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흉내 못 낼 갈대밭 동물들의 기막힌 건축술

김성호 2011. 0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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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머리오목눈이, 멧밭쥐 등 갈대 숲에 둥지

정교한 매듭에, 거미줄 접착제, 몸 다림질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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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의 가장자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갈대 숲입니다. 갈대숲은 먹이사슬 관계에서 주로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되는 여리고 약한 피식자(被食者) 생명체들이 제 몸도 숨겨가며 새끼를 돌볼 둥지를 틀기에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우선 갈대는 서로 몸을 맞대고 빼곡히 들어서서 군락을 이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생겼거나 미리 만들어 놓은 이동로가 아니라면 몸이 큰 포식자(捕食者)들이 드나들기 쉽지 않습니다. 


또한, 포식자들이 먹잇감의 위치를 감지하고 접근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접근하는 소리와 갈대의 흔들림마저 감추기는 어려운 노릇이기에 피식자들이 저들을 피할 최소한의 시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리 없이 접근하는 포식자


게다가 갈대는 대부분의 포식자들이 타고 오르기 어려울 정도로 약하고 가늘 뿐만 아니라 닿기 어려울 만큼 키가 큰 것도 피식자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톡톡히 한 몫을 해 줍니다. 


그리고 숨기고 숨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갈대숲 가까이에는 물이 있기 마련이고 물에는 또한 물에 기대어 사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기 때문에 주변에 자신과 새끼들을 키울 먹이가 풍부하다는 것도 유약한 생물이 갈대숲을 서식지나 번식지로 삼는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그래서 갈대숲에는 붉은머리오목눈이나 개개비와 같은 작은 새들의 둥지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안전한 갈대 숲에 꼭꼭 숨어있는 새의 둥지라 하여 포식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갈대 숲을 아무런 소리도 흔적도 없이 드나들 수 있는 뱀과 쥐 종류는 새의 둥지에 있는 알과 어린 새에 대해 치명적인 포식자의 지위를 차지합니다. 


어제만 해도 둥지에 분명히 여러 개의 알이 온전히 있었는데 다음 날 빈 둥지만 남아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나흘만 지나면 곧 둥지를 떠날 수 있을 정도로 다 큰 어린 새도 잠깐 사이에 모두 먹이가 되어 사라지기도 합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피할 수 없는 아픈 진행은 어디에서라도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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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밭의 새 둥지.


기본적으로 새들의 둥지는 알을 낳아 품어서 부화한 새끼를 키우는 아주 특별한 공간입니다. 따라서 둥지를 짓는 것은 곧 번식의 시작을 뜻합니다. 몇몇 새들이 잠을 자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둥지를 짓기도 하지만 그것은 퍽 드문 일에 해당합니다. 


갈대숲에 지은 작은 새들의 둥지는 대부분 위가 열려있는 사발 모양 또는 원추형이며 둥지의 입구와 내부가 비교적 넓은 것이 특징입니다. 새들이 둥지를 지을 때 사용하는 재료는 나뭇가지, 이끼, 풀잎, 깃털, 흙 등으로 다양하지만 갈대 숲의 새들이 둥지를 짓는 주요 재료는 물론 갈대의 줄기와 잎입니다. 갈대의 잎은 그대로 이용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가늘게 잘라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둥지를 짓는 순서를 보면, 먼저 둥지를 지지해줄 갈대를 선정합니다. 지지대 역할을 해줄 갈대를 선정하는 일이니 튼튼함과 함께 갈대 사이의 간격도 충분히 고려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지대 역할을 해줄 갈대가 선정되면 길고 가늘게 자른 갈대 잎을 물어와 엮기 시작합니다. 지지대 줄기를 중심으로 잎을 감아 돌리는 과정과 고리를 만들고 그 사이로 빼서 매듭을 짓는 과정을 반복하며 갈대를 엮어갑니다. 


부리로만 매듭 짓고 몸으로 눌러 마무리


매듭을 짓는 과정은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갈대를 엮는 도구는 오직 부리뿐입니다. 부리로만 하는 일인데도 그 정교함은 탄성이 나올 정도입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사람이 새의 둥지를 재현한다 하더라고 아마 흉내 정도에서 그치고 말 것입니다. 


한편, 갈대를 엮는 사이사이에 가져오는 것이 있습니다. 거미줄입니다. 거미줄은 둥지의 견고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자연의 접착제 구실을 해줍니다. 엮어가는 갈대 잎 사이사이에도 거미줄을 붙이지만 거미줄을 가장 많이 붙이는 곳은 둥지와 지지대와의 연결 부위입니다. 


어디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최종 형태를 꾸미는 과정에서는 몸을 사용합니다. 배로 누르고 머리로 밀어서 균형미와 조형미까지 갖춰가며 둥지는 완성이 됩니다. 새의 번식을 위한 둥지는 새로운 생명을 키워낼 공간입니다. 아무렇게나 짓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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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밭쥐 둥지


갈대 숲을 잘 살펴보면 언뜻 보기에는 새의 둥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새의 둥지가 아닌 다른 동물의 둥지가 또 있습니다. 그 둥지가 갈대의 줄기를 잘게 잘라서 둘둘 말아 만든 공 모양으로 생겼으며 새의 둥지보다는 짜임새가 조금 성글고 게다가 입구가 손가락 하나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아주 좁다면 그것은 바로 멧밭쥐의 둥지입니다. 


멧밭쥐의 학명은 Micromys minutus입니다. 속명 Micromys, 종소명 minutus 둘다 작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멧밭쥐는 설치류 중에서도 크기가 가장 작아 꼬리를 제외한 몸길이는 6~7.5㎝ 정도이고 몸무게는 고작 5~10g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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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저 티드만                                     사진=서머리 동물백과사전

 

꼬리는 상당히 긴 편이어서 몸의 길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길며 꼬리의 끝은 털로 덮여 있지 않아 갈대를 감아 쥐며 이동하는데 퍽 도움이 됩니다. 번식은 주로 7월에서 8월 사이에 이루어집니다. 


이 때 새끼를 기르기 위해 둥지를 만드는데 족제비, 고슴도치, 뒤쥐, 뱀, 맹금류 등과 같은 땅의 천적과 맹금류를 비롯한 하늘의 천적을 동시에 피하기 위해 갈대의 아래도 아니고 위도 아닌 적절한 1m 높이 정도에 자리를 잡습니다. 


출입구는 하나 또는 양쪽으로 두 개를 만들기도 하며 그 입구가 아주 좁은 것이 특징입니다. 번식기가 끝나고 무서리가 내리는 가을이 오면 이들은 갈대를 떠나 땅에 굴을 파고 살아갑니다. 


임신기간은 21일이고 1년에 한 번 4~6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갓 때어난 새끼의 몸무게는 1g 정도이며, 크기는 2cm 정도이니 암컷이 새끼를 가졌다 해도 그 무게는 산술적으로도 15g 정도에 불과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미가 날라다 주는 곤충이나 곤충의 애벌레로 기운을 차린 새끼는 놀랍게도 2주 만에 어미로부터 독립하여 둥지를 떠납니다.


김성호/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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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큰오색딱따구리 육아일기><동고비와 함께한 80일><까막딱따구리의 숲>의 저자로서 새가 둥지를 틀고 어린 새들을 키워내는 번식일정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로 세세히 기록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만난 생명들의 20년 이야기를 담은 생태에세이 <나의 생명수업>을 펴냈다.
이메일 : genexp@cho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phil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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