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년 건너뛴 김삿갓계곡은 '지층 타임머신'

조홍섭 2009. 06. 24
조회수 45699 추천수 0
<4> 시간이 바뀐곳
5억년 전 장산규암과 20억년 전 변성암 맞닿아
단양 다리안폭포에서도 똑같은 시간여행 경험
 
 
 
■ 시리즈 차례 ■

제1부 격변의 시대
  
   1. 북한산의 기원
    
  
2. 이동과 충돌   
   
3. 한반도의 속살   
   4. 시간이 바뀐 곳   
   5. 백두대간의 탄생   
  
6. 한국의 갈라파고스    
   7. 120만년의 화산분출  
   8. 꺼지지 않은 백두산
   9. 용암 흐르던 한탄강
   10. 땅이 흔들린다

제2부 생명의 땅
제3부 한반도 지질 명소


※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기사로 넘어갑니다
김삿갓 유적지로 유명한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에는 일반인이 모르는 또하나의 명물이 숨겨져 있다.
 
남한강 지류인 미포천을 따라 오르다 와석1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깊은 계곡과 절벽, 백사장이 어우러진 곳이 나온다. 여름철 피서객이 즐겨찾는 김삿갓 계곡이다. 이곳에선 김삿갓의 덧없는 발걸음처럼 15억 년이란 세월을 훌쩍 건너뛴 두 지층이 만나는 모습이 펼쳐져 있다.
 
지난 16일 현장을 둘러본 원로 지질학자인 진명식·최현일 박사는 “시대가 다른 지층 두 개가 여기처럼 경계면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곳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고 감탄했다.
 
무생물 세계와 생물 세계의 경계
 
하천변에 드러난 절벽 가운데에는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하게 기운 경계면이 한눈에 드러난다. 윗 지층은 약 5억 년 전인 고생대 초기의 변성퇴적암인 장산규암이고 아래는 약 20억 년 전 선캄브리아시대의 편암과 화강편마암이다.
 
고생대는 각종 동·식물 등 생명체가 지구의 주인이 된 시기인 반면 선캄브리아시대의 지구엔 고작 몇 종의 원시적인 단세포 생물만이 있었다. 이 부정합면을 경계로 세상의 주인은 무생물에서 생물로 바뀐다.
 
옅은 붉은빛을 띠는 장산규암층을 더듬어 잿빛 편암과 암갈색 화강편마암층으로 내려가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듯 갑자기 생물이 들끓던 세상에서 암석과 바다만이 보이던 초창기 지구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15억 년의 간격을 둔 두 지층 사이에 있던 지층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수수께끼를 풀 단서는 바로 현장의 암석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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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식 제주화산연구소장은 “경계면 아래 선캄브리아 기반암은 시루떡을 쌓아놓은 것 같은 층상구조를 보이는 편암과 이 암석을 관입했던 화강암이 있다”며 “이는 20㎞ 이하 깊은 땅속에서 퇴적암과 화강암이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변성암이 되면서 변성구조인 ‘편리’가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반암은 고생대 퇴적층이 쌓이기까지 15억 년 동안 땅위로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고 지각변동으로 구겨지거나 구워지는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진 박사는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고생대 퇴적층이 쌓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지표에 노출돼 온갖 풍상에 시달렸다는 사실”이라며 “이때 깎여져 나간 자갈, 모래, 진흙은 이후 중생대와 신생대 암석의 원료로 재활용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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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대 해변 백사장이 시간이동 단서

 
약 5억년 전 영월의 김삿갓 계곡은 아열대 바닷가였다. 육지에서 쓸려온 모래가 바닷가에 쌓였다. 더 먼 바다엔 입자가 가는 펄이 퇴적됐고, 여기에 탄산칼슘 껍질을 지닌 생물이 다수 서식하기도 했다.
 
대륙의 이합집산에 따라 바다의 침입과 후퇴가 되풀이됐고, 마침내 이 일대는 땅속 10㎞ 깊이에 묻혔다. 모래는 장산규암층이 됐고, 펄은 묘봉슬레이트층으로, 해양생물이 많던 곳에는 두터운 석회암층이 생겼다.
 
최현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박사는 “이때 해안습지와 평야에 쌓인 식물이 석탄층을 이뤘고 얕은 바다엔 석회암이 쌓여 우리나라 산업화에 필요한 무연탄과 시멘트를 선물로 남겼다”고 말했다.
 
기반암과 맞닿은 장산규암층의 맨아래에는 자갈이 박혀 있었다. 최 박사는 “자갈이 든 규암층은 풍화된 기반암 위에 처음 모래가 퇴적된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시간을 건너뛴 부정합의 증거”라고 설명했다.
 
Untitled-8 copy.jpg고생대 전기 지층은 남한의 강원도 삼척, 영월, 정선 등 태백산 지역과 북한 평안북도와 황해도 일대에도 넓게 분포한다. 이 시대 해안가 모래층이었던 장산규암은 두께 10~200m 깊이로 고생대 지층에서 가늘고 긴 띠 형태로 나타난다. 해안선의 길이가 무한하듯이 비록 두께는 얇아도 장산규암층의 길이는 수백㎞에 이른다. 그러나 경계면을 드러내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소백산자락인 충북 단양군 단양읍 천동리 다리안계곡에도 장산규암과 화강편마암 기반암의 경계면이 나타난다.
 
단양읍내에서 고수동굴과 다리안관광지를 거쳐 소백산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고생대에서 선캄브리아시대로 20억년 가까운 시간여행 코스이기도 하다. 지층이 굴곡져 산으로 올라갈수록 더 오래된 지층이 보인다.
 
다리안관광지의 소백산교 아래에 드러난 암반은 5억 년 전 장산규암이다. 그러나 여기서 10여m쯤 상류로 올라가면 20억 년 전 선캄브리아시대의 변성암층이 나타난다. 그 사이 어딘가에 부정합이 있다는 얘기다. 몇 초만에 15억 년을 건너뛴다면, 타임머신을 탄 것과 무엇이 다를까.

영월·단양/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더 오랜 지층 가려내는 기본원칙
뚫은 암석이 뚫린 암석보다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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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강편마암을 뚫고 들어온 화강암 암맥.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지질학자인 제임스 허튼(1726~1797)은 사암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모래 알갱이가 강물에 씻겨 낮은 곳에 쌓인 뒤 땅속에 묻혀 다시 사암이 되려면 인류의 역사보다 훨씬 긴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질학적 과정은 보이지 않는 작은 변화가 장기간 축적돼 일어난다는 이 생각을 동일 과정설이라고 부른다.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지질학적 현상은 과거에도 동일하게 진행됐다는 가설이다. ‘현재는 과거를 아는 열쇠’인 것이다.
 
절대연대 측정의 역사는 반세기밖에 안된다. 그 이전 수백년 동안, 그리고 현재에도 현장의 지구과학자들은 상식과 몇가지 원칙을 무기로 암석 형성의 순서와 시간적 변화를 알아낸다. 동일 과정설 이외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 수평성 원리 l 호수나 바다밑 퇴적은 수평으로 이뤄진다. 기울거나 휜 퇴적층은 퇴적 이후 변동을 받은 것이다.
 
◇ 지층 누중의 법칙 l 퇴적층에서 밑의 지층은 위의 것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이다.
 
◇ 부정합의 법칙 l 지층이 융기-침식-침강-퇴적의 과정을 겪었고 해수면이 변화했음을 가리킨다.
 
◇ 절단과 포획의 법칙 l 뚫고 들어온 암석은 뚫린 것보다, 붙잡은 것도 붙잡힌 것보다 나중 암석이다.
 
◇ 동물군 천이의 법칙 l 진화하는 생물 화석의 변천을 통해 지층의 생성 순서를 알 수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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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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