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산맥 산석류꽃, 기발한 새 유혹 전략

조홍섭 2014. 07. 10
조회수 23260 추천수 0

수술 끝에 곤봉 모양 '열매' 달려 새 유혹, 먹으려고 누르면 꽃가루 분출

안데스 산맥 융기하면서 애초 꿀벌에서 새로 매개동물 바뀌었을 가능성 

 

Current Biology, Dellinger et al._sjpg.jpg » 수술 끝에 곤봉 모양의 부속물이 달린 남미 안데스의 산석류 꽃. 이것을 먹으려는 새에게 꽃가루를 분출하도록 돼 있다. 사진=델링거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남미 에콰도르와 페루의 안데스 산맥에 분포하는 떨기나무인 산석류의 꽃은 독특하다.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꽃잎 안쪽 수술이다.

 

수술의 끄트머리가 곤봉처럼 부풀어 올라 먹음직한 열매처럼 보인다. 새들이 이 꽃에 매달려 ‘수술 열매’를 부지런히 따 먹는다. 그런데 이 꽃과 새 사이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의 아그네스 델링거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 꽃이 교묘한 장치를 이용해 새에게 꽃가루를 뿜어내는 전략을 쓴다고 밝혔다.

Current Biology, Dellinger et al2_s.jpg » 산석류의 '수술 열매'를 따먹다 꽃가루를 뒤집어쓴 풍금조. 사진=델링거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새가 가루받이를 하는 식물은 대개 꽃꿀을 대가로 제공한다. 꿀을 빠는 과정에 꽃밥을 묻힌 새가 다른 꽃에 수분을 한다.

 

그러나 이 산석류를 찾는 풍금조 등 새는 ‘수술 열매’를 따먹으러 온다. 실제로 수술 끝 부분은 아주 영양가가 풍부해 새들이 즐겨 먹는다. 진정 쌍떡잎식물 가운데 꽃꿀이 아닌 생식기관을 가루받이의 보상으로 내주는 식물은 산석류가 첫 사례이다.
 

산석류는 수동적으로 새에게 가루받이를 맡기지 않는다. 수술의 정교한 장치를 이용해 꽃가루를 뒤집어 씌우는 적극적인 전략을 구사한다.

 

‘수술 열매’에는 공기주머니가 들어있다. 새가 이 부위를 따먹으려 누르면 공기가 압축된다. 압축된 공기는 가는 관을 타고 꽃가루가 가득 들어있는 수술 자루로 밀려가 꽃가루를 분출하는 것이다. 마치 풍금조가 풀무질을 하는 것 같다.
 

풀무.jpg » 산석류 수술 끄트머리를 새가 누를 때 꽃가루가 분출되는 얼개. E는 새가 누르기 전, F는 누른 뒤를 나타내며 화살표는 공기가 흐르는 방향이다. '수술 열매'를 눌렀을 때 수술자루에 든 꽃가루(pc)가 모두 빠져나갔음을 알 수 있다. 그림=델링거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흥미로운 사실은 산석류의 대부분 종은 가루받이를 꿀벌이 한다는 것이다. 왜 안데스의 산석류만 새들을 활용하게 됐을까. 연구자들은 이들의 분포지가 안데스 산맥의 해발 1000~3600m 고도인 것으로 보아 고도에 따른 적응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자생지의 고도가 높아질수록 곤충보다는 새에게 꽃가루받이를 의존하는 식물이 늘어난다 것이 크루덴 가설이다. 밤새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산악지역에선 변온동물인 곤충보다는 체온을 유지하는 조류가 더 믿음직한 매개동물이어서 그런 쪽으로 진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동백나무의 최북단 자생지인 우리나라에서도 수분을 해 주는 동물은 곤충이 아니라 동박새이다.
 

01268217_P_0.jpg » 곤충이 아직 나오기 전인 이른봄 동백나무의 꽃에 내려앉은 동박새. 사진=뉴시스

 

연구자의 하나인 쥐르크 쇠넨베르거 비엔나 대 교수는 “산석류 무리가 진화하면서 꽃의 형태 변화와 함께 수분 매개동물도 바뀌었다”고 밝혔다. 변화의 원동력은 신생대 에오세에 일어난 안데스 산맥의 융기였을 것이라고 논문은 추정했다. 지각변동으로 산이 솟아오르면서 고도가 높아지자 산석류 무리가 매개동물을 꿀벌에서 새로 바꾸면서 진화했다는 것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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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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