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뒤 하루만에 세균이 고스란히

조홍섭 2014. 0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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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뿐 아니라 우리 집도 하나의 생태계, 독특한 세균의 아우라…'세균 지문' 주목

호텔방 3시간, 새 집은 24시간이면 세균 군집이 점령…몸에서 시간당 1500만 마리 세균 떨궈 

 

00193578_P_0.jpg » 이사는 물건만 이동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따라가면 그 사람의 세균도 함께 이사에 동참한다.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낡은 살림살이를 모두 정리하고 깨끗하게 청소한 새집으로 이사하면 기분마저 상쾌하다. 하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새집으로 따라오는 게 있다. 바로 옛 집에 살던 세균들이다.
 

인체는 인간이란 커다란 동물에 터잡아 사는 수많은 작은 생물들의 생태계이다(■ 관련 기사: 당신 몸에 사는 100조 마리 ). 특히 우리 몸속에 사는 세균이 우리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몸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집도 하나의 생태계처럼 독특한 미생물군집을 이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내놓는 세균이 살아가는 공간이며, 다른 집과 구별되는 ‘세균 지문’을 지닌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람의 장내 세균인 엔테로코쿠스 파에킬리스의 모습2. 사진=미국립보건원.jpg » 사람의 장내 세균인 엔테로코쿠스 파에킬리스의 모습. 사진=미국립보건원

 

사이먼 랙스 미국 시카고대학 생태학 및 진화학과 대학원생 등 연구진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29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인종이 다른 7가족 18명을 대상으로 집과 개인의 미생물군집을 연구해 얻은 이런 결과를 보고했다.
 

연구진은 6주 동안 가족 구성원들의 손, 발, 콧속뿐 아니라 각 가정의 문고리, 바닥, 침실, 욕실, 전기 스위치, 애완동물 등을 대상으로 면봉을 이용해 세균 시료를 채취했다.
 

사람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세포는 시간당 150만개에 이른다. 그런데 각각의 세포마다 열개의 세균이 있으니 시간당 사람이 떨구는 세균의 수는 1500만 마리가 된다. 또 기침과 재채기를 하고 다른 물체를 만지는 과정에서도 수백만 마리의 세균이 전달된다. 숨을 쉴 때도 예외가 아니다.
 

logo-one.png » 미국 시카고 대학의 가정 미생물군집 연구 프로젝트 로고.

 

연구진은 모든 시료를 대상으로 디엔에이(DNA)와 통계 분석을 한 결과 가정마다 다른 가정과 구별되는 매우 독특한 미생물 집단이 있음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미생물 시료를 보고 어느 집에서 온 것인지를 알아내기는 퍽 쉬웠다”라고 밝혔다.
 

집의 이런 ‘세균 아우라’는 놀랍게 빠르게 형성됐다. 조사 대상인 한 가정은 이사를 하는데 집이 빌 때까지 호텔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호텔 방의 미생물 군집은 가족 구성원이 들어선 지 3시간 만에 먼저 집과 비슷한 형태가 됐다. 새집 전체에 먼저 집의 세균 집단이 형성되기까지는 24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 가정의 구성원도 저마다 다른 미생물 군집을 지니고 있었다. 특정한 사람이 며칠 집을 비우면 그 집 세균 군집이 갑자기 달라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사람의 창자에서 종종 발견되는 세균의 일종. 사진=미국질병통제센터.png » 사람의 창자에서 종종 발견되는 세균의 일종. 사진=미국질병통제센터

 

심지어 집의 세균 분포와 변화를 통해 몇 명이 살고 있으며 그들 사이의 관계가 어떤지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남녀 한 커플이 남자 세입자 한 명과 사는 집이 있었다. 세균 분석 결과 두 남자는 욕실을 공유했지만 여성은 다른 욕실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나중에 당사자로부터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가족 구성원 사이에도 늘 접촉이 많은 부부 사이나 아이와 부모 사이에는 세균 군집이 비슷했지만 방을 따로 쓰는 부부나 십대 자녀와 부모 사이에서는 차이가 컸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사람과 집, 애완동물 미생물 군집 사이에 매우 커다란 상호작용이 있음이 이번 연구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발견은 장차 사람의 건강은 물론 ‘세균 지문’을 이용한 범죄 수사 등에 응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의 원문 정보:
 
Simon Lax et. al., Longitudinal analysis of microbial interaction between humans and the indoor environment, Science 29 August 2014, Vol 345 Issue 6200, doi: 10.1126/science.1254529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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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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