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풀 귀고리' 패션 유행처럼 흉내

조홍섭 2014. 06. 30
조회수 26622 추천수 0

야생상태 잠비아 침팬지 1년 관찰, 뚜렷한 이유 없이 모방 확산

창안자 사망 뒤에서 계속…"문화적 잠재력 보여줘"

 

ch4.jpg » 풀잎을 귀에 꽂고 다니는 행동을 창안한 암컷 침팬지 줄리. 사진=판 레이우웬 외, <동물 인지>  

 

아프리카 잠비아에는 야생 침팬지 고아원이 있다. 이 보호시설은 면적이 20~80㏊인 숲으로 야생과 비슷한 상태에서 침팬지 94마리가 산다.
 

매일 점심때 부족한 먹이를 공급하는 시간을 빼곤 완전한 자연 상태에서 4개 집단이 살아간다. 야생 침팬지의 행동을 연구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시설이다.
 

네덜란드 진화생물학자 에드윈 판 레이우엔은 2010년 이 보호구역의 ‘줄리’라는 암컷 침팬지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뻣뻣하고 볏짚처럼 생긴 길쭉한 풀잎을 고르더니 자신의 귀에다 꽂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 풀잎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잘 조정한 다음 다른 행동을 할 때에도 계속 귀에 꽂고 있었다.
 

ch2.jpg » 캐티(왼쪽)과 줄리(오른쪽)가 귀에 풀을 꽂은 채 줄리의 아들인 잭과 놀아주고 있다. 사진=판 레이우웬 외, <동물 인지>

 

연구진은 이듬해부터 1년 동안 ‘귀에 풀잎 꽂기’ 행동을 740시간에 걸쳐 비디오로 촬영해 분석했다. 줄리가 창안한 이 이상한 행동은 이 무리의 다른 침팬지로 번져나갔다.
 

줄리와 늘 붙어있는 아들 잭이 가장 먼저 귀에 풀 꽂기 행동을 따라 했다. 또 줄리의 절친인 캐티도 금세 이런 행동을 배웠다. 미라클과 발은 다음 모방자였는데. 이들도 평균적으로 다른 침팬지보다 줄리에 더 자주 접근하는 침팬지였다.
 

ch3.jpg » 귀에 풀을 꽂은 발(오른쪽)이 줄리(가운데)의 털을 고르고 있다. 왼쪽 잭의 손에는 귀에 꽂을 풀이 들려있다. 사진=Myle`ne De´silets, <동물 인지>

 

이 무리에 속한 12마리의 침팬지 가운데 8마리가 이 행동을 따라 했는데, 대부분은 창안자가 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했다. 그런데 줄리가 죽은 뒤에도 두 마리의 침팬지가 빈도는 떨어졌지만 귀에 풀을 꽂는 행동을 했다.
 

연구진은 국제 과학저널 <동물 인지>에 보고한 논문에서 “사회적 학습이 침팬지 사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밝혔다. 침팬지가 동료로부터 배우는 능력이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 실험실에서 강요나 보상을 통해 이끌어낸 행동이다.
 

연구진은 “귀에 풀을 꽂는 행동이 다른 3개 집단에서는 한 사례를 빼고는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며 “이는 이 행동이 생태학적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이런 행동이 침팬지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적응가치가 없음에도 서로 행동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이미 보고된 나무줄기로 흰개미를 낚는 등의 도구 사용 행동이나 털 고르기 행동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털 고르기 행동은 이 보호시설 2007~2012년 사이에 관찰된 것이다(막스플랑크 연구소의 관련 보도자료 참조).
 

이곳 침팬지들은 무리마다 털 고르는 행동이 달랐는데, 이곳에선 두 마리의 침팬지가 서로 한 손을 공중으로 뻗어 맞잡은 채 다른 한 팔로 서로 털을 고르는 특이한 자세를 취했다. 이 행동은 처음 어미로부터 배운 뒤 20마리의 젊은 침팬지로 퍼져나갔다.
 

Mark Bodamer.jpg » 한쪽 팔을 공중에 들고 나머지 팔로 털을 고르는 독특한 행동. 사진=마크 보다머

 

Mark Bodamer2.jpg » 올린 팔의 자세한 모습. 손과 손을 맞잡거나 손목을 잡는 등 무리마다 방식에 차이가 있다. 사진=마크 보다머  

 

연구진은 이런 도구 사용과 털 고르기 같은 행동은 기능적 사회적 이유가 분명하지만, 이번의 풀 꽂기 행동은 별다른 목적이 없이 단지 “반응을 촉진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풀이했다.
 

연구진은 “이번 관찰은 침팬지가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집단 성원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배우려는 성향이 있음을 확인시킨다. 이런 행동이 자연발생적이고 창안자가 죽은 뒤에도 지속한다는 점에서 침팬지의 문화적 잠재력을 보여 준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dwin J. C. van Leeuwen et. al., A group-specific arbitrary tradition in chimpanzees (Pan troglodytes), Animal Cognition, June 2014 , DOI 10.1007/s10071-014-0766-8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하마 배설물은 강 생태계에 보물일까 재앙일까하마 배설물은 강 생태계에 보물일까 재앙일까

    조홍섭 | 2018. 05. 21

    물고기 주요 먹이지만 건기 오염 축적되만 ‘오염 폭탄’자연스런 현상이었지만 인위적 요인 겹치면 회복 불능몸무게가 1t이 넘어 아프리카에서 코끼리, 코뿔소와 함께 가장 큰 초식동물인 하마는 밤 동안 초원지대를 돌아다니며 하루에 50㎏에 이르...

  • 바퀴벌레 무서워? 당신 몸속에 ‘곤충 먹는 유전자’ 있다바퀴벌레 무서워? 당신 몸속에 ‘곤충 먹는 유전자’ 있다

    조홍섭 | 2018. 05. 18

    곤충 키틴질 겉껍질 분해 효소 유전자 4종 보유공룡시대 곤충 먹던 흔적, 모든 포유류에 남아곤충은 기후변화와 인구증가에 대응할 수 있는 유력한 미래 식량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실 사람의 곤충 먹기는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어서 이미 세...

  • ‘침팬지 침대’는 사람 것보다 깨끗해~‘침팬지 침대’는 사람 것보다 깨끗해~

    조홍섭 | 2018. 05. 17

    매일 나무 위에 새로 짓는 둥지, 세균·벌레 축적 안 돼사람 집은 외부 생태계 차단…침대 세균 35%가 몸에서 비롯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등 영장류는 공통으로 매일 잠자리를 새로 만든다.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엮어 받침을 만든 뒤 ...

  • 백두산호랑이 주 먹이는 멧돼지, 겨울엔 절반 차지백두산호랑이 주 먹이는 멧돼지, 겨울엔 절반 차지

    조홍섭 | 2018. 05. 16

    한국표범은 주로 사슴 사냥…두만강 건너 중국 동북부 조사 결과멧돼지와 사슴 주 먹이지만 호랑이는 반달곰, 표범은 수달도 사냥 한 세기 전만 해도 한반도 전역과 중국 동북부, 러시아 연해주에 걸쳐 3000마리 이상이 살았던 아무르호랑이(백...

  • ‘둑중개’는 강마다 달라요…보호종 재지정 시급‘둑중개’는 강마다 달라요…보호종 재지정 시급

    조홍섭 | 2018. 05. 14

    ‘개체수 많다’며 보호종에서 해제…유전연구 결과, 하천별 차이 커보호종 한둑중개는 오히려 유전다양성 8배 높아…생활사 차이서 비롯강원도와 경기도 하천 최상류에 둑중개란 물고기가 산다. 한반도에만 분포하는 고유종으로, 한여름에도 수온이 20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