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식물진화 표본인 울릉식물 파수꾼

조홍섭 2010. 07. 16
조회수 18736 추천수 0
<5>포항 덕성 기청산 식물원
현지 자생지엔 달랑 3개인 섬개야광나무 빽빽
‘섬…’ 희귀종들 조사하고 증식과 복원 매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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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는 화산폭발로 대양에서 솟아오른 섬이다. 한 번도 육지와 연결된 적이 없는 만큼 고유한 식물이 많이 산다. 세계에서 울릉도에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 40여 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는 섬개야광나무, 섬시호, 섬현삼, 섬나무딸기, 섬노루귀, 섬바디 등 ‘섬’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갖는 것이 많다.
 
최근 연구 결과 울릉도에 터잡은 식물은 육지 것에 비해 털이나 가시가 없어지고 꽃이나 잎이 커지는 등 형태가 바뀌는 독특한 종 분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울릉도는 세계 과학계가 주목하는 식물진화의 현장인 것이다.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덕성리에 위치한 기청산 식물원은 이런 울릉도 특산의 희귀식물을 조사하고 증식시키며 유전자원을 지키는 보루 구실을 하고 있다.
 
 
저온과 고온처리로 이중휴면 깨워 이태 만에 싹 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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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찾은 기청산 수목원의 울릉식물 관찰원에는 섬개야광나무가 푸른 열매와 일부 늦게 핀 흰 꽃을 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희귀한 멸종위기종 1급 식물 8종 가운데 하나인 이 나무가 생울타리처럼 빽빽하게 심겨져 있다. 이 식물원 강기호 박사(한국생태조경연구소장)는 “예쁘지도 약으로 쓰지도 못해 별 관심을 못 끌지만 울릉도에 가도 보기 힘든 식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울릉도 도동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섬개야광나무의 자생지에는 절벽에 겨우 3개체만이 남아있다. 이 식물은 햇빛을 가릴 다른 식물이 자라기 힘든 가파른 절벽이나 너덜지대에만 자란다. 다해야 100개체가 안 된다고 학계에 알려졌지만 이 식물원이 2008년 조사에서 모두 744개체를 확인했고 증식과 복원 사업을 착착 벌이고 있다. 섬개야광나무의 빨간 열매는 새를 유혹해, 절벽에 새의 배설물과 함께 씨앗을 퍼뜨린다. 이 식물원은 좀처럼 싹이 나지 않는 씨앗을 새의 뱃속에서처럼 껍질을 벗겨낸 뒤, 저온과 고온처리로 이중휴면을 깨워 심은 지 이태 만에 싹을 틔우는데 성공했다.
 
섬시호는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가 1917년 울릉도에서 발견한 뒤 1967년 이후 자취를 감춰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2000년 국립수목원 조사팀이 재발견한 희귀식물이다. 기청산 식물원은 울릉도 전역을 조사해 적지않은 새로운 자생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해안 일주도로를 따라 분포하는데다 왕호장근 등 억센 경쟁식물에 밀려 감소추세에 있다. 개화기를 맞은 섬시호는 우산살처럼 펼친 꽃대에 앙증맞은 노란 꽃을 매달고 있었다. 강 박사는 “상록인데다 잎과 꽃이 고와 관상용으로 개발할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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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선 없던 가시가 육지로 옮겨와 키워보니 생겨나

 
멸종위기종 2급으로 울릉도에 4천여 개체밖에 없는 섬현삼은 해안가 자갈 틈이나 도로변에 자생해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울릉도의 숙원사업인 일주도로 확장공사가 벌어지는 북면 일대가 주 자생지이다. 울릉군이 북면 섬목 지역에 기껏 복원한 섬현삼 자생지를 이듬해 태풍피해 복구공사를 하면서 같은 지자체가 모조리 묻어버리는 일도 벌어졌다.
 
울릉도는 살아있는 진화의 실험장이다. 박재홍 경북대 생물학과 교수는 “갈라파고스의 외딴 섬들에서는 하나의 계통이 둘 이상으로 나뉘는 종 분화가 일어났지만 울릉도에서는 종의 형태적 변화가 일어나는 향상진화가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섬나무딸기는 대표적 예이다. 육지의 나무딸기에 견줘 가시가 없어지고 꽃과 잎이 커지는 변화가 일어났다. 가시가 없어진 건 노루 등 포식동물이 없는 울릉도에 적응한 것이다. 그런데 고라니 가족이 살고 있는 기청산 식물원의 섬나무딸기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05년 울릉도에서 가져왔을 땐 없던 가시가 잎맥 뒤에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빨리 고라니에 적응한 걸까.
 
강 박사는 “울릉도를 앞으로 20~30년 동안 먹여살리려면 단순한 관광자원만으론 안 되고 독특한 식물자원에 눈을 돌려야 한다”며 “식물복원을 해준다 해도 귀찮아하는 행정당국의 마음가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이야기가 있는 박물관식 식물원
 
img_05.jpg“지금은 대만에서나 볼 수 있는 풍나무입니다. 향기가 좋고 각성효과도 있어 방향제로 개발할 만하죠. 그런데 이 나무는 60만년 전 포항에 살았던 증거가 화석으로 나옵니다.”

기청산 식물원 들머리엔 “이곳은 공원식 식물원이 아닌 박물관식 식물원”이란 팻말이 붙어있다. 눈요기만 하고 가지 말고 느끼고 배우라는 뜻이다. 실제로 식물원 곳곳엔 식물의 생태와 문화, 역사를 배울 장치를 배려해 놓았다.
 
쓰러진 아까시나무 옆엔 ‘이건 꼭 읽고 가이소’란 안내판이 붙어있다. 원래 아카시아는 호주나 이스라엘에 사는 상록활엽수인데, 이 식물의 학명은 ‘가짜 아카시아’란 뜻이니 ‘개아카시아’로 옮겨야 옳았지만 실수하는 바람에 ‘아까시나무’로 타협하게 됐다는 것이다. 미스킴라일락 옆에는 미더란 미국인이 북한산 바위 옆에서 채집한 털개회나무를 미국에 가져가 서양 라일락과 교배해 만든 원예종인데 자신의 한국인 타자수 성을 따 이름을 붙였고, 꽃 색깔이 다양하고  향기가 진해 1970년대부터 우리가 많이 수입한다는 설명이 달려 있다.
 
상수리· 굴참·졸참·신갈·갈참·떡갈나무 등 6가지 흔한 참나무는 한 자리에 심어 서로 비교해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연못에는 수련의 ‘수’는 물 수(水)가 아니라 잠잘 수(睡)여서 아침 9시에 핀 꽃을 오후 3시에는 닫는 잠꾸러기란 설명과 천남성과인 창포와 붓꽃과인 꽃창포는 비슷해 보여도 거리가 먼 식물이란 안내도 눈길을 끌었다.
 
이 식물원은 1965년 이삼우 원장이 과수원과 농원으로 시작해 지난 20여년 동안 식물원으로 본격 개발했다. 따라서 9㏊에 이르는 식물원엔 언덕이 없어 휠체어를 타고 전 구간의 관람이 가능하다.
 
자생식물을 위주로 2100여 종의 식물이 있고 80여 종의 새들이 찾아든다. 취재 도중에도 호반새, 꾀꼬리, 큰오색딱따구리의 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라니도 3마리가 사는데 희귀식물을 마구 먹어치우는 골칫거리이다. 꽹과리, 경찰봉, 나프탈렌, 시디 매달기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도 내쫓지 못해 결국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풀로 풀(잡초)을 막고 토착미생물로 토질을 살리며, 낙엽으로 멀칭을 하는 것도 모두 자연주의적 관리법이다.
 
이삼우 원장은 “기청산 식물원은 식물 문화, 생태, 철학을 추구하는 식물원”이라며 “그렇지만 사립식물원으로서 운영을 위해 관람객을 많이 유치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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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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