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나라' 한국서 직접 만든 표본 하나 없다"

조홍섭 2014. 0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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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범보전기금 이항 대표 인터뷰
한반도 마지막 호랑이와 표범 추적한 이는 일본인, 1917년 호랑이 사냥 행사도 기록 남아

연해주·만주서 먼저 복원되면 백두대간 따라 남한서도 복원 가능성, "국가 상징물로 삼아야"

 

tig1.jpg » 이항 한국범보전기금 대표(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정작 호랑이가 한 번도 서식하지 않은 유럽과 미국인들이 한국호랑이(아무르호랑이) 보전에 적극 나서고 있는데 반해 정작 호랑이가 가장 많이 살았던 한반도에선 마지막 혈통의 보호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 한다. 사진=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지난 5년 사이 한반도 최상위 포식자였던 호랑이와 표범의 마지막 기록을 담은 책 3권이 잇따라 일반에 선보였다. 일본 동물작가 엔도 키미오의 르포인 <한국의 호랑이는 왜 사라졌나>(2009)와 <한국의 마지막 표범>(2014)이 번역·출간된 데 이어  최근 한국 범에 관한 유일한 근대적 사료로 평가되는 <정호기(征虎記)>도 우리말로 옮겨졌다. 동아시아 최대의 호랑이와 표범 서식지였으면서도 그 최후에 관한 기록이 전무한 상황에서, 일본인의 책일지라도 이들은  “한반도에서 사라져간 호랑이와 표범을 위한 진혼곡”이라고 할 만하다. 이 출간 작업의 산파 구실을 한 이항 한국범보전기금 대표(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를 만나 그간의 과정을 돌이켜 보고 그 의미와 앞으로 남은 과제를 들어봤다. 


-엔도가 <한국의 호랑이는…>을 일본에서 처음 펴낸 게 1986년이었다.

 

아무도 야생동물에 관심 없던 때였다. 엔도가 한국호랑이를 취재하게 된 것은 1980년 한국의 한 유력 신문에 실린 ‘57년 만에 한국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오보를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시아 각국의 야생동물에 두루 관심을 갖고 작품활동을 했는데, 이후 여러 해에 걸쳐 1921년 마지막 한국호랑이가 잡힌 경주 대덕산 등 현지를 답사하는가 하면 한국과 일본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자료를 뒤졌다. 인터넷은커녕 한국말도 못하고 교통도 불편하던 시절이어서 그의 노력은 존경스럽다."

 

tig3.jpg »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주민이 호랑이의 습격을 받자 일본인 순사가 조직한 포획대의 한국인 포수 이위우씨가 사살한 마지막 호랑이의 모습(왼쪽). 사진속 사람은 이씨의 동생 이복우씨이다. 이 호랑이의 가죽은 일본 왕실로 보내졌다. 사진=엔도 키미오

 

 

-일본보다 한국에서 먼저 출간된 <한국의 마지막 표범>에서도 그런 노력이 보인다.

호랑이에 이어 표범의 마지막도 일본인에 의해 규명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마지막 한국호랑이가 잡힌 40여년 뒤에도 표범은 계속 잡히고 있었지만 보호는커녕 값비싼 고기로 팔리고 있었던 것도 그렇다."

 

-엔도의 책들은 어떤 의미가 있나.

 

멸종사 연구의 기본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그 동물이 사라지게 됐나를 밝히는 것인데, 그가 한국호랑이와 표범의 멸종사를 밝히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또 조선 총독부의 자료를 통해 호랑이와 표범이 한반도에서 사라지게 된 직접적 원인이 일제 강점기의 (해로운 짐승을 제거한다는) ‘해수 구제’ 정책이었음을 처음 밝히기도 했다. 1915년부터 1924년까지 통계가 없는 두 해를 뺀 8년 동안 사살된 호랑이가 89마리, 표범이 521마리였고, 1933~1942년 사이 10년 동안은 호랑이 8마리와 표범 103마리를 제거했다. 물론 이미 조선시대부터 호랑이를 체계적으로 잡아내 수가 많이 줄어든 이후의 일이지만 일제가 치명타를 가한 것은 사실이다."

 

-엔도의 책을 번역해 펴내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뭔가.

 

2010년 호랑이 해를 앞두고 호랑이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호랑이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 전설, 신화 속에서 자라온 자타가 인정하는 ‘호랑이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호랑이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은가. 개인적으론 서울대 수의대에서 수많은 생쥐를 죽이면서 하던 연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동물을 좋아해 시작한 공부인데."

 

-조선시대부터 일본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수백년 동안 호랑이와 표범을 잡았다는 건 그만큼 개체수가 많았다는 걸 의미하나.

 

한반도는 동아시아 호랑이와 표범의 핵심 서식지였다. 과거 이들을 잡았던 기록과 현재 살아있는 러시아의 서식지를 비교해 봐도 한반도에 훨씬 많은 호랑이와 표범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호환을 비롯해 호랑이와 관련한 이야기와 문화가 발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반도는 아무르호랑이의 가장 남쪽 서식지이다. 기후가 따뜻해 식물 생산성이 높아 초식동물이 많고, 먹이가 많으니 최상위 포식자도 많은 이치다. 벵골호랑이가 가장 많은 곳이 가장 남쪽인 인도인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호랑이와 아무르호랑이가 모두 맞는 명칭인가.

 

전세계 호랑이 6개 아종 가운데 극동러시아와 중국 동북지역에 서식하는 아종을 흔히 시베리아호랑이라고 부르는데, 서식지가 시베리아와 무관하고 또 우리와 먼 야생동물처럼 느껴져 잘 쓰지 않는다. 국제 학회는 아무르호랑이로 부른다. 한때 국제적으로 한국호랑이를 별개 아종으로 분류한 적도 있지만, 나를 포함한 서울대 수의대 연구진이 일본 도쿄 국립과학박물관과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찾아낸 한국호랑이의 표본을 유전적으로 분석한 결과 아무르호랑이와 100%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결국 한국호랑이는 아무르호랑이를 가리키는 정식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범’이 우리말이고 일제 강점기 때부터 ‘호랑이’란 말을 썼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호랑’은 기원전부터 중국에서 쓰인 말이고 우리나라 문헌에는 15세기 이후 범과 이리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일반인은 호랑이와 표범을 크게 구별하지 않고 모두 ‘범’이라고 불렀다. ‘호랑이’란 말은 19세기 이후 쓰이기 시작했다.


tig2.jpg » 이항 대표가 일본 고서점에서 입수한 <정호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일제의 엽기적인 호랑이 사냥 이벤트를 담은 <정호기>는 어떻게 입수했나.

 

그 책의 존재는 일부 야생동물 연구자 사이에 알려져 있었는데 못 구하다가 일본의 인터넷 고서점을 통해 운 좋게 입수할 수 있었다. 행사 참가자와 후원자를 위한 한정본이어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 추가로 입수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 책은 어떤 사료적 가치를 지니나.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범 관련 자료는 거의 없다. 고기와 뼈, 피까지 모든 부위를 보신을 위해 썼기 때문에 골격표본도 남기 힘들었다. 한 서양인의 사냥 기록을 보면, 호랑이를 잡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십리 밖에서도 부산물을 구하러 왔다. 한국호랑이의 표본은 모두 일본인이나 서구의 사냥꾼이 박물관이나 모교에 기증한 것들이다."


-<정호기>에 나오는 사냥한 조선 호랑이 2마리의 표본을 일본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으로 보인다.

 

사냥 행사를 주관한 기업인 야마모토 다다사부로가 모교인 교토 도시샤 고교에 기증한 사실을 일본의 지인을 통해 알게 됐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한국호랑이 표본이 일본인이 기증해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있는데, 이보다 보존상태가 월등히 낫고 크기도 크다. 현재 이 표본은 도시샤 초등학교에 임시로 보관되어 있는데, 장차 우리나라에 첫 국립 자연사 박물관이 건립된다면 이 표본이 당당하게 한반도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의 상징으로 전시되었으면 한다."


j1.jpg » 일본 교토 도시샤초등학교에 임시 보관중인 한국호랑이 박제. 1917년 야마모토 일행이 함경도에서 잡은 호랑이이다.사진=한국범보전기금

 

j2.jpg » 도시샤 초등학교에 보관 중인 1917년 함경도에서 포획된 표범 표본. 사진=한국범보전기금

 

-이 기록을 통해 짐작하는 당시 한반도 야생동물의 상태는 어떤가.

 

사냥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호랑이를 2마리 잡을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개체수가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호랑이 100마리를 쏘았다는 당시 조선 최고의 포수 강용근은 경쟁적 분위기에서도 백두산 일대에서 한 마리의 호랑이도 잡지 못해 그 수가 줄어들었음을 짐작게 하기도 한다."


-이 호랑이 사냥 행사에 참가한 조선인 포수뿐 아니라 일반 민중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던 것 같다.

 

동원된 인파였겠지만 원정대는 가는 곳마다 대환영을 받았다. 큰 구경거리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한 해에 사람 200명, 가축 7000마리 이상이 맹수 피해를 입던 시절이어서 호랑이는 실질적인 공포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멧돼지가 나타나 피해를 주면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도 ‘제거’를 요구하지 않나.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는 한도 내라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j9.jpg » 1917년 조선인 포수와 몰이꾼을 동원해 함경도 등 전국에서 벌인 대규모 호랑이 사냥 원정대의 모습. 사진=에이도스  

 

-한국범보전기금은 한국호랑이와 표범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나.

 

2004년 아무르표범 만원계로 시작해 꼭 10년째이다. 러시아 연해주에 남아 있는 호랑이와 표범이 바로 한국 호랑이와 표범이라는 인식에서 언젠가 그들이 한반도에 돌아올 수 있도록 보전에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일반 시민이나 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미미한 형편이다. 러시아 연해주의 호랑이와 표범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에서 수백만 달러를 내고 있지만, 한국범보전기금이 해마다 모금해 보내는 돈은 4000달러 정도에 그친다. 일본 정부도 최근 100만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다."


-호랑이와 표범의 한반도 복원이 가능하다고 보나.

 

호랑이를 가까운 장래에 남한의 야생 서식지에 재도입하거나 복원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북한 백두산 일대와 중국 동북지역의 호랑이 복원을 먼저 도와야 장기적으로 백두대간 생태축을 통한 복원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아무르표범은 현재 동물원 증식 개체를 러시아 연해주 야생 지역에 재도입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에 재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남한에 살아남은 개체가 있는지 철저히 조사해 보고 재도입 가능한 서식지를 조사해 나가는 방식으로 추진할 만하다. 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을 구상한다면 연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과 북이 꽉 막혀있는데, 사람 사이의 대화가 어려울 때 동물을 매개로 하면 쉽게 풀리기도 하지 않나."

 

-평창겨울올림픽 마스코트로 호랑이를 제안했는데.


범 복원은 윤리적, 생태적, 사회적 당위성이 있지만, 브랜드 가치로만 좁혀 봐도 의미가 크다. 중국의 판다, 인도의 코끼리, 러시아의 곰처럼 대형동물은 국가의 상징이 된다. 그런데 주요 경제국 가운데 호랑이를 상징동물로 삼은 나라는 아직 없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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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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