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곤충 색도 바꾼다

조홍섭 2014. 06. 05
조회수 19729 추천수 0

유럽의 나비와 잠자리 전수조사 결과, 더운 곳일수록 색깔 옅어

색깔이 온도조절에 매우 중요해 …실제로 잠자리는 색깔 옅어져

 

dragonfly Aeshna juncea_ R. Manderbach.jpg » 유럽에 사는 왕잠자리의 일종. 기후변화에 따라 지난 수십년 사이 색깔이 옅어졌음이 밝혀졌다. 사진=만더바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왜 어떤 생물이 어떤 장소에 사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생물학자에게도 매우 힘든 일이다. 그것을 일반적으로 설명하는 규칙을 찾아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북극곰과 말레이 곰의 비교에서 보듯이, ‘항온동물은 추운 지방에 사는 종일수록 덩치가 크다’는 베르그만의 법칙은 그런 드문 예이다.
 

그런데 적어도 유럽에서 적용할 수 있는 생물지리학적 일반 법칙이 하나 발견됐다. ‘추운 곳의 곤충일수록 빛깔이 진하고 더운 곳일수록 옅다’는 것이다.
 

디르크 조이스 독일 필립스 대 동물학자 등 유럽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유럽에 서식하는 나비와 잠자리 473종의 색깔과 기온의 상관관계를 밝혔다.
 

Zorba the Geek_(European)_Peacock_butterfly_-_geograph_org_uk_-_908556.jpg » 유럽산 공작나비. 추운 곳일수록 색깔이 짙다. 사진=Zorba the Geek, 위키미디어 코먼스

 

곤충 같은 변온동물에게 몸 색깔은 무엇보다 온도조절에 매우 중요하다. 기후가 선선한 곳에 사는 곤충은 비행, 먹이 섭취, 짝짓기를 하기 위해선 체온을 주변 온도보다 높여야 한다. 겨울에 같은 햇볕을 받아도 진한 색 옷을 입으면 옅은 색 옷을 입은 것보다 더 따뜻한 것처럼, 진한 색 곤충은 이런 환경에서도 더 유리할 것이다.
 

반대로 온도가 높거나 해가 오래 쪼이는 곳의 곤충이라면 색깔이 옅을수록 오랫동안 넓은 서식지에서 활동할 수 있다. 진한 색이라면 과열로 치명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연구진은 디지털 이미지 분석기술과 계통발생 통계를 이용해 유럽에 사는 나비 366종과 잠자리 107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몸빛깔의 짙고 옅음이 온도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서늘한 북부 유럽에는 몸 색깔이 짙은 나비와 잠자리가 많았고 지중해 등 남유럽에는 빛깔이 옅은 곤충이 흔했다.
 

542px-European-butterfly_072-X.jpg » 유럽의 나비.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책임자인 조이스는 “이 연구로 유럽의 나비와 잠자리가 색깔 변이를 통해 열을 조절하는 능력에 따라 분포하고 있음을 알아냈다”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최근의 기후변화가 이들 곤충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아봤다. 잠자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평균적으로 옅은 빛깔의 잠자리가 늘어났음이 드러났다.

 

공동저자인 스테판 브룬첼 필립스대 연구원은 “지난 20년 동안 기후변화가 곤충 서식지에 대규모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이제 그 변화를 일으키는 강력한 원인을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앞으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어두운 빛깔의 곤충은 특정 분포지에서 사라지고 일부는 더 그늘진 곳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앞으로 곤충의 보전 전략을 짤 때 이번 연구결과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Salimfadhley_640px-Scarlet_Crocothemis_Erythraea_three-quarters-profile.jpg » 유럽산 고추잠자리. 기후변화로 색깔이 옅어질지 모른다. 사진=Salimfadhley,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연구의 기본 가설은 날개 등 곤충의 몸빛깔이 진화할 때 체온조절이 가장 중요한 선택 압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이, 몸 색깔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몸을 숨기는데도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이 연구에서 곤충의 등보다는 배의 색깔이 온도와 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온도와 색깔의 관계가 핵심적이지만 등은 배보다 온도 이외의 은폐 등 다른 기능과도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Dirk Zeuss et. al., Global warming favours light-coloured insects in Europe, Nature Communications 5:3874, DOI: 10.1038/ncomms4874 www.nature.com/naturecommunications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윙윙’ 벌 소리 들은 꽃의 꿀이 20% 더 달콤하다‘윙윙’ 벌 소리 들은 꽃의 꿀이 20% 더 달콤하다

    조홍섭 | 2019. 02. 21

    달맞이꽃 실험 결과…꽃이 특정 주파수에 반응하는 귀 구실‘벼는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식물이 잘 자란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그러나 중추신경도 귀도 없는 식물이 어떻게 들을 수 ...

  • 사랑은 싸워서 쟁취?…동물계 루저의 ‘반란’사랑은 싸워서 쟁취?…동물계 루저의 ‘반란’

    조홍섭 | 2019. 02. 20

    싸움보다 돌봄 능력·구애 과정 등 중시…더 많은 자손 남기기도암컷은 크고 강한 수컷을 좋아한다. 동물 세계에서 널리 나타나는 현상이다. 암컷이 지배적인 수컷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쪽이 양질의 자원을 확보하고 유전적으로 우월한 후손을 남기는...

  • 바다뱀은 표류 선원처럼 빗물로 갈증 채운다바다뱀은 표류 선원처럼 빗물로 갈증 채운다

    조홍섭 | 2019. 02. 19

    1년 절반 탈수 상태, 우기 첫 폭우가 만든 ‘담수 렌즈’서 ‘폭음’ “어디를 봐도 물이지만, 마실 물은 한 방울도 없구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던 선원은 이렇게 탄식했다지만, 삶의 절반을 이런 갈증 속에 살아가는 동물이 있다.세계에서...

  • 박쥐와 사슴이 ‘동업자’가 된 이유는?박쥐와 사슴이 ‘동업자’가 된 이유는?

    조홍섭 | 2019. 02. 14

    사슴 주변 맴돌며 하룻밤 흡혈 곤충 수백∼수천 마리 사냥손이 없는 동물에게 피부에 들러붙어 피를 빠는 말파리나 진드기를 잡아먹어 주는 다른 동물은 고맙기 짝이 없다. 기생충을 잡아먹는 동물도 손쉽게 먹이를 확보하니 득이다. 이처럼 청소를...

  • 빨리 배우는 물고기가 낚시에 잘 걸린다빨리 배우는 물고기가 낚시에 잘 걸린다

    조홍섭 | 2019. 02. 13

    큰입우럭 실험 결과…학습능력 좋고 대담한 개체가 실수도 잦아낚시는 물고기가 오랜 진화를 거치며 터득한 포식자 회피법을 무력화한다. 인류가 수만 년 동안 낚시를 해 왔지만, 물고기가 계속 걸리는 이유이다.(▶관련 기사: 물고기는 왜 낚시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