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목련의 향연’

조홍섭 2010. 0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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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
붉은 ‘벌컨’·노란 ‘엘리자베스’ 등 430종 ‘자태 과시’
특정 종 집중육성…멸종위기 가시연꽃 등 보전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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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과 자목련만 알던 사람이 천리포수목원에 오면 처음 보는 목련에 눈이 휘둥그레지기 마련이다. 연지색이나 노란색 꽃을 매단 목련이 있는가 하면, 겹꽃이 피거나 버드나무처럼 가지가 늘어진 것, 만개해도 오므린 봉오리 형태를 간직하는 것 등…. 
 
지난달 29일 세계 최고 수준인 약 430품종의 목련이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을 찾았다. 밀러가든 연못가의 ‘벌컨’ 품종이 화사하고 짙은 적색의 꽃으로 탐방객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자목련보다 색깔이 진하고 꽃잎 앞뒤의 빛깔이 같은 것이 특징이다. 김미정 수목원 코디네이터는 “벌컨이 필  때쯤이면 목련 마니아들로부터 개화 여부를 묻는 전화가 빗발친다”고 말했다.
 


 
목련원에서는 엘리자베스 품종이 탐스런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수목원 설립자인 고 민병갈(귀화 전 이름 칼 페리스 밀러)이 미국의 이모를 그리며 심었다는 글귀가 팻말에 적혀 있다. 옆에는 국화처럼 꽃잎이 많은 품종인 ‘파우더 퍼프’(분첩)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민병갈이 1973년 황폐한 모래언덕이던 이곳에 초창기 주로 심었던 나무가 목련이었다. 목련에 반한 그는 이후 사재를 털어가며 외국의 식물원과 양묘장, 목련 애호가로부터 목련 품종을 수집했다. 천리포수목원의 목련은 1997년 국제목련학회 총회를 유치함으로써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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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복 천리포수목원 이사장(한서대 명예교수)은 “400품종 이상의 목련을 갖춘 수목원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특정한 식물군을 집중적으로 모아 비교연구할 수 있는 학술적 의미가 크고 조경과 원예에 활용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목련뿐 아니라 400여 종류가 있는 호랑가시나무류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밖에 동백나무 380여 종류, 무궁화 250여 종류, 단풍나무 200여 종류 등 특정 분야에 다양성을 집중시킨 것이 이 수목원의 강점으로 꼽힌다. 
 
목련은 생물다양성 보전과 관련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식물이다. 국제식물원보존기구(BGCI)는 2007년 보고서에서 전세계 목련의 절반 이상이 야생상태에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목련은 원예종일 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목재, 식량, 의약품 원료이자 생태계 건강을 가리키는 지표종이기도 하다. 식물원이 목련의 유전자원 보존과 증식, 이용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환경부는 2006년 천리포수목원을 가시연꽃, 노랑무늬붓꽃, 망개나무, 매화마름, 미선나무 등 멸종위기종 5종의 서식지외 보전기관으로 지정했다.
 
마침 농약과 기계를 쓰지 않는 전통영농을 하는 수목원 내 논에서 매화마름이 꽃을 피웠다. 매화마름은 모내기철에 개화하지만, 논을 가는 과정에서 허리가 여러 토막으로 잘리더라도 속이 비어 있는 줄기가 물에 떠 꽃을 계속 피우고 마디마다 뿌리를 내민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다면 매화마름이 억센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음을 천리포수목원은 입증하고 있다.
 
또다른 보호종인 가시연꽃에 대해서는 생활사 규명이 한창이다.  가시연꽃은 1994년 홍성 역재방죽에서 씨앗을 받아 온 것인데 연못 바닥에서 싹이 터 열매를 맺기까지를 꼼꼼히 연구하는 중이다. 종자가 물 위를 떠다닌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성과로 꼽힌다. 열매에서 빠져나온 씨앗을 감싼 투명하고 미끌미끌한 표피는 종자가 물에 떠 멀리 이동할 수 있게 해 준다. 물고기나 곤충이 표피를 뜯어먹어 부력을 잃은 종자는 연못 바닥에 안착해 이듬해 싹을 틔우게 된다.
 
이 연구를 맡고 있는 남수환(교육팀)씨는 “멸종위기종 복원은 생태적 특성을 정확히 알고 난 뒤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리포수목원은 수집한 식물이 언제 어디서 왔고 어디에 심었는지 등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관리하기로 유명하다. 1974년부터 온도, 습도, 강우량 등을 기록한 것은 국립수목원에도 없는 자료이다. 1981년 5월27일 기록한 카드에는 고 이영로 박사가 오대산에서 채집한 노랑무늬붓꽃을 밸리베드에 심었다고 적혀 있다. 이런 자료는 기후변화로 인한 개화시기의 변화를 연구하거나, 멸종위기종을 증식해 복원할 기초자료가 된다.
 
태안/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40년 '금단의 정원' 지난해 개방
1970년부터 귀화미국인이 조성
10여년 재정난 끝에 일반공개
 

 
지난해 3월 일반에 공개되기 전 천리포수목원의 별명은 ‘신의 비밀정원’ 이었다.
허락을 받은 식물연구자나 후원회원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연간 1만3000명 정도이던  방문객 수는 지난 1년 2개월 동안 19만명으로 늘었다. 천리포수목원의 변신이 진행중이다.

천리포수목원을 지켜온 것은 “수목원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나무”라던 설립자의 유별난 나무사랑이었다. 미국 해군 장교로 1945년 한국에 첫발을 디딘 24살의 칼 페리스 밀러는 인심과 풍광에 이끌려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은행에 근무하던 1962년 가난한 농민의 땅 2000평을 사 달라는 부탁을 외면하지 못하면서 수목원 터 구입이 시작됐다. 소문을 듣고 너도나도 땅을 팔려 했다.
 
그는 1970년 본격적으로 수목원 조성에 나섰고, 1979년엔 민병갈이란 이름으로 한국 귀화 1호 미국인이 됐다. 그는 서울에서 주식투자로 번 돈을 모두 수목원에 쏟아부었다. 해마다 한두번씩 미국의 묘목 경매에 참여해 돈을 아끼지 않고 신품종을 사들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수목원은 재정난에 시달렸다. 2002년 민 원장의 타계 이후에도 재정적 어려움이 계속돼 직원들 월급도 못 줄 형편에 이르자 마침내 2008년 일반 개방을 결정하게 된다.

이보식 신임 원장(전 산림청장)은 “꽃 한 송이가 밟히면 열 송이를 심겠다”고 선언했다. 개방에 따른 훼손을 적극적인 관리로 막겠다는 것이다. 새 직원을 뽑고 연간 1억원이 드는 묘목 구입을 재개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도 따냈다. 이 원장은 “겨우내 꽃을 매다는 가을벚꽃 등 묘목 10만 그루를 양묘해 태안지역의 조경용으로 공급할 예정”이라며 “국민의 재산인 수목원을 활용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40여년 만에 빗장이 풀리자 탐방객은 성수기 때 하루 3000명에 이른다. 이들이 수목원을 밟고 다니고, 개중에는 희귀종을 채취해 가는 사람도 있어, 개방 후유증을 어떻게 막을지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았다.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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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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