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가면 철쭉 상식 뒤집어진다

조홍섭 2014. 05. 21
조회수 29249 추천수 0

한반도는 세계 분포의 중심지, 식물학적 문화적 가치 커

영남알프스 사자봉·가지산 일대 다수 남아, 조사와 보호조처 필요

 

ro6.jpg » 철쭉 맞아? 밑동 지름이 45㎝인 가지산의 초대형 철쭉을 한 환경 활동가가 줄자로 재고 있다. 흔해서 하찮게 보이지만 철쭉과 진달래는 한반도가 세계 분포의 중심지이다. 노거수는 특히 보호가치가 높다.

 
도감을 보면 진달래나 철쭉 모두가 ‘밑동에서 가지를 많이 치는 키 작은 나무’란 뜻의  ‘관목’이라고 적혀 있다. 경남 밀양시 천황산(해발 1189m·사자봉)에 가면 이런 상식이 뒤집힌다.

 

이곳에 만발한 진달래를 보기 위해선 고개를 젖혀 하늘을 봐야 한다. 키 4m에 줄기 하나가 손아귀에 다 잡히지 않을 만큼 굵은 ‘거대 진달래’가 곳곳에 서 있다.
 

여기서 7㎞쯤 북쪽인 가지산(해발 1240m) 정상 부근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철쭉 군락지가 있다. 이곳에서도 가장 큰 철쭉은 어른 허벅지 굵기의 가지가 10여개 뻗어 있는 거대한 몸집을 뽐낸다. 이미 쓰러져 사라진 중앙의 원줄기까지 합치면 밑동 지름이 1m에 가깝다.
 

천황산과 가지산은 다른 1000m급 산인 운문산, 고헌산, 신불산, 간월산, 영취산과 함께 ‘영남 알프스’를 이룬다. 이곳에 진달래와 철쭉의 노거수가 몰려 있는 까닭은 뭘까.
 

ro4.jpg » 천황산(사자봉) 정상의 진달래 군락지.

 

진달래 꽃이 한창 피어나던 지난달 21일 밀양의 얼음골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에서 사자봉 쪽으로 향했다. 나지막한 철쭉이 바다처럼 펼쳐진 산 사면에 신갈나무와 소나무가 가끔 서 있고, 훤칠한 진달래의 붉은 꽃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동행한 정우규 한국습지환경보존연합 대표는 진달래와 철쭉 위주의 식생이 형성된 배경에 대해 “이곳은 빨치산 토벌 등으로 산불이 잦았고 종전 뒤에는 화전이 들어서 산지 훼손이 지속됐다. 고산지대여서 바람이 세 진달래와 철쭉 이외의 다른 식물은 복원되지 못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진달래는 햇빛이 잘 드는 곳이면 척박하고 산성 토양인 곳에서도 잘 자란다. 전쟁과 가난으로 우리나라 산야가 황폐했을 때 온산을 붉게 물들일 정도로 진달래가 많았다.
 

ro3.jpg » 사자봉 사면의 떨기나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훤칠한 진달래 군락.

 

그러나 봄이면 지천이던 진달래가 요즘엔 그리 흔하지 않게 됐다. 신창호 국립수목원 박사는 “숲이 울창해지고 땅이 비옥해지면서 진달래는 산 능선이나 숲 자락에만 분포하는 점차 사라지는 종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낮은 산이나 구릉처럼 진달래가 잘 자라는 곳이 주택단지나 산업용지로 바뀐 것도 작용했다.
 

하지만 사자봉 능선의 북서 사면에는 아직도 진달래와 철쭉의 노거수가 여럿 남아 있었다.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에서 전망대로 가는 나무다리 근처에 있는 진달래는 큰 가지 6개와 작은 가지 6개로 구성된 밑동의 지름이 50㎝에 이르렀고 키는 3.5m, 나뭇가지가 뻗친 범위를 가리키는 수관 폭은 4m였다. 큰키나무(교목) 못지않은 수세인 이런 진달래가 주변에 여럿 있었다.
 

ro1.jpg » 가지가 어른 손목보다 굵은 초대형 진달래.

 

이곳 최대 진달래는 대형 철쭉과 한 나무로 결합한 독특한 형태였는데, 줄기 밑둥 지름 27㎝에 키 4.6m, 수관 폭 5m에 이르렀다. 이런 초대형 진달래의 나이는 얼마나 될까.

 

정우규 박사는 “진달래는 목질이 조밀해 나무를 관통하는 생장추를 채취해 나이테를 세기가 매우 힘들다. 대신 제주도의 200년생 털진달래에 견줘 약 300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ro5.jpg » 대형 철쭉과 결합목을 이룬 밑동 지름 27㎝의 초대형 진달래가 바위 위에 자라 있다.

 

정 박사는 “이런 진달래 노거수가 사자봉 일대에 30~40그루, 가지산에 5~10그루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반도를 대표하는 생물종이자 문화적 자산인 진달래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에 대한 보호대책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재약산과 사자봉 일대는 얼음골 케이블카가 2012년 개통된 이후 훼손이 가속화하고 있다. 진달래 노거수 군락을 발견해 조사하고 있는 이수완 밀양 참여시민연대 환경위원장은 “애초 우려대로 케이블카가 재약산과 사자봉의 정상등반을 부추겨 토양침식과 답압이 심각하다. 이 지역의 생태적 가치를 평가해 천연기념물 지정 등 보호조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o13.jpg » 얼음골 케이블카가 정상 등반의 발판이 되고 있다. 많은 등산객이 밟아 등산로의 침식도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신창호 박사도 “오래된 진달래 개체가 발견되지 않아 아직 진달래의 유전자원 보호구역이 지정된 적이 없다. 노거수가 집단으로 있다면 충분히 보전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자봉에도 대형 철쭉이 있지만 철쭉의 노거수가 밀집한 곳은 인근 가지산이다. 지난 7일 찾은 가지산에선 석남 터널 인근 중턱부터 대형 철쭉이 커다란 진달래와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흰색과 연분홍부터 짙은 분홍까지 철쭉의 꽃 색깔도 다양했다.
 

ro14.jpg » 가지산 등산로 주변의 초대형 철쭉. 이런 철쭉이 50여 그루 있다.

 

정상에 접근하자 등산로 옆으로 거대한 철쭉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밑동의 지름이 40㎝인 벚꽃처럼 옅은 분홍빛 꽃을 매단 철쭉 옆에는 곁가지도 없이 밑동 지름이 45㎝인 초대형 철쭉이 등산객의 눈길을 붙잡았다.
 

이보다 더 큰 철쭉은 등산로에서 보이지 않는 사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가운데 원 가지가 죽어 없어지고 10여개의 곁가지만 남은 이 거대 철쭉은 곁가지의 지름만 해도 30㎝, 27㎝, 15㎝ 등 10㎝가 넘는 것이 6개에 이른다. 중앙을 포함한 전체 밑동의 지름은 97㎝였다.
 

ro10.jpg » 어른 허벅지 굵기의 가지만 대여섯 개인 가지산 최대 철쭉. 한반도는 철쭉 분포의 세계 중심지여서 세계 최대 철쭉일 가능성도 있다.

 

가지산 정상부의 철쭉 군락은 2005년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제462호로 지정했다. 철쭉 거목은 가지산에 약 50그루, 사자봉에는 약 10그루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지산 철쭉은 최고 450살로 계산했으나 이후 산림청이 경북 봉화군 춘양면의 소백산 줄기에서 발견한철쭉의 나이를 550살로 측정하면서 ‘최고령’ 타이틀을 내줬다. 이에 대해 정우규 박사는 “원줄기를 잰 소백산 철쭉의 나이와 훨씬 오래된 원줄기가 사라진 가지산의 곁가지 나이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ro11.jpg » 경북 봉화군 춘양면 소백산 줄기에서 산림청이 발견한 550살 된 초대형 철쭉. 밑동 지름이 33.4㎝이다. 사진=산림청

 

어쨌든 가지산 최대 철쭉은 노쇠한 모습이 역력했다. 다른 철쭉보다 개화도 늦고 수세도 약해 보였다. 정 박사는 “신갈나무 등 그늘을 드리우는 주변의 나무를 조절해 주지 않으면 세계 최대일 가능성이 큰 이 철쭉은 곧 최후를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ro7.jpg » 흰철쭉. 가지산엔 보통의 연분홍 철쭉 말고도 흰철쭉, 진한 분홍 철쭉 등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이 피고 정금나무의 큰 군락이 있어 진달래과 식물의 유전다양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ro8.jpg » 연한 분홍의 철쭉꽃.

 

ro9.jpg » 진한 분홍의 철쭉꽃.   

 

영남 알프스 일대의 거대 진달래와 철쭉의 학술적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병윤 국립생물자원관 식물자원과장은 “진달래와 철쭉은 흔해서 하찮게 생각하지만 세계적으로 동북아에만 분포하고 그 중심지가 한반도여서 가치가 큰 식물이다. 노거수가 많고 꽃 색깔 등 변이가 풍부하다는 것은 그 종의 기원지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어서 유전자원 확보 차원에서 추가적인 연구와 보전 조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밀양·울산/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러시아, 중국, 대마도에도 분포

모두 러시아 학자가 학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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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과 진달래는 함께 진달래속에 들어있는 가까운 종이다. 이들은 모두 러시아 학자가 19세기에 발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러시아 해군 제독 알렉산더 쉴리펜바흐는 1854년 동해안을 탐사하다 낯선 식물인 철쭉을 발견하고 당시 본국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식물원으로 보냈다. 이를 맥시 모비츠란 식물학자가 연구해 1871년 신종으로 학계에 발표했다.
 

진달래는 니콜라이 투르차니노우란 러시아 식물학자가 1837년 <모스크바 자연사 저널>에 신종으로 발표했다. 이르쿠츠크에 파견된 공무원이던 그는 바이칼호 주변의 식물을 탐사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곰취, 싸리, 백선, 꼬리진달래 등 다수의 새로운 식물 종을 학계에 보고했다.
 

물론 러시아 학자가 ‘발견’했다지만 한반도에서는 15세기부터 진달래와 철쭉을 약재로 썼다는 기록이 있고,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전해 내려오는 등 이들 식물은 한반도의 문화 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철쭉과 진달래는 세계에서 동북아에만 있다. 철쭉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요동 남부, 내몽골, 극동러시아에 분포하며, 진달래는 위 지역에 더해 일본 쓰시마 섬에서도 자생한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지에선 드문 꽃인데 견줘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흔한 식물이어서 한반도가 그 분포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산림청이 발간한 백두대간 생태지도에서 백두대간에 가장 많은 나무는 키 큰 나무에서 신갈나무, 키 작은 나무로는 철쭉이었다.
 

진달래와 철쭉은 혼동하기 쉽지만 진달래가 이른봄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중에 나오는 반면, 철쭉은 잎과 꽃이 동시에 나오는 차이가 있다.  또 철쭉은 연분홍색 꽃이 피고 잎 끝이 주걱 모양이지만 산철쭉은 꽃은 연한 자주색이고 잎 끝이 뾰족해 구별된다.

 

진달래는 참꽃, 먹지 못하는 철쭉은 개꽃이라 불리기도 하며, 진달래에 이어 핀다고 해서 영남지방에선 철쭉을 연달래라고 부른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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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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