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년 지속된 진화 장벽, 인간의 물길 변경에 허물어져

조홍섭 2014. 05.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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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일제의 섬진강 물 유역 변경 따라 잡종화, 이화여대 연구진 디엔에이 검사로 확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장 시기에 나뉜 종이 80여년 만에 종간 장벽 무너져


hb4_잡종을 들어보이는 연구논문 주저자 권예슬씨.jpg » 동진강 상류인 도원천에서 채집한 줄종개와 점줄종개의 잡종을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박사과정생인 권예슬씨가 들어보이고 있다.

 

섬진강댐이 만든 옥정호에서는 갈수기를 맞아 물이 많이 빠지면 댐 속에서 수몰된 또 다른 댐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이 쓴 ‘운암 대제’란 기념비와 함께 서 있는 이 아치형 댐은 1929년 섬진강 물의 일부를 동진강으로 돌려 식민지 수탈의 핵심이던 호남평야에 안정적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됐다.
 

이 댐의 섬진강 물은 전북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까지 이어진 도수터널을 타고 동진강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두 곳의 낙차를 이용한 남한 첫 수력발전소인 운암 발전소는 1931년에 가동을 시작했다. 1945년엔 섬진강 물을 끌어오는 또 다른 도수터널이 뚫려 정읍시 칠보면으로 새 물길을 냈다.
 

hb6_동진강으로 흘러드는 섬진강 물. 오른쪽 산위에 섬진강수력발전소의 유역변경 수로가 보인다.jpg » 섬진강에서 온 물이 전북 정읍시 칠보면 동진강에 거센 물살을 이루며 흐르고 있다. 6.2㎞ 길이의 도수터널을 지난 물은 산 중턱에서 큰 낙차를 이용해 수력발전을 한 뒤 동진강으로 흘러든다.

 

이처럼 전력생산과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두 강의 물길을 이으면서 생태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관심 밖이었다. 유역변경 이후 80여년이 지나면서 섬진강물이 흘러든 동진강의 생태계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300만년 전에 다른 종으로 나뉜 두 민물고기의 잡종화가 진행되고 있다. 지질시대 동안 이뤄진 진화 과정을 사람이 한순간에 허물어뜨린 것으로, 인간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척추동물 가운데 자연상태의 두 종이 잡종을 형성한 것으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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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찾은 전북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의 섬진강수력발전소 아래 수로에는 설악산 계곡에서나 봄 직한 거센 물살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발전소 관계자는 “농번기를 맞아 매초 30t의 섬진강 물을 6.2㎞ 길이의 도수터널을 통해 24시간 부안과 김제로 흘려보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옥정호의 지름 3.4m 취수구를 통해 섬진강의 물고기도 동진강으로 옮겨왔다. 동행한 고명훈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박사는 “언제부턴가 동진강에서는 한 번도 보고된 일이 없지만 섬진강에 사는 줄종개, 섬진자가사리, 왕종개 등이 발견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hb3.jpg » 맨위는 점줄종개, 아래는 줄종개, 가운데는 이들의 잡종으로 반문이 둘의 중간 형태이다. 사진=권예슬

 

문제는 새로운 어종의 출현에 그치지 않고 일부 서로 다른 종의 물고기 사이에 잡종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대 에코과학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생태학과 진화>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우리나라에서 섬진강에만 사는 줄종개가 애초 동진강에 서식하던 점줄종개와 잡종을 이루면서, 현재 동진강 본류에서 점줄종개의 토착 순종은 씨가 마르고 잡종 무리가 번성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 디엔에이(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분자시계 방법으로 추산한 결과 줄종개와 점줄종개는 330만년 전에 공통의 조상에서 분화해 다른 종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는 인류의 가장 먼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동아프리카에 출현하던 시기였고, 현생 인류 종은 그로부터 훨씬 뒤인 약 20만년 전에 나타난다.
 

hb8_잡종화한 점줄종개가 서식하는 동진강 상류인 도원천.jpg » 잡종화한 점줄종개가 서식하는 도원천의 모습. 맑은 물이 느리게 흐르고 바닥에 모래가 깔려 있다.

 

유역변경에 따라 미꾸리과의 이 두 종이 잡종을 이뤘다는 사실은 1984년 김익수 전북대 교수(현 명예교수)와 이완옥 대학원생(현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 박사)에 의해 처음 발견됐으며, 이번에 디엔에이 차원에서 그 실태가 규명된 것이다.
 

논문의 교신 저자인 원용진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330만년 전 공통의 조상에서 서식지가 고립되면서 한 종은 점줄종개로 다른 종은 줄종개로 진화한 것인데, 진화적으로는 순간에 해당하는 80여년 만에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동진강 점줄종개의 고유한 형질이 인위적 영향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hb9_잡종화한 점줄종개를 채집하는 이대 연구진.jpg » 어류를 채집해 잡종화 실태를 조사하는 이화여대 조사팀.

 

산외면 도수로를 통해 섬진강 물이 흘러드는 동진강에서 이화여대 연구진이 어류 채집을 했다. 물살이 느리고 모래가 깔린 바닥을 반두로 뒤지자 곧 미꾸리처럼 생긴 물고기가 잡혔다. 동진강에 애초 살던 점줄종개라면 머리에서 꼬리를 향해 나있는 무늬가 점점이 찍힌 모습이어야 하고, 섬진강 고유종인 줄종개는 점들이 이어진 줄 무늬여야 하지만 채집한 개체는 점도 아니고 줄도 아닌 중간 무늬가 있는 잡종이었다.
 

논문 제1저자인 이 대학 박사과정 권예슬씨는 “겉보기엔 점줄종개인데도 유전적으론 잡종이었다. 잡종화는 동진강의 일부 지류를 뺀 중·상류 8㎞에 걸쳐 광범하게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권씨는 “말과 당나귀의 잡종인 노새가 생식력이 없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잡종은 번식을 못 하지만 줄종개와 점줄종개의 잡종은 다른 순종은 물론이고 잡종 자손끼리도 교잡이 쉽게 일어나고 있음이 유전자 분석으로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인공 교배 실험에서도 일단 두 종이 만나면 잡종 형성을 가로막는 어떤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실제로 이 두 종은 모두 모래가 깔린 깨끗하고 느린 서식지를 좋아하고 6~7월의 번식시기가 같으며 번식기에 수컷의 무늬가 비슷해진다. 지리적 격리만이 이들을 별개의 종으로 유지하게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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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두 종이 다른 종으로 분화된 330만년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권씨는 해수면이 현재보다 100m 이상 낮았던 선신세 후기에 서·남해로 흐르는 중국과 한반도의 강들이 ‘고 황하’의 지류로 서로 연결됐을 때 중국에서 건너온 담수어가 이후 간빙기 때 해수면이 상승해 바다로 격리되자 별개의 종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산강의 남방종개와 섬진강의 왕종개가 분화한 시기도 이 시기로 드러나는 등 급격한 해수면 변화 등 당시의 지질학적 사건이 한반도 담수어의 분포와 종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이 논문은 밝혔다. 그러나 이 시기 이후에도 빙하기와 간빙기가 되풀이됐지만 330만년 전 격리된 두 종은 1920년대까지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hb5_동진강 지류 정읍천의 보.jpg » 동진강 지류인 정읍천의 보. 헤엄치는 힘이 약한 종개류는 보를 타넘지 못해 순종이 보존되고 잡종의 침투를 막는 구실을 한다.

 

연구진이 동진강 본류에서 채집한 80여 마리 가운데 순종 점줄종개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러나 지류인 정읍천에서 연구진은 1분도 되지 않아 순종으로 보이는 점줄종개를 채집했다.

 

모래가 깔린 하천 바닥을 뒤지자 돌마자, 왜매치, 밀어 등과 함께 암컷 점줄종개도 곧 채집됐다. 개체수가 제법 된다는 얘기다. 역설적으로, 생태계를 단절시킨다고 알려진 보에 가로막힌 지류가 토종 점줄종개를 잡종화로부터 지켜주는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고명훈 박사는 “동진강 수계에는 500여개의 소형 보가 있는데 헤엄치는 힘이 약한 종개류는 이를 타 넘지 못한다. 동진강의 순종 점줄종개는 섬진강물과 함께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줄종개의 유전자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점차 희석돼 왔다. 보는 토종 점줄종개가 잡종지대로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지만 동시에 잡종으로부터 순종 점줄종개 집단을 지켜 주는 구실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hb10_줄종개와 점줄종개가 선호하는 서식지_물이 느리게 흐르고 바닥에 모래가 깔린 깨끗한 하천 중상류이다.jpg » 평화로워 보이는 동진강의 물줄기. 인위적 영향으로 그 속 생물들의 큰 교란을 겪고 있다.

 

한편,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황의욱 경북대 교수(동물 분자계통분류학)는 “인위적 수로 연결 뒤 나타나는 수계 생물의 유전적 다양성이 바뀌는 양상을 살펴 본 의미 있는 연구 결과로, 순수한 유전자형을 지닌 점줄종개는 사라지고 이입된 줄종개 또는 잡종형으로 급격히 대체되는 양상을 입증했다”며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는 수계 생태계에서 어류 두 종을 대상으로 했다는 한계는 있지만, 수계의 인위적 훼손이나 연결이 자연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연구”라고 평가했다.

 

정읍/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한반도 고유종의 보고 ‘미꾸리’

전체 16종 중 13종이 고유종, 특정 하천에 고립돼 진화

 

미호종개의 짝짓기 모습_한사리 디비에 있음_번호는 01734889_P_0.jpg » 우리나라 미꾸리과 어류 가운데 가장 큰 멸종위기에 놓여있는 미호종개가 인공증식장에서 짝짓기를 하고 있다. 사진=환경부

 

한반도의 민물고기는 모두 212종이지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름인 학명을 붙인 이는 대부분 일본과 유럽 학자이다. 우리나라 학자 가운데 처음으로 우리 민물고기를 연구해 국제 학계에 신종으로 발표한 사람은 김익수 전북대 교수로 해방 뒤 30년 만의 일이었다. 그가 루마니아 어류학자 날반트 박사와 함께 발견한 종이 미꾸리과의 참종개이다.
 

미꾸리나 미꾸라지는 농수로나 연못 등 탁한 물에 살지만 바닥에 모래와 자갈이 깔린 깨끗한 강의 중·상류에도 미꾸리와 비슷한 형태의 물고기가 산다. 이 물고기는 등과 옆구리에 갈색 반점이 여러 가지 무늬를 이루는데, 일본인 어류학자 우치다 게이타로 박사는 1939년 이들을 구별하지 않고 기름종개라는 한가지 물고기로 분류했다.
 

그러나 김익수 교수 등 우리나라 연구진은 이들의 형태와 생태, 생리, 디엔에이 염기서열을 분석해 기름종개가 실은 10여 가지의 다른 종임을 밝혀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세계에서 한반도의 특정 지역에만 서식하는 고유종이다.
  

참종개에 이어 1976년 왕종개, 1987년 부안종개, 1999년 북방종개 등 한국 학자의 신종 발표가 미꾸리과에서 잇따랐다. 이 가운데 김익수 교수는 10여 종의 신종을 발표해 이 분야 연구의 토대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미꾸리과 어류 가운데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인 종은 미호종개로 현재 환경부의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금강 중류 미호천에서 처음 발견된 이 물고기는 빠르게 흐르는 모래 속에서 주로 생활하는데 골재채취와 서식지 파괴로 미호천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인근 금강 지류에서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 미호종개는 김익수 교수와 손영목 서원대 교수가 함께 발견했지만 학명으로 우리나라 민물고기 연구의 선구자인 최기철 박사 이름을 넣어 기렸다.
 

우리나라의 미꾸리과 어류 16종 가운데 고유종은 13종으로 그 비율이 81%에 이를 만큼 높다. 이는 신생대 선신세 후기 이후 해수면 변동에 따라 한반도에 유입된 담수어류가 특정 하천에 고립돼 독자적인 진화를 이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꾸리와 미꾸라지가 한반도 전역과 중국, 일본 등에 분포하는 반면 멸종위기종 1급인 얼룩새코미꾸리와 수수미꾸리는 낙동강에만 서식하고, 부안종개는 전북 부안군 백천, 줄종개는 섬진강, 좀수수치는 전남 고흥반도 일대 소하천 등 극히 좁은 범위에서만 발견된다. 점줄종개는 우리나라 서남해로 흐르는 하천과 중국 동북부, 러시아 아무르강 일대에 분포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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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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