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풀 귀고리' 패션 유행처럼 흉내
야생상태 잠비아 침팬지 1년 관찰, 뚜렷한 이유 없이 모방 확산
창안자 사망 뒤에서 계속…"문화적 잠재력 보여줘"
» 풀잎을 귀에 꽂고 다니는 행동을 창안한 암컷 침팬지 줄리. 사진=판 레이우웬 외, <동물 인지>
아프리카 잠비아에는 야생 침팬지 고아원이 있다. 이 보호시설은 면적이 20~80㏊인 숲으로 야생과 비슷한 상태에서 침팬지 94마리가 산다.
매일 점심때 부족한 먹이를 공급하는 시간을 빼곤 완전한 자연 상태에서 4개 집단이 살아간다. 야생 침팬지의 행동을 연구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시설이다.
네덜란드 진화생물학자 에드윈 판 레이우엔은 2010년 이 보호구역의 ‘줄리’라는 암컷 침팬지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뻣뻣하고 볏짚처럼 생긴 길쭉한 풀잎을 고르더니 자신의 귀에다 꽂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 풀잎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잘 조정한 다음 다른 행동을 할 때에도 계속 귀에 꽂고 있었다.
» 캐티(왼쪽)과 줄리(오른쪽)가 귀에 풀을 꽂은 채 줄리의 아들인 잭과 놀아주고 있다. 사진=판 레이우웬 외, <동물 인지>
연구진은 이듬해부터 1년 동안 ‘귀에 풀잎 꽂기’ 행동을 740시간에 걸쳐 비디오로 촬영해 분석했다. 줄리가 창안한 이 이상한 행동은 이 무리의 다른 침팬지로 번져나갔다.
줄리와 늘 붙어있는 아들 잭이 가장 먼저 귀에 풀 꽂기 행동을 따라 했다. 또 줄리의 절친인 캐티도 금세 이런 행동을 배웠다. 미라클과 발은 다음 모방자였는데. 이들도 평균적으로 다른 침팬지보다 줄리에 더 자주 접근하는 침팬지였다.
» 귀에 풀을 꽂은 발(오른쪽)이 줄리(가운데)의 털을 고르고 있다. 왼쪽 잭의 손에는 귀에 꽂을 풀이 들려있다. 사진=Myle`ne De´silets, <동물 인지>
이 무리에 속한 12마리의 침팬지 가운데 8마리가 이 행동을 따라 했는데, 대부분은 창안자가 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했다. 그런데 줄리가 죽은 뒤에도 두 마리의 침팬지가 빈도는 떨어졌지만 귀에 풀을 꽂는 행동을 했다.
연구진은 국제 과학저널 <동물 인지>에 보고한 논문에서 “사회적 학습이 침팬지 사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밝혔다. 침팬지가 동료로부터 배우는 능력이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 실험실에서 강요나 보상을 통해 이끌어낸 행동이다.
연구진은 “귀에 풀을 꽂는 행동이 다른 3개 집단에서는 한 사례를 빼고는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며 “이는 이 행동이 생태학적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이런 행동이 침팬지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적응가치가 없음에도 서로 행동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이미 보고된 나무줄기로 흰개미를 낚는 등의 도구 사용 행동이나 털 고르기 행동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털 고르기 행동은 이 보호시설 2007~2012년 사이에 관찰된 것이다(막스플랑크 연구소의 관련 보도자료 참조).
이곳 침팬지들은 무리마다 털 고르는 행동이 달랐는데, 이곳에선 두 마리의 침팬지가 서로 한 손을 공중으로 뻗어 맞잡은 채 다른 한 팔로 서로 털을 고르는 특이한 자세를 취했다. 이 행동은 처음 어미로부터 배운 뒤 20마리의 젊은 침팬지로 퍼져나갔다.
» 한쪽 팔을 공중에 들고 나머지 팔로 털을 고르는 독특한 행동. 사진=마크 보다머
» 올린 팔의 자세한 모습. 손과 손을 맞잡거나 손목을 잡는 등 무리마다 방식에 차이가 있다. 사진=마크 보다머
연구진은 이런 도구 사용과 털 고르기 같은 행동은 기능적 사회적 이유가 분명하지만, 이번의 풀 꽂기 행동은 별다른 목적이 없이 단지 “반응을 촉진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풀이했다.
연구진은 “이번 관찰은 침팬지가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집단 성원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배우려는 성향이 있음을 확인시킨다. 이런 행동이 자연발생적이고 창안자가 죽은 뒤에도 지속한다는 점에서 침팬지의 문화적 잠재력을 보여 준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dwin J. C. van Leeuwen et. al., A group-specific arbitrary tradition in chimpanzees (Pan troglodytes), Animal Cognition, June 2014 , DOI 10.1007/s10071-014-0766-8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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