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한라산·설악산의 고산식물 옮겨놓은 듯

조홍섭 2014. 10.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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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북방계 식물 자생지 답사 ③ 일본 야쓰가타케 보호림
빙하기 홋카이도·사할린 통해 대륙 연결, 낯익지만 다른 종 식물 많아
월귤, 시로미, 만병초, 솔송나무 한 자리서 '원시림 정원' 이뤄

 

1.jpg » 용암 위로 이끼가 뒤덮은 야쓰가타케 보호림의 아고산 침엽수림대 모습.   
 
“이게 무슨 종이죠?” 식물학자와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묻는 말이다.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우리나라의 어떤 종과 비슷하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선 달랐다. 우리 식물과 형태는 비슷해도 종이 전혀 다른 경우가 많았다. 한반도와 일본 모두 지난 빙하기 때 식물의 피난처였지만 일본은 지난 2만년 동안 섬으로 고립되면서 종의 분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0.jpg » 일본 나가노현 야츠노타케 보호림 위치

 

지난달 11일 일본 열도의 중앙인 나가노현과 야마나시현 경계에 위치한 야츠가타케 보호림을 찾았다. 이곳은 300만년 전까지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고산지대로, 빙하기 식물의 피난처여서 희귀식물이 많은 국립공원이다. 

 

보호림에 들어서자 “문을 꼭 닫고 다니시오”란 팻말이 붙은 그물 울타리가 눈길을 끌었다. 일본사슴을 막기 위한 시설이다. 동행한 오하시 하루카 일본 삼림총합연구소 박사는 “일본사슴이 1만 마리 이상 사는데 희귀한 고산식물을 마구 먹어치워 큰 골치”라고 말했다.
 
2.jpg » 겨우내 일본사슴이 껍질을 벗겨먹은 침엽수 모습. 보호림 안에만 1만 마리가 산다.

 

실제로 겨울 동안 사슴이 나무껍질을 벗겨 먹은 흔적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포식자인 일본늑대가 멸종하고 사냥이 준데다 기후변화까지 겹쳐 사슴이 급증했다”고 오하시 박사가 설명했다. 

 

보호림 안에는 일본분비나무가 빽빽이 들어서고 자작나무가 군데군데 섞여있는 아고산 침엽수림이 펼쳐졌다. 해발 2100m 고도였다. 수령 200년은 돼 보이는 커다란 분비나무 아래에 어린 분비나무가 대를 이뤄 자라고 있었다.
 
3.jpg » 일본분비나무 거목과 그 밑에 돋아나는 어린나무들.

 

3-1.jpg » 거목이 쓰러진 숲 틈에 돋아난 어린 침엽수. 자연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거목이 쓰러져 숲 틈이 생긴 곳에는 쏟아져 들어온 햇빛을 받아 어린나무들이 올망졸망 자라 침엽수 유치원 같았다. 죽음과 삶이 윤회하는 전형적인 자연림의 모습이다. 

 

어느 지점을 지나자 숲 바닥을 뒤덮던 조릿대가 자취를 감추고 이끼가 나타났다. 조릿대가 기승을 부려 어린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희귀 초본이 사라지는 현상은 우리나라 한라산 등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나카오 카츠히로 총합삼림연구소 박사는 “조릿대는 40~50년마다 꽃을 피우고 일제히 죽기 때문에 생태계에 어떤 구실을 하는지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장기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4.jpg » 용암을 덮은 이끼 위에 자연림이 덮여 한라산 곶자왈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 고산지대에서 볼 수 있는 사스래나무는 키가 작지만 이곳에선 한 아름은 될 거목이 흔했다. 나카오 박사는 “한라산 아고산대에 올랐을 때 이곳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숲이 있었다”며 “그러나 종은 달랐고 나무의 키가 훨씬 작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동행한 장계선 국립수목원 연구사는 “한라산의 아고산 침엽수림이 가파르고 바람 센 곳에서 자라지만 이곳은 고도가 높아도 평지인 차이가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숲 바닥을 용암이 가득 메우고 그 위를 이끼가 뒤덮고 있는 모습은 한라산의 곶자왈을 떠올리게 했다. 설악산 등 고산지대에서 드물게 만날 수 있는 만병초가 마치 정원에 심어놓은 것처럼 다양한 종이 가득했다.
 
5.jpg » 우리나라에서 고산지대에서 드물게 만나는 다양한 종류의 만병초가 무더기로 자라고 있다.

 

숲바닥은 고산 희귀식물인 시로미와 월귤이 덮고 있었고, 주변은 키 작은 눈잣나무와 북한에만 있는 풀산딸나무, 가장자리엔 솔송나무와 섬잣나무, 분비나무가 둘러쌌다. 

 

우리나라에서 이들을 보려면, 섬잣나무와 솔송나무는 울릉도, 시로미는 한라산, 눈잣나무와 월귤은 설악산에 가야만 한다. 그런데 이들이 해발 2200m 고도의 평지에 모두 모여 있었다. 원시림의 정원 같은 모습이었다. 

 

6.jpg » 월귤, 시로미, 만병초, 솔송나무 등 희귀 고산식물이 한 곳에 자라고 있어 원시림 고산 정원을 이루고 있다.

 

나카오 박사는 “이곳은 빙하기가 끝난 뒤 고산지대로 쫓겨난 아한대성 침엽수가 잔존하는 피난처”라며 “피난처라는 개념이 아직 보전정책에 널리 쓰이지 않고 있지만 기후변화 시대에 이런 역사적, 진화적 관점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과 일본의 고산식물이 비슷해 보여도 종이 꼭 같은 건 아니다. 한국의 식물은 좀 더 대륙에 가까운 형질을 지니고 있지만 일본 식물은 오래 고립돼 분화가 진행된 것이 많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2만년 전 마지막 빙하기 동안 러시아의 사할린과 일본의 홋카이도, 혼슈가 육지로 연결됐다. 이때 일본 남쪽과 한반도의 연결 여부는 확실치 않다. 이때 홋카이도를 통해 일본 본토로 북방계 식물이 대거 유입됐다. 

 

7.jpg » 보호림의 시로미. 우리나라에선 한라산 정상에서만 볼 수 있다.

 

공우석 경희대 교수(생물지리학)는 “이런 자연사 배경 때문에 일본과 한국의 북방계 식물엔 공통종이 많다. 홋카이도 다이세츠잔 고산지대는 위도가 43도로 한반도보다 훨씬 높지만 설악산의 눈잣나무와 한라산의 돌매화, 시로미 등이 다수 분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빙하기가 끝난 뒤 일본의 북방계 식물은 고산지대에 고립되면서 외부로부터 유전자 유입이 없이 독특한 진화의 경로를 걸었다. 이제 인위적 기후변화로 동북아 북방계 식물은 다시 한 번 위기에 놓였다. 과거 일본에서 이들이 어떻게 생존했는지를 아는 것은 한반도와 다른 동북아 생태계 보전에도 중요한 일이라고 공 박사는 말했다.

 

일본 나가노현/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인터뷰 다나카 노부유키 일본 삼림총합연구소 박사
 

"기후변화 동아시아 공동 모니터링 시급"

 

8.jpg » 일본너도밤나무를 안아보고 있는 다나카 박사.

 

일본을 대표하는 나무는 일본너도밤나무이다. 울릉도 특산인 너도밤나무와 매우 가까운 이 나무는 일본 특산으로 일본 열도 전역에 분포하는 낙엽 활엽수이다. 

 

그런데 선선한 온대 기후를 좋아하는 이 나무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곳곳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고산지대에 쫓겨났는데도 혼슈 이남에서는 쇠퇴 징후가 짙다. 
 

다나카 노부유키 일본 삼림총합연구소 박사(사진)는 지난 5년 동안 일본 중부인 쓰쿠바산(해발 877m)에서 일본너도밤나무에 대한 기후변화 영향을 연구해 왔다. 다나카 박사는 “기후변화로 온대림이 난대림에 밀려 사라지는 현상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것이다. 동아시아 차원에서 하루빨리 정밀한 모니터링을 해 보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쓰쿠바산을 연구 대상지로 정한 이유는. 
 

=1000년 이상 된 절과 신사가 있어 일본너도밤나무 숲 극상림이 보전돼 있다. 난대림의 북한계지로 국립공원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너도밤나무는 기후변화로 이미 취약해진 상태여서 상록수림에 밀려 산 정상 부근에 7023그루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모니터링을 하나. 
 

=자생지 404㏊ 안에 있는 키 2m가 넘는 일본너도밤나무에 패찰을 붙여 한 그루씩 관리한다. 또 1㏊ 크기의 시험구를 정해 가슴높이 지름 5㎝ 이상인 모든 개체를 정밀 조사한다. 동시에 314㎡ 넓이의 시험구 62곳을 정해 그 안의 모든 식물을 조사한다. 

 

9.jpg » 쓰쿠바산 최대의 일본너도밤나무. 지자체의 설명문에는 수령 800살, 지름 7m로 돼 있다.

 

-지금까지 조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나. 

 

=난대림이 점점 높은 곳으로 침입하고 있다. 전에 없이 겨울에도 푸릇푸릇한 산이 되고 있다. 상록수는 그늘에서도 잘 자라지만 너도밤나무는 그늘에서 싹을 틔우지 못한다. 일본너도밤나무 거목은 많지만 어린나무가 없다. 큰 너도밤나무가 쓰러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상록수가 돋아난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우선 정확한 실태를 알기 위해 정밀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동북아 공동 모니터링도 필요하다. 기후변화로 너도밤나무는 차츰 북상할 것이다. 이들이 이동할 회랑을 조성해 줘야 한다. 보호구역을 신설하거나 기존 보호구역에서 관리방법을 바꿔야 할 필요도 있다.
 
쓰쿠바/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 주목받는 풍혈

 

북방계 식물의 미니 피난처 

 

03210596_P_0.jpg » 한겨울에도 푸른 빛을 띄고 있는 홍천 풍혈의 월귤. 우리나라에는 설악산 고산지대과 이곳에만 자생지가 있다.

 

강원도 홍천군 방내리의 풍혈은 농가와 경작지 옆 야산에 자리 잡고 있다. 돌무더기가 애추(너덜)를 이룬 끝자락에 여름이면 찬 기운이 나오고 겨울엔 따뜻한 공기가 나온다. 주민들은 김칫독을 보관하는 등 나름대로 이곳을 이용해 왔지만 북극에 사는 식물이 터잡고 사는지는 몰랐다. 

 

북극이나 백두산 고산지대 등에 분포하는 월귤이 이곳 풍혈 주변 10㏊ 면적에 분포한다. 국내에선 설악산 정상 일대에 일부 있는 것이 전부이다. 홍천의 풍혈에선 이밖에 큰연영초, 도깨비부채, 개족도리풀 등의 희귀식물과, 고산 능선에서나 볼 수 있는 인가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높은 산에만 사는 희귀 고사리인 주저리고사리도 경남 밀양의 얼음골과 함께 이곳에 분포한다. 

 

이처럼 돌무더기, 동굴, 함몰지 형태의 독특한 지형에서 여름에는 주변보다 찬 공기가, 겨울에는 더운 공기가 나오는 곳을 풍혈(얼음골)이라 부른다. 주민의 휴식처와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풍혈이 기후변화 시대에 북방계 희귀식물의 피난처로서의 보전 가치가  주목되고 있다. 
 

국립수목원은 지난해 발간한 책 <한국의 풍혈>에서 “풍혈은 여름철 고온에 민감한 극지·고산식물 등 북방계 식물이 지구온난화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는 피난처 구실을 한다”며 이에 관한 연구와 보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홍천 월귤의 예처럼 빙하기 때 한반도에 널리 분포하는 북방계 식물이 앞으로 기온 상승 시기에 살아남는 길은 설악산 같은 고산지대로 가거나 여름에도 시원한 풍혈로 숨어드는 것뿐이다. 풍혈은 소규모 피난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뿐 아니라 앞으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더라도 고산식물이 살아남는 보존 기지 구실을 한다.

 

j7-3.jpg »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주목이 어린나무부터 고목까지 있는 가리왕산. 풍혈지대이다.  

 

최근 스키장 건설로 환경파괴 논란을 빚고 있는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에도 약 2만㎡에 걸친 풍혈이 존재하는 것으로 환경영향평가에서 밝혀졌다. 덕분에 여름에도 서늘하고 습한 미기후가 조성돼 가리왕산에는 내륙에서는 유일하게 주목이 어린나무부터 고목까지 세대별로 분포한다. 

 

공우석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 등 연구진은 2012년 <환경영향평가>에 실린 논문에서 각종 문헌과 자료에 비추어 전국에 69곳의 풍혈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에 따라 풍혈의 생태학적 가치가 점점 커지고 있지만 교란과 훼손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풍혈의 유지·관리를 위한 방안으로 연구진은 전체 풍혈에 대한 조사, 풍혈을 환경영향평가 항목으로 도입, 보전구역 설정 등 보전과 이용 정책 수립 등을 제안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공동기획=국립수목원

국립수목원-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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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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