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곰 수난 100년 지리산 복원 10년
'인권'보다 '곰권', 김영삼 단식 가린 반달곰 보도…보호 시기 놓쳐
지리산에 31마리, 가임기 도달 더 들어날 듯…등산객과 충돌 등 과제
» 나무 위에 누워 느긋하게 어린 싹을 뜯어먹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본격적인 보호와 복원이 시작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한반도의 야생 반달가슴곰이 사진이나 흔적이 아닌 실물로 마지막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3년이었다. 설악산 마등령에서 밀렵꾼의 총을 맞고 신음하던 곰 한 마리를 확인했다고 <경향신문>이 그해 5월21일치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것이다. 구조반이 긴급출동했지만 곰은 이틀 뒤 숨졌다.
신문은 기다렸다는 듯 다양한 기사를 쏟아냈다. 곰이 마지막 숨을 멈추는 순간을 재구성한 기사부터 밀렵 실태에 관한 기획기사까지. 밀렵꾼은 납이 든 사제 총탄을 썼고, 부검 과정에서 어른 주먹 크기의 웅담이 나왔는데 공개입찰로 판매할 것이며, 죽은 곰은 10년생 암컷인데 수태한 흔적이 없다는 등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았다.
» 1983년 5월 부상당한 채 설악산에서 발견된 반달가슴곰을 보도한 <경향신문> 기사들.
그런데 반달가슴곰이 발견되기 며칠 전인 5월18일부터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가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 상태였다. 이 사실은 ‘정치 현안’으로만 언급됐을 뿐 언론에 일절 보도되지 않았다.
17일간의 단식 끝에 김 전 총재가 입원한 뒤에야 보도가 허용됐다. 김중배 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6월18일치 “신문기자, 당신들”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단식에는 침묵하고 반달가슴곰은 시시콜콜 다룬 신문의 태도를 독자가 매섭게 꾸짖었다며 부끄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권위주의 정권과 이에 굴종한 언론사는 종종 국민의 관심을 돌리는 데 야생동물을 이용한다. 1971년 박정희-김대중 대선을 앞둔 마지막 황새 보도도 그랬다. 그 결과 멸종위기 동물을 지키는 데 국민적 공감대를 모으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울 마지막 기회가 속절없이 날아가 버렸다.
» "이것이 웅담이다" <동아일보> 1983년 5월24일치 기사.
단군신화의 주인공이면서도 반달가슴곰이 이 땅에서 받은 대접은 부끄러울 정도다. 일제 강점기에 ‘해로운 짐승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해마다 수십~수백 마리의 반달가슴곰을 죽였다.
해방 이후 전쟁을 피해 살아남은 곰은 웅담을 노린 사냥꾼의 집요한 추적을 받았다. 우두성 지리산생태보존회 대표의 최근 발표를 보면, 지리산에서만 1960년대에 한해 약 40마리의 반달가슴곰이 포획됐다. 대기업에서는 전문 포수를 고용해 지리산에 상주시켰고, 구례를 근거지로 한 윤아무개는 34마리나 잡았다는 것이다.
1972년 곰 사냥이 금지되고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조금씩 개체수가 늘어나던 차에 1983년 설악산 곰 사건이 났다. 생업을 접으려던 밀렵꾼들은 사냥감이 있다는 증거를 보고 다시 밀렵도구의 먼지를 털었다.
주류 언론이 보여준 변치 않은 웅담에 대한 관심도 이들의 등을 떠밀었을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것이 진짜 웅담”이라며 설악산 반달곰의 웅담 사진을 사회면에 큼지막하게 싣기도 했다. 밀렵꾼들은 화약을 벌집 밀랍으로 싼 ‘감자탄’ 같은 신무기를 동원해 밀렵에 나섰다.
» 1980년대 등장한 신종 밀렵도구 일명 '감자탄'. 화약을 벌집의 밀랍으로 감싸 반달가슴곰이 물면 폴발하도록 돼 있다. 사진=우두성
마침내 반달가슴곰의 멸종이 임박하자 김영삼 대통령은 1996년 “반달가슴곰을 보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인권’보다 ‘곰권’을 더 중시한 정권의 피해자가 곰 보호에 나선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가 1983년 가택연금된 가운데 5·17 3주년을 맞아 단식을 벌이는 모습.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2004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도입한 새끼 반달가슴곰 6마리를 지리산에 방사하면서 곰 보호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다음달이면 반달가슴곰 복원이 시작된 지 꼭 10년이 된다.
현재 지리산에 복원한 반달가슴곰은 31마리이다. 러시아 연해주 등에서 38마리를 도입해 풀어놓았지만 올무에 걸려 죽거나 적응하지 못해 회수하는 등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 지리산 방사를 앞두고 문수리 자연적응훈련장에서 놀고 있는 새끼 반달가슴곰.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 덤불 속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희망적인 것은 이들 가운데 지리산에서 태어난 새끼가 13마리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올해만 5마리가 태어났고 어릴 때 도입한 곰들이 잇따라 가임기에 도달한다. 집단을 지탱할 최소 마릿수인 50마리를 넘어 지리산이 수용할 수 있는 100마리 이상으로 불어날 수도 있다.
» 지리산에서 태어난 반달가슴곰. 이 가운데 한 마리는 복원 이전 지리산에 살던 야생 반달가슴곰이 아비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의 깃대종이다. 반달가슴곰이 살아야 생태계가 건강해지는 핵심 종이란 뜻이다. 그런 곰이 불어나는 건 좋은 소식이지만 동시에 과제도 남긴다.
무엇보다 연간 280만명이 찾는 탐방객의 사고 가능성과 양봉 등 주민 피해가 심해질 것이다. 일일이 붙잡아 무선발신기를 부착하는 방식 외에 털 유전자를 분석하는 등 새로운 모니터링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단순한 관리를 넘어 생태계 차원의 연구 필요도 커진다.
지난 10년 동안 국도 1㎞ 건설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140억원이 들어간 반달곰 복원예산으로 이런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국토해양부의 올해 도로 부문 예산은 8조 3912억원이다. 멸종위기종 복원에 자연보전 예산의 대부분이 들어가는 것도 곤란하지만 그 규모 자체가 너무 작은 것도 문제다.
무엇보다 댐과 케이블카 건설 등 지리산 개발 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 지리산 생태계를 복원하면서 다른 한쪽에서 이를 갉아먹어야 하겠나.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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