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진입로가 뭐기에…세계적 희귀식물 쫓겨날 판
여주서 미선나무 최북단 자생지 최근 발견, 골프장 건설로 이식 예정
전문가들 "유전다양성 확보 위해 자생지서 보전해야" 한 목소리
» 미선나무는 한국을 대표할 만한 식물로 진한 향기와 은은한 빛깔로 일찍이 서구에서 원예종으로 개량됐지만 국내 자생지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왔다.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의 새로 발견된 자생지에서 지난달 31일 미선나무가 활짝 꽃을 피웠다.
코끝을 스치는 향긋한 내음이 없었다면 영락없이 흰색 꽃이 달린 개나리 모습이었다. 도로 양쪽에 늘어진 가지에는 아직 잎이 돋지 않았지만 네 갈래 통꽃이 올망졸망 늘어서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 고유 속으로 세계적 희귀 식물인 미선나무였다.
지난달 31일 남한 최북단 미선나무 자생지로 최근 발견된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의 야산을 찾았다. 야트막한 산자락의 북서쪽 사면에 생강나무의 노란꽃 아래 희끗희끗한 꽃이 멀리서 보였다. 미선나무 생육지는 관통하는 포장도로 때문에 절반으로 나뉘었는데, 도로변 20~30m를 따라 산위로 30여m 하천변으로 10여m 범위에 걸쳐 있었다.
» 여주 자생지를 현진오 박사가 가리키고 있다. 이 자생지는 도로 양쪽에 나뉘어 있는데, 골프장 진입로가 확장되면 훼손이 불가피하다.
이곳을 둘러본 현진오 동북아식물연구소장은 “자생지가 맞는 것 같다”며 “상태와 크기 등을 볼 때 전국의 미선나무 자생지 가운데서도 가장 나은 군락지의 하나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선나무는 충북 진천에서 1917년 처음 발견된 이래 충북 괴산·영동·충주, 전북 부안, 경북 안동·의성·상주 등에서 자생지가 발견되었지만, 유명세를 타면서 다른 곳에 옮겨 심는 일이 많아 자생지 여부가 늘 논란거리였다.
현 박사는 이곳을 자생지로 판단하는 근거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다른 자생지처럼 언덕 사면에 돌이 많은 전석지에서 자라고 있고, 어린 개체부터 제법 굵은 개체까지 세대별로 분포해 자연적으로 번식한 개체군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었다. 현 박사는 “이런 지형이 미선나무 자생지의 전형적인 지형인데다 일부러 이런 돌밭에 심었을 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 돌무더기가 깔린 산자락 전석지에서 생강나무 아래 희끗희끗하게 피어난 미선나무. 마을 주민들은 이곳 리기다소나무 조림지가 들어서기 전부터 미선나무 군락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미선나무가 자라는 야산은 1980년대 조림한 리기다소나무가 주를 이루고 있다. 혹시 조림과정에서 미선나무를 심은 건 아닐까. 그러나 이 마을에서 평생 살아온 주민 김천수(78)씨는 “어렸을 때도 미선나무가 봄이 되면 하얀 꽃을 피운 기억이 난다. 소나무를 조림하고 나서 미선나무 분포지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여주 자생지의 발견은 이제까지 충청 이남 지역에 편중됐던 미선나무의 분포지를 경기 지역으로 확대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 발견을 미선나무의 새로운 자생지로 <한국환경생태학회지> 최근호에 보고한 이호영 동국대 생태계서비스연구소 박사는 “미선나무의 분포 가능지역이 넓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자생지가 추가로 발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근거리에 모여 있던 기존 자생지에서 떨어진 곳에서 새 자생지가 발견돼 미선나무의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팀의 조사결과를 보면, 이 자생지가 530㎡ 면적에 1200개체가 살고 있는데, 키 1m 이상의 성숙한 개체는 300여 포기이고 나머지는 어린 개체였다. 또 다른 자생지처럼 뿌리와 줄기에 의한 영양번식은 왕성했지만 씨앗을 맺은 개체는 매우 드물었다.
» 대궐에서 쓰던 옛 부채를 닮았다 해서 ‘아름다운 부채’란 뜻의 미선나무란 이름을 얻은 미선나무 열매. 그러나 이처럼 유성생식으로 맺은 씨앗은 보기 힘들고 대부분은 영양번식으로 개체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에서 처음 확인된 미선나무 자생지는 발견되자마자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자생지를 관통하는 도로는 ‘아시아나 여주 시시’가 건설하는 18홀 규모 골프장의 진입도로가 될 예정인데, 폭 8m로 도로를 넓힐 예정이어서 자생지 훼손이 불가피하다. 애초 이번 발견도 골프장 건설을 위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작성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다.
사업자는 자생지의 미선나무를 골프장 안 조경녹지에 조성한 대체 서식지에 이식할 예정이다. 평가기관인 한강유역환경청은 지난해 10월8일 이런 방안을 받아들이는 협의를 해 주었다. 김건식 환경평가과장은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결과 미선나무는 옮겨 심더라도 경쟁수종을 제거하는 등 관리를 해 주면 잘 자라는 수종이어서, 여주시와 사업자가 이식 전과정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이식하도록 조건부 협의를 해 주었다”고 말했다.
» 여주 자생지의 미선나무 개화 모습.
그러나 전문가들은 세계적 희귀식물의 중요한 자생지를 옮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한다. 이호영 박사는 “생물다양성 보전은 자생지 보존이 원칙이다. 이식하면 다른 개체와 유성생식을 하지 않고 같은 유전자를 지닌 개체를 늘리는 영양번식을 하는 경우가 많아 생물다양성이 낮아지는 결과를 빚는다”고 말했다.
미선나무는 진귀한 나무로 알려져 훼손과 복원이 잦아 자생지의 가치가 떨어지는 사례가 많았다. 현진오 박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미선나무 자생지의 상당수가 무분별한 옮겨심기 탓에 애초의 자생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이 자생지의 미선나무는 꽃 색깔이 흰색뿐 아니라 연분홍과 상아색까지 나타나 생물다양성이 높은 것으로 보여 현지에 그대로 보전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미선나무는 옮겨 심어도 옆으로 뻗은 뿌리에서 새로운 개체가 생기거나 땅에 닿은 가지에서 뿌리를 내려 번식하는 영양번식을 잘 한다. 이런 특성이 생존력이 강한 식물이란 오해를 부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데서는 살지 못하고 돌밭으로 밀려나 근근이 살아남은 약한 종이라고 이 박사는 설명했다. 가까운 친척인 개나리와 달리 분포가 극히 제한적이고 종이 하나밖에 없는 것도 미선나무란 종이 얼마나 약한지를 보여준다. 자생지에서 씨앗을 맺는 개체가 드문 것은 종의 건강성에 적신호이다.
새로운 미선나무 자생지를 생태관광 등에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은 “수익성이 불투명한 골프장 건설을 중단하고 세계적 희귀종도 살고 지역 주민도 사는 상생의 지역발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주/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미선나무란 어떤 나무?
추위 잘 견디고 향기로운 흰꽃 피워
1930년대 부터 서구로 반출돼 조경수로 개발
» 여주 황학산 자연휴양림에 심은 미선나무. 미선나무는 조경수로 인기가 높다.
미선나무는 1917년 한·일의 식물학자 정태현과 나카이 다케노신이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처음 발견했다. 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됐지만 사람들이 마구 꺾어가고 캐어가는 바람에 완전히 훼손돼 1969년 해제돼는 비운을 겪었다.
이처럼 국내에서는 수난을 당했지만 세계적 희귀종으로 뛰어난 조경 가치를 지닌 미선나무는 일찍부터 외국으로 유출돼 조경수로 개발됐다. 일본인 연구자들은 1924년 미선나무의 씨앗을 미국 아놀드 수목원으로 보냈고, 여기서 키운 묘목은 1931년 영국 왕립 큐 식물원으로 넘어갔다.
유럽에서 미선나무는 1930년대에 일찌감치 조경수로 개발됐다. 추위에 잘 견디는데다 이른봄 은은한 향기와 흰 꽃이 운치가 있고, 꺾꽂이로 쉽게 증식할 수 있어 인기였다.
물푸레나무과 미선나무속에 속하는 미선나무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1속1종의 희귀식물이다. 최근 미선나무를 관광자원화하는 시도와 함께 널리 재배되고 있지만 자생지는 몇 안 된다.
미선나무 자생지는 1962~1992년 사이 충북 괴산 3곳, 충북 영동과 전북 부안 1곳 등 5곳에서 발견돼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그러나 생물종 다양성 보전을 위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이후 추가로 발견된 충북 옥천·충주, 경북 안동·상주 등의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않고 있다. 현재 종 자체가 환경부의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 산림청의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있다.
» 분홍색 꽃이 핀 미선나무.
미선나무는 꽃 빛깔과 모양에 따라 분홍미선, 상아미선, 푸른미선, 둥근미선으로 부르기도 한다. 미선나무란 이름은 열매가 부채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한다.
글·사진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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