲 배경에서의 위장 효과, 사회적 기능 등이 그것이다.
 

팀 캐로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캠퍼스 동물학자 등 미국 연구자들은 온라인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들 5가지 가설의 타당성을 검토했다. 생태학의 관점에서 기존 가설의 타당성을 검증해 본 것이다.

 

말과에서 현존하는 7종(20개 아종) 가운데 검고 흰 줄무늬가 선명한 종은 얼룩말, 그레비얼룩말, 마운틴얼룩말 등 3종이고 아프리카 야생 당나귀에는 다리에 엷은 줄무늬가 있을 뿐이다. 아시아에 분포하는 컁, 아시아 야생 당나귀, 프셰발스키말 등은 줄무늬가 전혀 없다.

 

st5_Gemma Longman_809px-Somali_wild_ass.jpg » 아프리카 야생 당나귀. 다리에 줄무늬가 있다. 사진=젬마 롱맨, 위키미디어 코먼스

 

5가지 가설 가운데 그동안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 된 것은 포식자 혼란시키기와 흡혈 파리 회피 가설이다. 나머지 가설은 조금만 따져 보면 지탱하기 힘들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예컨대 검은 무늬가 흰 무늬보다 쉽게 더워져 상승기류를 만들어 체온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더운 서식지의 말은 줄무늬가 있고 없고를 떠나 그늘을 찾아 온도를 조절한다.
 

포식자 혼란설은 컴퓨터 화면에서 사람이 줄무늬가 있는 물체를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다는 실험적 근거를 댄다. 포식자가 먹이의 크기나 속도를 오판해 최후의 일격이 빗나가거나, 목표물을 무리에서 떼어내기 힘들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가설은 사자 등 포식자가 있는 곳에서 줄무늬 있는 말이 출현하는 것도 아니고, 또 얼룩말이 사자의 단골 먹이가 되고 있는 현실도 설명하지 못한다. 호랑이와 늑대가 살던 아시아의 말에게 줄무늬가 아예 없는 것도 이상하다.
 

얼룩말이 흡혈 파리를 피하기 위해 줄무늬를 진화시켰다는 주장은 1930년 처음 나왔고 최근엔 이를 실험적으로 증명하기도 했다. 헝가리와 스웨덴 연구진은 목장에 실제 말 크기의 모형에 여러가지 색과 간격의 줄무늬를 그려넣고 끈끈이를 붙여 등에 등 등에 등 흡혈 파리류가 얼마나 들러붙는지 조사했다. 그랬더니 실제 얼룩말의 간격을 한 무늬가 흡혈 파리를 덜 끌어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기사얼룩말의 줄무늬 파리 때문에 생겼다
 

st4_58391196_dscf6956_gabor-horvath.jpg » 헝가리 과학자들이 여러가지 무늬와 색의 끈끈이를 말 모형에 붙여놓고 기생파리가 얼마나 들러붙는지 실험하는 모습. 사진=가보르 호르바트

 

이번 연구에서는 줄무늬가 있는 말과 각종 흡혈 파리의 분포지를 비교했더니 대부분 일치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기존 연구에서도 흡혈 파리는 주로 시각을 통해 숙주를 찾는데, 줄무늬가 윤곽을 흐릿하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먼 곳에서 줄무늬를 한 말은 흡혈 파리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실제로 얼룩말의 줄무늬는 몸의 윤곽과 수직으로 만나도록 배치돼 있어 윤곽을 흐리는데 도움을 준다. 덕분에 아프리카에서 가축 말은 체체파리에 물려 심각한 피해를 입지만 같은 지역의 얼룩말은 큰 피해 없이 지낸다. 

 

st3_Zebra_resting_its_muzzle_on_another_zebra's_back.jpg » 얼룩말의 줄무늬는 윤곽에 수직으로 검은띠가 배치돼 윤곽을 흐릿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둔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렇다면 왜 얼룩말은 줄무늬를 진화시킬 정도로 흡혈 파리의 공격에 예민할까. 얼룩말은 두터운 겨울 모피가 없고 털이 짧아 등에의 긴 침을 피하기 힘들다.

 

게다가 흡혈 파리의 공격은 단지 성가신 정도를 넘어선다. 미국에서 소 한 마리가 하루에 흡혈 파리에 빨리는 피의 양은 사람의 헌혈량에 해당하는 200~500㏄에 이르며, 이들의 공격을 없애면 8주일 동안 소의 체중이 17㎏ 는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또 얼룩말이 흡혈 파리가 옮기는 특정 질병에 특히 민감할 수도 가능성도 있다. 진화 과정에서 흡혈 파리를 피하는 형질은 큰 이득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얼룩말은 사자 눈에 쉽게 뜨이더라도 흡혈 파리의 눈을 피하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im Caro et. al., The function of zebra stripes, Nature Communications, Volume: 5, Article number: 3535, doi:10.1038/ncomms4535.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서·남해 갯벌서 푸른곰팡이 96종 발견서·남해 갯벌서 푸른곰팡이 96종 발견

    조홍섭 | 2019. 10. 15

    신종 후보 17종 포함…차세대 항생제 개발, 치즈 생산 등에 활용꼭 90년 전 알렉산더 플레밍은 깜빡 잊고 뚜껑을 덮지 않은 배지에 날아든 푸른곰팡이가 세균 성장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곰팡이에서 생산한 페니실린 덕분에 제2차 세...

  • 청소 새우가 먹히지 않는 비결 있다청소 새우가 먹히지 않는 비결 있다

    조홍섭 | 2019. 10. 10

    포식자 고객에 청소 직전과 중간에 ‘앞다리 춤’으로 신호열대 태평양 산호초에는 큰 물고기의 아가미와 입속을 청소하는 작은 새우가 산다. 송곳니가 삐죽한 곰치 입속을 예쁜줄무늬꼬마새우가 드나들며 기생충을 잡아먹고 죽은 피부조직을 떼어먹는...

  • 배추흰나비는 실크로드 따라 동아시아 왔다배추흰나비는 실크로드 따라 동아시아 왔다

    조홍섭 | 2019. 10. 08

    전 세계 유전자 분석 결과…지중해 기원, 통일신라 때 작물과 함께 와배추흰나비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분포하고 수도 많은 나비의 하나다. 생물 종으로 성공한 나비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는 해충이기도 하다.시민 과학...

  • 유령게의 ‘으르렁’ 경고음, 위장 분쇄기관 소리였다유령게의 ‘으르렁’ 경고음, 위장 분쇄기관 소리였다

    조홍섭 | 2019. 10. 07

    먹이 부수는 부위를 발성 기관으로 ‘재활용’, 상대에 경고 신호 전달집이나 먹이를 빼앗으려는 상대에게 유령게는 집게발을 휘두르며 낮고 거친 소리를 낸다. 마치 개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경고음을 내는 곳은 놀랍게도 먹이를 잘게 부수는 위 앞...

  • 다리 대신 터널…제2순환로 환경파괴 위험 여전다리 대신 터널…제2순환로 환경파괴 위험 여전

    윤순영 | 2019. 10. 02

    육상 구간 논 습지 훼손 불보듯, 저감방안 대책 선행되야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가 한강을 건너는 구간은 애초 계획된 교량 설치 대신 지하터널 형태로 건설될 예정이다. 교량 건설로 인한 환경파괴를 우려한 문화재청이 한강 하류 재두루미 도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