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절벽 중간, 원형의 비경 ‘하늘 정원’
<3부> ⑦ 첫 일반공개 평창 백룡동굴
절반쯤 좁디 좁은 개구멍 빠져나오면 신천지
국내 최대 동굴커튼과 달걀부침 석순 독보적

백룡동굴은 동강이 숨긴 비경이다. 평창, 영월, 정선의 경계를 구불구불 휘돈 동강은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에서 높은 절벽과 넓은 백사장 사이로 흐른다. 강물 위 15m 지점, 배로만 닿을 수 있는 강변 절벽 중간에 백룡동굴의 들머리가 놓여 있다.
1976년 주민들이 ‘발견’하고 197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2000년 영월댐(동강댐) 건설이 백지화돼 수몰위기를 넘어선 뒤에도 일반인은 이 동굴에 접근할 수 없었다. 손때 묻지 않은 석회동굴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백룡동굴이 다음달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인공시설을 최소화하고 한정된 인원만을 받는 생태체험 방식으로 30여년 만에 공개되는 것이다.

30여 년만에 첫 공개…200여 년 전 피난처 흔적
지난 9일 시험탐사를 위해 찾은 백룡동굴로 가는 길은 ‘십리 안쪽에 찻길이 없다’던 1990년대 초의 ‘명성’과는 많이 달랐다. 오지였던 문희마을까지 도로가 포장됐고, 절벽을 가로질러 동굴까지 철제 데크가 설치됐다.

문희마을의 관리실에서 탐사복을 입고 안전모, 헤드램프, 장화를 갖췄다. 동굴엔 조명과 탐방로 등 인공시설이 거의 없기 때문에 탐험 수준의 준비가 필요하다. 데크에는 낙석피해를 막기 위한 덮개 공사가 한창이었다. 우상권(36) 동굴가이드는 “데크를 만드느라 자연을 일부 훼손했지만 봄이면 동강을 굽어보면서 절벽에 핀 동강할미꽃과 회양목 등 희귀식물을 관찰하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쥐가 드나들 수 있도록 창살이 듬성한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찬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백룡동굴의 기온은 연중 11~13도로 일정하다. 동굴 들머리에서 10m쯤 들어가자 박명 속에 온돌과 아궁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굴뚝의 흔적도 있다. 구들장 안쪽의 숯을 연대측정한 결과 서기 1800년께 것으로 나왔다. 적어도 조선 정조~순조 때부터 이 동굴은 누군가의 피난처였다.
다시 10m쯤 가자 호수로 이어지는 가지굴이 나타났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메기를 잡았다고 해 동강과 연결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동굴 앞쪽 바닥엔 펄이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어, 지난해 홍수의 영향이 여기까지 끼쳤음을 보여줬다. 백룡동굴은 이번에 개방되는 동-서 방향으로 785m 길이인 주굴과 3개의 가지굴 등 모두 1875m에 걸쳐 있다.

천장에는 작은 물방울이 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동굴에 종유석과 석순 등 동굴생성물이 여기저기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천장에는 작은 물방울이 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인다. 물은 석회암을 녹이는 동굴생성의 원동력이다. 박종일(44) 동굴가이드가 가리키는 동굴 벽을 자세히 보니 흰 애벌레가 거미줄을 쳐 변태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바닥의 웅덩이에선 하얀 아시아동굴옆새우가 램프불에 놀라 숨을 곳을 찾았다.
한국동굴연구소가 2006년 한 백룡동굴 종합학술조사에서는 56종의 동굴생물을 확인했다. 박쥐와 그 배설물에 기대 사는 김띠노래기, 장님굴가시톡토기, 엄지유령거미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도굴을 막기 위해 두 곳을 철창살로 막으면서 동굴 생태계의 유일한 영양원인 박쥐의 배설물이 줄어들었고 홍수 때 바닥이 부분적으로 침수돼 생물상이 단조로운 편이다.
주 동굴의 절반쯤 들어가면 ‘개구멍’이 나온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크기의 이 구멍을 넘어서면 훼손되지 않은 동굴생성물이 천상의 화원을 이룬다. 1976년 주민 정무룡씨 형제와 우재성씨는 이 구멍을 통해 찬바람이 나오고 소리가 울리는 데 착안해 구멍을 넓힌 뒤 신천지를 발견했다. ‘백룡동굴’이란 이름도 동굴이 위치한 백운산의 ‘백’과 정씨 형제의 돌림자인 ‘룡’을 딴 것이다.
실제로 ‘개구멍’ 에 이르기까지 잘라내 운반하다 내버린 석주나 도굴꾼이 종유석을 잘라낼 때 밝힌 횃불의 그을음, 한자 낙서 등 오랜 훼손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끄트머리 대광장 벽면엔 온갖 동굴생성물 뒤덮어
그러나 이 병목구간을 넘어서면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깨끗한 상태로 보존돼 있다. 바닥을 기거나 몸을 낮춰 겨우 통과하면 탁 트인 공간이 형형색색의 동굴생성물로 탐방객을 맞았다.
석회암이 돌고드름처럼 달린 종유석과 바닥에서 위로 자라 오르는 석순, 이 둘이 만나 이룬 석주는 얼어붙은 폭포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이들은 적어도 수십만년 동안 석회석과 지하수, 이산화탄소가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백룡동굴엔 이밖에 다랑논 형태의 휴석, 유석, 동굴진주, 동굴커튼, 베이컨시트, 곡석, 석화, 동굴산호, 동굴방패 등 다채로운 동굴생성물이 분포한다. 특히 국내 최대 규모인 약 11m 길이의 동굴커튼과 달걀부침을 빼닮은 에그후라이형 석순은 독보적이다.

주 동굴의 끄트머리인 대광장은 이 동굴탐사 여정의 하이라이트였다. 천장이 무너져 형성된 넓은 광장 벽면이 온통 갖가지 동굴생성물로 뒤덮여 있다. 동굴가이드의 요청으로 헤드램프를 끄자 완벽한 암흑이 펼쳐졌다.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고요를 깼다. 동굴의 유일한 인공조명이 켜지면서 벽면을 은은하게 비췄다.
이광춘 상지대 명예교수(지질학)는 “어둠의 세계인 동굴에 가로등 수준의 조명을 하고 무제한 탐방객을 받아온 동굴관광의 관행을 깨고 한정된 체험형 개방을 한 것은 의미가 크다”며 “개방의 영향을 철저히 모니터링해 훼손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평창/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동굴 나이가 5억살?
단양 고씨동굴 등 우리나라의 석회암 동굴을 소개할 때는 ‘5억년의 신비’ 라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5억년 전에 생긴 것은 석회암이지 동굴은 아니라고 말한다. 집을 지은 돌의 연대를 가지고 그 집의 나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학계에서는 백룡동굴이 생긴 석회암층이 고생대 초 캠브리아기에서 오르도비스기 사이 조간대 상부에 퇴적된 해양생물의 잔해로 형성됐다고 본다. 암석의 연대는 4억~5억년 전이 된다.
그렇다면 백룡동굴은 언제 생겼을까. 석회암은 약한 산성을 띠는 지하수에 잘 녹는다. 지하수면 근처의 석회암층이 계속 녹으면서 동굴이 형성된다. 지하수위가 낮아지면 동굴의 형성이 멈추고 동굴 밑에서 새로운 동굴이 탄생을 준비한다.
석순 등 동굴생성물을 분석하면 생성연도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동굴 자체가 언제 생겼는지를 아는 것은 극히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련 한국동굴연구소 박사는 “약 1억년 전에 한반도가 조산운동으로 융기하면서 석회암층이 지상에 노출됐다고 본다면 동굴이 형성된 것은 수천만~수백만년 전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석회암 동굴이 형성된 뒤 만들어진 석순 등 동굴생성물은 수십만~수천년의 나이를 지닌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조홍섭 기자
절반쯤 좁디 좁은 개구멍 빠져나오면 신천지
국내 최대 동굴커튼과 달걀부침 석순 독보적

백룡동굴은 동강이 숨긴 비경이다. 평창, 영월, 정선의 경계를 구불구불 휘돈 동강은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에서 높은 절벽과 넓은 백사장 사이로 흐른다. 강물 위 15m 지점, 배로만 닿을 수 있는 강변 절벽 중간에 백룡동굴의 들머리가 놓여 있다.
1976년 주민들이 ‘발견’하고 197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후 2000년 영월댐(동강댐) 건설이 백지화돼 수몰위기를 넘어선 뒤에도 일반인은 이 동굴에 접근할 수 없었다. 손때 묻지 않은 석회동굴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백룡동굴이 다음달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인공시설을 최소화하고 한정된 인원만을 받는 생태체험 방식으로 30여년 만에 공개되는 것이다.

30여 년만에 첫 공개…200여 년 전 피난처 흔적
지난 9일 시험탐사를 위해 찾은 백룡동굴로 가는 길은 ‘십리 안쪽에 찻길이 없다’던 1990년대 초의 ‘명성’과는 많이 달랐다. 오지였던 문희마을까지 도로가 포장됐고, 절벽을 가로질러 동굴까지 철제 데크가 설치됐다.

문희마을의 관리실에서 탐사복을 입고 안전모, 헤드램프, 장화를 갖췄다. 동굴엔 조명과 탐방로 등 인공시설이 거의 없기 때문에 탐험 수준의 준비가 필요하다. 데크에는 낙석피해를 막기 위한 덮개 공사가 한창이었다. 우상권(36) 동굴가이드는 “데크를 만드느라 자연을 일부 훼손했지만 봄이면 동강을 굽어보면서 절벽에 핀 동강할미꽃과 회양목 등 희귀식물을 관찰하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쥐가 드나들 수 있도록 창살이 듬성한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찬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백룡동굴의 기온은 연중 11~13도로 일정하다. 동굴 들머리에서 10m쯤 들어가자 박명 속에 온돌과 아궁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굴뚝의 흔적도 있다. 구들장 안쪽의 숯을 연대측정한 결과 서기 1800년께 것으로 나왔다. 적어도 조선 정조~순조 때부터 이 동굴은 누군가의 피난처였다.
다시 10m쯤 가자 호수로 이어지는 가지굴이 나타났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메기를 잡았다고 해 동강과 연결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동굴 앞쪽 바닥엔 펄이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어, 지난해 홍수의 영향이 여기까지 끼쳤음을 보여줬다. 백룡동굴은 이번에 개방되는 동-서 방향으로 785m 길이인 주굴과 3개의 가지굴 등 모두 1875m에 걸쳐 있다.



천장에는 작은 물방울이 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동굴에 종유석과 석순 등 동굴생성물이 여기저기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천장에는 작은 물방울이 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인다. 물은 석회암을 녹이는 동굴생성의 원동력이다. 박종일(44) 동굴가이드가 가리키는 동굴 벽을 자세히 보니 흰 애벌레가 거미줄을 쳐 변태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바닥의 웅덩이에선 하얀 아시아동굴옆새우가 램프불에 놀라 숨을 곳을 찾았다.
한국동굴연구소가 2006년 한 백룡동굴 종합학술조사에서는 56종의 동굴생물을 확인했다. 박쥐와 그 배설물에 기대 사는 김띠노래기, 장님굴가시톡토기, 엄지유령거미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도굴을 막기 위해 두 곳을 철창살로 막으면서 동굴 생태계의 유일한 영양원인 박쥐의 배설물이 줄어들었고 홍수 때 바닥이 부분적으로 침수돼 생물상이 단조로운 편이다.
주 동굴의 절반쯤 들어가면 ‘개구멍’이 나온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크기의 이 구멍을 넘어서면 훼손되지 않은 동굴생성물이 천상의 화원을 이룬다. 1976년 주민 정무룡씨 형제와 우재성씨는 이 구멍을 통해 찬바람이 나오고 소리가 울리는 데 착안해 구멍을 넓힌 뒤 신천지를 발견했다. ‘백룡동굴’이란 이름도 동굴이 위치한 백운산의 ‘백’과 정씨 형제의 돌림자인 ‘룡’을 딴 것이다.
실제로 ‘개구멍’ 에 이르기까지 잘라내 운반하다 내버린 석주나 도굴꾼이 종유석을 잘라낼 때 밝힌 횃불의 그을음, 한자 낙서 등 오랜 훼손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끄트머리 대광장 벽면엔 온갖 동굴생성물 뒤덮어
그러나 이 병목구간을 넘어서면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깨끗한 상태로 보존돼 있다. 바닥을 기거나 몸을 낮춰 겨우 통과하면 탁 트인 공간이 형형색색의 동굴생성물로 탐방객을 맞았다.
석회암이 돌고드름처럼 달린 종유석과 바닥에서 위로 자라 오르는 석순, 이 둘이 만나 이룬 석주는 얼어붙은 폭포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이들은 적어도 수십만년 동안 석회석과 지하수, 이산화탄소가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백룡동굴엔 이밖에 다랑논 형태의 휴석, 유석, 동굴진주, 동굴커튼, 베이컨시트, 곡석, 석화, 동굴산호, 동굴방패 등 다채로운 동굴생성물이 분포한다. 특히 국내 최대 규모인 약 11m 길이의 동굴커튼과 달걀부침을 빼닮은 에그후라이형 석순은 독보적이다.

주 동굴의 끄트머리인 대광장은 이 동굴탐사 여정의 하이라이트였다. 천장이 무너져 형성된 넓은 광장 벽면이 온통 갖가지 동굴생성물로 뒤덮여 있다. 동굴가이드의 요청으로 헤드램프를 끄자 완벽한 암흑이 펼쳐졌다. 종유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고요를 깼다. 동굴의 유일한 인공조명이 켜지면서 벽면을 은은하게 비췄다.
이광춘 상지대 명예교수(지질학)는 “어둠의 세계인 동굴에 가로등 수준의 조명을 하고 무제한 탐방객을 받아온 동굴관광의 관행을 깨고 한정된 체험형 개방을 한 것은 의미가 크다”며 “개방의 영향을 철저히 모니터링해 훼손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평창/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동굴 나이가 5억살?

학계에서는 백룡동굴이 생긴 석회암층이 고생대 초 캠브리아기에서 오르도비스기 사이 조간대 상부에 퇴적된 해양생물의 잔해로 형성됐다고 본다. 암석의 연대는 4억~5억년 전이 된다.
그렇다면 백룡동굴은 언제 생겼을까. 석회암은 약한 산성을 띠는 지하수에 잘 녹는다. 지하수면 근처의 석회암층이 계속 녹으면서 동굴이 형성된다. 지하수위가 낮아지면 동굴의 형성이 멈추고 동굴 밑에서 새로운 동굴이 탄생을 준비한다.
석순 등 동굴생성물을 분석하면 생성연도를 알 수 있다. 하지만 동굴 자체가 언제 생겼는지를 아는 것은 극히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련 한국동굴연구소 박사는 “약 1억년 전에 한반도가 조산운동으로 융기하면서 석회암층이 지상에 노출됐다고 본다면 동굴이 형성된 것은 수천만~수백만년 전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석회암 동굴이 형성된 뒤 만들어진 석순 등 동굴생성물은 수십만~수천년의 나이를 지닌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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