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여행

조홍섭 2014. 0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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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서 대흥안령 산맥 끝까지 1500㎞, 만주는 '옥수수와 풍차 밭'

여행의 계절, 자연사의 신비에 눈 돌리자…백두산, 한란산, 울릉도, '방콕'

 

P7310093_s.jpg » 내몽골 야커스 시 주변의 광활한 유채밭. 개발의 물결은 중국의 오지 끄트머리까지 미치고 있었다.

 
“그곳에선 베개만한 감자와 주먹만한 대추가 열렸지.”

 

만주에서 농업전문학교에 다니다 단신 월남한 선친은 만주의 끝없이 넓은 비옥한 땅을 이렇게 회상하곤 하셨다. 그 기억을 직접 확인할 기회가 왔다.

 

중국 선양(심양)에서 북쪽으로 만주를 가로질러 네이멍구(내몽고) 자치구까지 자동차와 철도로 이동하는 취재여행을 했다. 부산~신의주 거리의 2배가량인 1500㎞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P7310004-s.jpg » 만주 평원을 가로지르면서 차창 밖에 가장 많이 보이는 건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이었다.  

 

과연, 차창 밖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밭이 펼쳐졌다. 그 대부분엔 감자나 콩이 아닌 옥수수가 심어져 있었다. 중국 동북부는 중국판 ‘콘 벨트’의 핵심 지역이다.

 

중국에서는 고기 소비가 가파르게 늘면서 가축 사료용 옥수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점점 많은 벼와 밀밭이 옥수수밭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도 머지않아 중국은 세계 최대의 옥수수 수입국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P7300194-s.jpg » 옥수수밭 너머로 풍차가 줄지어 서 있다. 중국의 세계 최대의 풍력발전국이다.

 

P7300238_s.jpg

 

네이멍구에 접어들자 옥수숫대 다음으로 풍력발전용 풍차가 많이 눈에 띄었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풍력발전국이다.

 

평원과 산에 풍차가 늘어서 있다면 도심엔 건설용 크레인이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도로 어디에나 화물을 가득 실은 트럭이 줄을 지었다. 세계경제의 성장엔진이자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 중국의 풍경이었다.
 

P8010544_s.jpg » 열매를 맺은 월귤. 우리나라에선 강원도 홍천의 풍혈과 설악산 일부에 있는 희귀종이지만 내몽골 아한대 지역에는 발에 밟히도록 많았다.

 

이번 취재는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다른 것’을 찾아 나섰던 이제까지와 전혀 달랐다. 한반도의 고산지대에 분포하는 희귀식물과 ‘공통종’이 있는 곳을 찾는 것이었다. 남한에서 유일하게 설악산 대청봉 근처 능선 등에 분포하는 눈잣나무가 대상의 하나였다.
 

키가 작아 누운잣나무란 이름을 얻은 이 아고산식물은 북극해와 시베리아, 캄차카, 그리고 이번에 찾은 네이멍구 다싱안링(대흥안령) 산맥 최북단인 건허(근하)에는 흔한 침엽수다. 그렇지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백두산, 설악산, 일본 혼슈 등 띄엄띄엄 높은 산악지역에만 조금씩 남아 있다.

 

P8010309-a.jpg » 내몽골 건허 눈잣나무 보호구역 안의 눈잣나무. 설악산에 있는 개체보다 키가 훨씬 컸다.

 

과거 빙하기 때 시베리아에서 한반도까지 연속해서 널리 분포했다가 남쪽에선 고산지대에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진 것이다. ‘빙하기의 유산’이라 할 만한 이런 고산식물의 자취를 통해 동아시아 자연사를 더듬어볼 수 있다. 또 기후변화의 첫 희생자가 될 이들의 보전과 복원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일본, 러시아 연해주 등 동아시아는 세계적으로 식물학자들이 주목하는 지역이다. 신생대 초 따뜻하고 습윤했던 기후가 점차 춥고 건조해지면서 이 지역은 빙하기를 피해 살아남은 다양한 생물의 대규모 피난처가 됐다.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원시적인 형태를 간직한 종을 포함해 ‘유존종’(遺存種)이 많아 세계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다. 우리에겐 산업화 이전 한반도 원형의 숲을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03685980_P_0.jpg » 울릉도의 섬나무딸기는 초식동물이 없는 섬에서 가시가 없는 형태로 진화했다. 사진=조홍섭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1831년 비글호를 타고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모든 생물을 신이 창조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5년 동안 많은 곳을 탐사하며 관찰과 채집을 하면서 ‘왜 특정한 생물이 이곳에는 있고 저곳에는 없나’라는 질문을 한 끝에 다양한 종은 일시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차츰 진화해 형성됐음을 깨달았다.

 

비유해 설명한다면, 북극곰과 펭귄이 극지방 모두에 산다면 신의 뜻이겠지만 각각 북극과 남극에만 산다는 것은 진화의 역사가 개입했음을 보여준다.
 

여행은 다윈처럼 거창한 발견이 아니라도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질문을 던질 기회를 제공한다. 백두산에 가면 천지에만 넋을 빼지 말고 화산활동과 빙하기 식물의 자연사에도 귀를 기울일 일이다. 한국의 갈라파고스인 울릉도에 간다면, 왜 그 섬에 뱀과 포유동물이 없고 섬나무딸기는 가시를 잃었는지 생각해보자.

 

아니면 방 안에서 상상여행을 통해 한반도 대운하가 없는데도 어떻게 한강과 낙동강에 같은 붕어가 살게 됐는지, 또 산삼이 한반도와 만주 말고도 아메리카 로키산맥에 어떻게 터잡고 살게 됐는지를 그려볼 수도 있겠다. 여행의 계절, 자연의 신비를 찾아 떠나보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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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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