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어머니요 불은 아버지인 180만 살 제주

조홍섭 2009. 08. 05
조회수 32377 추천수 0
<7> 180만년 동안의 화산분출
얕은 바다서 치솟아 한라산과 360개 오름 탄생
일출봉엔 속살 고스란…최고 걸작은 용암동굴
 
 
■ 시리즈 차례 ■

제1부 격변의 시대
  
   1. 북한산의 기원
    
  
2. 이동과 충돌   
   
3. 한반도의 속살   
  
4. 시간이 바뀐 곳   
   
5. 백두대간의 탄생   
  
6. 한국의 갈라파고스    
   7. 120만년의 화산분출  
   8. 꺼지지 않은 백두산
   9. 용암 흐르던 한탄강
   10. 땅이 흔들린다

제2부 생명의 땅
제3부 한반도 지질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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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쪽 끝인 한경면 고산리 해안에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장관이 있다. 층을 이뤄 쌓인 화산재를 크고 작은 암석들이 관통한 모습이 절벽 면 가득히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화산폭발로 뿜어져 나온 뜨거운 가스가 화산 기슭으로 소용돌이치며 밀려 내려와 물결무늬의 지층을 쌓았고, 그 위로 암석조각이 비 오듯 쏟아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수월봉 화산기원 퇴적층은 외국 화산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적 화산섬
 
북서쪽의 한림읍 비양도 해변에는 거대한 화산탄이 널려있다. 빠른 속도로 분화구 꼭대기로 상승한 기포가 폭발하면서 큰 마그마 덩어리를 공중에 내던졌다. 마그마는 공중에서 회전하면서 고구마 형태로 굳어 땅에 떨어졌다. 이곳에는 길이 4m, 무게 약 10t의 화산탄도 있어 지척에서 엄청난 규모의 폭발이 일어났음을 말해준다.
 
제주도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적 화산섬이다. 그러나 제주도는 ‘물의 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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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유산을 관리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전문가인 전용문 박사는 “제주도를 탄생시킨 절반이 불이라면 나머지 반은 물”이라고 말했다.
 
성산 일출봉은 물과 불의 대표적인 합작품이다. 약 5천 년 전 얕은 바다 밑에서 화산분출이 시작됐다. 뜨거운 용암이 찬 바닷물과 만나자, 용암은 급격히 식고 물은 끓어오르는 격렬한 반응과 함께 큰 폭발이 일어났다. 뜨거운 유리잔에 찬물을 부었을 때처럼 마그마는 유리조각 알갱이로 깨져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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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봉은 경사가 30도가 넘는 가파른 경사의 화산으로 유리질 화산재가 사태를 일으키고 쌓인 과정이 절벽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일출봉을 제대로 보려면 땀흘리며 분화구에 오를 게 아니라 해안가 절벽으로 가야 한다.
 
일출봉 화산체의 대부분은 침식돼 사라지고 정상부와 사면만 남았다. 그 덕택에 화산의 탄생과 형성과정을 담은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세계적으로 드문 화산으로 꼽힌다.
 
서귀포 천지연폭포 서쪽 해안엔 ‘탄생의 비밀’
 
q3.jpg제주도 자체가 물에서 태어났다. 신생대 후기인 약 180만 년 전 얕은 바다에서 화산활동이 시작됐다. 크고 작은 수많은 화산이 때로는 폭발과 함께 격렬하게, 때로는 느릿느릿 용암 분출을 이어갔다. 80여 차례의 화산 분출로 오늘날의 한라산과 360여 개의 오름이 형성됐다.
 
서귀포시 천지연폭포 서쪽 해안에서 제주도 탄생의 증거를 볼 수 있다. 어딜 가나 검은 용암으로 뒤덮여 있는 제주이지만, 대형 가리비를 포함해 수많은 바다생물의 화석이 들어있는 퇴적층인 서귀포 층이 절벽에 드러나 있다. 이 지층은 조가비와 함께 첫 화산폭발의 흔적도 간직하고 있다.
 
윤석훈 제주대 지구해양과학과 교수는 “서귀포 층에 들어있는 화산암 조각은 용암이 흐른 형태가 아니라 얕은 물에서 폭발한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이어서 제주도가 수중분출한 화산으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서귀포 층은 제주도를 세계의 다른 화산과 구별해 주는 구실을 한다. 손영관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제주도가 겉모습은 하와이나 인도네시아 등 해양성 화산과 비슷하지만 내부구조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근본원인은 얕은 바다에서 탄생한 대륙붕 형 화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를 덮고 있는 평균 70m 깊이의 용암을 모두 걷어내면, 제주도 탄생 당시 활동하던 수중화산 150여 개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송악산, 수월봉, 당산봉, 일출봉, 용머리 등이 물과 불의 격렬한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 수성화산이지만, 대부분의 오름은 물 없이 태어났다.
 
용암은 까칠하거나 또는 미끈한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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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읍의 섭지코지는 대표적인 예이다. 마그마 속 휘발성분은, 마치 탄산음료 속 이산화탄소 거품처럼 빠른 속도로 상승해 압력이 낮아지면 폭발적으로 분출한다. 불길이 500m 상공까지 치솟은 폭발과 함께 화산재는 멀리, 화산탄이나 부석 같은 굵은 알갱이는 분화구 주변에 쌓였다.
 
섭지코지 등대가 있는 봉우리는 거대한 분화구의 가장자리가 침식을 견디고 남은 부분이다. 화산의 중심 분출통로의 자취가 바로 바닷가에 서 있는 선돌바위이다.
 
제주의 용암은 다 같아 보이지만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까칠하거나 미끈한 두 얼굴이 있다. 하와이 사람들의 말을 따 처음 것을 ‘아아 용암’, 나중 것을 ‘파호이호이 용암’이라고 부른다.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점성이 높은 아아 용암은 천천히 흐르는 동안 굳은 표면이 쉽게 깨져, 걷기 피곤한 거친 암석층을 이룬다. 또 표면과 바닥이 굳어 용암통로를 만들기도 하는데, 제주시 해안의 용두암은 바다 쪽으로 향하던 용암통로의 일부가 판자 모양으로 남은 것이다. 아아 용암이 물 등을 만나 갑자기 식으면, 논바닥이 갈라지는 것처럼 5~6각형으로 갈라져 대포동 해안에서 보는 주상절리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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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가 높고 점성이 낮은 파호이호이 용암은 제주도에서 ‘빌레’라고 부르는 넓고 평탄한 지형을 만든다. 풍력 발전기가 나란히 서 있는 행원리 바닷가에 마치 아스팔트 포장을 해놓은 것처럼 검은 용암이 펼쳐진 곳이 바로 빌레이다. 자세히 보면, 굳은 표면 밑에서 용암이 밀어올려 표면이 빵 껍질처럼 부풀어 오르거나 식은 팥죽의 주름처럼 밧줄 형태를 이루기도 한다. 용암이 굳은 표면 틈으로 삐져나와 짜놓은 치약이나 코끼리 발톱 모양으로 굳은 것도 있다.
 
화산동굴이면서도 석회동굴과 같은 종유관, 석화 등 독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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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호이호이 용암이 만든 걸작이 용암동굴이다. 흐르던 용암 표면이 굳고, 공급되던 용암의 양이 줄어 생긴 공간은 동굴이 된다.
 
거문오름에서 10㎞ 이상 흘러나온 용암이 만장굴, 벵뒤굴, 김녕굴, 용천굴, 당처물동굴 등 세계적 가치를 지닌 용암동굴계를 형성했다.
 
이광춘 상지대 교수(지질학)는 “10만~30만 년 된 오랜 화산동굴이면서도 내부가 훼손되지 않았고 규모도 커 보전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특히 용천동굴과 당처물동굴은 조개껍데기 성분이 많은 지표의 모래가 지표의 빈틈이나 나무뿌리를 타고 동굴에 스며들어 화산동굴이면서도 석회동굴과 같은 종유관, 동굴진주, 석화 등을 생성시켜 세계적 독특함이 선정기준인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는 데 기여했다.
 
그렇다면 200만년 가까이 제주도에 수많은 화산을 분출시킨 열원은 뭘까. 그동안 학계에선 하와이를 형성시킨 것과 같은 열점을 원천으로 설명했다. 맨틀 깊숙한 곳에서 대류현상에 따라 마그마가 상승해 지표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열점보다는 더 얕은 곳에서 마그마가 상승한 것으로 보는 가설도 나온다. 최성희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지구시스템연구부 박사는 “단층 주변 등 지각이 약한 곳을 따라 맨틀 상부의 마그마가 올라와 화산활동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며 “이 때문에 마그마 분출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제주/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역사 속의 제주도
“산이 처음 솟아나올 때…어두컴컴하고 땅은 진동…”
 
1007년 <고려사절요>  목격담…7000년 전 사람 발자국 화석 발견도
 
“산이 처음 솟아나올 때는 구름과 안개로 뒤덮여 어두컴컴하고 땅은 진동하는데 우렛소리 같았고…초목은 없고 연기가 산 위를 덮고 있어 이를 바라보니 석류황과 같으므로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가까이 갈 수 없었다.”
 
1007년 발간된 <고려사 절요>는 제주도의 화산활동에 대한 여러 역사기록 가운데 하나이다. 실제로 비양도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화산분출이 이 섬을 가리킨다며 2002년‘천년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전용문 박사(제주도 세계자연유산관리본부)는 “고려 때 기록된 화산활동 분화구는 육지가 아닌 바닷속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라산의 백록담 분화구와 성산 일출봉, 송악산 오름이 형성된 것은 불과 4000~5000년 전이다. 주민들은 화산의 폭발적인 탄생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송악산 근처인 남제주군 사계리 해안에서 발견된 사람 발자국 화석은 화산 활동 현장에 사람이 살았다는 직접 증거이다.
 
애초 문화재청은 2004년 이 화석 발견을 발표하면서 5만년 전 화석이라고 했으나 손영관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퇴적층의 탄소연대 측정값을 근거로 발자국 화석은 2000~3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해 학계에 논란을 불렀다.
 
결국 문화재청은 지질자원연구원에 정밀한 생성연대 구명을 의뢰했고, 박기화 박사팀은 6800~7600년이란 값을 제시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 해수면이 현재와 비슷하게 높아진 약 7천 년 전 우리 조상은 남제주군 대정읍 바닷가 펄 위를 거닐며 두려움 속에 화산분출을 지켜봤음이 틀림없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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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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