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물원 맏형으로 멸종위기종 천국

조홍섭 2010. 09. 08
조회수 18854 추천수 0
[한국의 식물원] <7> 한택식물원
번식 까다로운 나도승마 인공 증식에 성공
호주바오밥나무도 바다 건너와 ‘보험’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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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다면 요즘 전남 광양 백운산 골짜기에서 크고 기품있는 노란 꽃을 매단 나도승마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야생에 500여 개체밖에 없을 정도로 희귀한 식물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1종씩
 
지난달 27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한택식물원에는 빗줄기 속에서 나도승마가 마지막 개화를 하고 있었다. 나도승마는 자생지가 10곳이 안 되는데다 생육조건과 번식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1종씩 있을 뿐인 희귀식물이다.

한택식물원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나도승마를 2천 개체 이상으로 증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식물원 강정화 이사는 “씨앗을 뿌려도 싹이 나지 않는 일이 계속돼 애를 태웠다”며 “결국 종자를 받아 말리지 않은 채 곧바로 심었더니 발아에 성공했다”고 비결을 밝혔다.

나도승마는 학술적 가치뿐 아니라 꽃과 키가 크면서도 줄기가 튼튼해 잘 쓰러지지 않는 등 원예종으로 개발할 잠재력도 높다. 그러나 자생지에선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형편이다. 강 이사는 “반그늘에 서늘하며 어느 정도 습기가 있는 환경에서만 살 수 있는데, 분포지가 숲이 너무 우거져 빛을 가리는데다 훼손에 취약한 등산로와 하천 주변이어서 자연적으로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공증식 성공으로, 큰 홍수로 백운산 계곡의 자생지가 모두 쓸려가는 사태가 나더라도 나도승마의 멸종을 막는 안전판이 마련된 셈이다. 지난해에는 백운산에서 1986년 채집한 나도승마를 종자번식한 2년생 모종 500포기를 전남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백운산자연휴양림에 복원하기도 했다.
 

남아프리카 온실도 국내 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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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식물원 가운데 국내에서 맏형 뻘인 한택식물원은 일찍부터 멸종위기식물을 증식해 자생지에 복원하는 사업을 펼쳐왔다. 2003년 주왕산에 둥근잎꿩의비름을 복원한 것을 시작으로, 깽깽이풀, 노랑무늬붓꽃, 대청부채, 히어리, 미선나무 등을 자생지에 심어 관리하고 있다.
 
외국의 희귀식물도 멸종에 대비해 이곳에 ‘보험’을 들어놓았다. 국내에서 유일한 호주수목원에는 모습이 독특한 호주바오밥나무가 있다. 한때 호주와 아프리카 대륙과 연결됐던 증거이다.
 
바오밥나무 건너편에 철제 울타리로 보호받고 있는 나무가 유명한 울레미소나무이다. 공룡시대인 2억 년 전 화석으로만 남아 있던 이 식물은 1994년 시드니 올레미아 국립공원에서 100여 그루가 발견돼 큰 화제가 됐다. 공원 당국은 자생지 파괴에 대비해 전 세계 식물원에 울레미소나무를 분양했다. 자생지에는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 있다.

역시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남아프리카 온실에서도 해외 반출이 규제되는 나무알로에가 기후변화 등 자생지 급변에 대비해 재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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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이택주 한택식물원 원장
우리 식물과 종자 찾아 전국 산과 들 샅샅이
1만여 가지 식물 무농약으로 키워 생태조경

 
 
img_03.jpg자생식물이란 개념조차 없던 1979년 식물원 조성을 시작한 이택주 한택식물원 원장(70)은 우리 식물과 종자를 찾느라 안 가본 산과 들이 없을 정도로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
 
강원도 평창의 고원 초지대에서 뗏장을 하나 떼어왔더니 거기서 복수초, 일월비비추 등 무려 20종의 자생식물이 돋아났다. 일월비비추는 세계에 2만 종이 개발될 정도로 인기 있는 원예종인데, 그 원종은 한국과 중국밖에 없다. 그런데 식물원에서 신품종 비비추를 개발했지만 원종이 살던 자생지가 이미 사라져 발표를 포기한 적이 있다.
 

생물끼리 균형 이뤄 큰 병충해 없어
 
한택식물원이 국내에서 처음 ‘생태조경’을 표방한 데는 이런 경험이 깔려 있다. 생태조경이란 여러 식물이 어울려 자연과 비슷한 모습을 간직하도록 식물을 배치하는 기법이다.
실제로 이 식물원에선 한 장소에서 복수초, 모란, 작약, 나리 등 4~5가지 식물이 차례로 이어가며 꽃을 피운다. 농약을 전혀 치지 않고 토양의 자생력을 키워 병충해를 막는다는 원칙도 유지하고 있다. 습기와 햇빛을 세밀하게 고려해 지형에 맞는 식물을 심는 것도 요령이다.

이 원장은 “한 가지 식물을 많이 심으면 보기엔 좋아도 건강하지는 않다”며 “1만 가지가 넘는 식물이 있는 한택식물원에선 생물끼리 스스로 균형을 이뤄 큰 병충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식물원도 마찬가지지만, 생태조경을 하려면 손이 많이 간다. 취재진을 안내하던 강정화 이사는 설명하는 짬짬이 잡초를 뽑았다. 10평짜리 텃밭의 잡초를 관리해본 이라면 1만 종이 심어진 20만평 넓이의 식물원에서 농약 없이 벌이는 잡초와의 전쟁이 어떨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일꾼들에게 교육을 하지만 종종 희귀종만 뽑아내는 ‘대형 사고’를 치곤 한다.

씨앗을 받는 일도 몹시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특산종인 히어리의 종자는 익을 때까지 내버려두면 꼬투리가 터져 모두 흩어지고 만다. 깽깽이풀의 씨앗에는 지방 덩이가 달려 있어 다른 바쁜 일로 한눈을 팔다 보면 개미가 모두 가져가 버린다.
 

연간 식물 구입비만 1억여 원
 
물 주는 일도 쉽지 않다. ‘물 주기 3년’이란 말이 있지만, 물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종이 제각각인 희귀식물을 다루려면 5년 경력도 충분치 않다. 한택식물원에선 온실 종묘의 물 주기를 용역직원이 아닌 번식과 직원이 일일이 손으로 하고 있다.

강정화 이사는 “식물을 재배하는 것은 아기 키우는 것 같아서 끝없이 손이 간다”고 말했다.
당연히 식물원 관리에는 인건비가 많이 든다. 게다가 식물원을 유지하려면, 마치 도서관이 신간도서를 구입하듯이 신품종 식물을 사들여야 한다. 한택식물원의 연간 식물 구입비는 1억 원에 이른다.

멸종위기종의 서식지 외 보존기관과 환경교육 등 공공 기능을 하는데도 민간 식물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미미한 형편이다. 탐방객의 입장료 수입으로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간 10만 명이 찾는 한택식물원 이택주 원장은 “땅값을 빼고 한택식물원에 지금까지 120억 원을 투입했지만 아직 직원 월급도 제대로 못 준다”며 “외국처럼 식물원의 공적 기능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 이 기획은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사업단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마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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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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