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유전자 밝혀졌다

조홍섭 2011. 09.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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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나방 애벌레 나무꼭대기로 이끌어 '바이러스 폭탄' 뿌리게 해

미국 연구자 <사이언스>에 논문, 도킨스 주장한 '확장된 표현형' 첫 실험 증거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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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나방 애벌레. 산림해충으로 유명하다. 출처=위키미디어 커먼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곰팡이 가운데는 숙주를 '좀비'로 만들어 더 많은 기생생물을 퍼뜨리도록 유도하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어떤 곰팡이에 감염된 개미는 그 곰팡이의 포자를 확산시키기에 적합한 나뭇잎 끝에 가서 죽도록 만든다. 톡소플라즈마는 고양이에게 잘 감염되는 기생충인데, 이 기생충에 감염된 쥐는 돌연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돼 쉽사리 잡아먹혀 고양이 감염을 촉진한다.


이런 좀비화 현상이 널리 관찰돼 왔지만 그 메카니즘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었다. 켈리 후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박사 등 연구진은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7일치에 실린 논문을 통해 그 비밀을 밝혔다.


연구진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산림해충인 집시나방 애벌레의 독특한 행동에 주목했다. 평소 조심스러워 낮에는 숲 바닥이나 나뭇가지 틈에 숨어지내다 밤에만 먹이를 먹으러 나오는 이 애벌레가 바큘로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나무 위에 머물며 땅으로 내려가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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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에 이끌려 나무 꼭대기에서 죽어 엉겨붙은 애벌레. 출처=<사이언스> 


감염된 바이러스가 증식을 계속해 애벌레를 쓰러뜨리기 하루쯤 전 애벌레는 황급히 나무 꼭대기로 향한다. 거기서 애벌레가 죽으면 바이러스는 효소를 분비해 애벌레를 녹여 버린다. 나무에 엉겨붙은 애벌레 주검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바이러스 폭탄'이 돼 숲 바닥에 떨어져 다른 많은 집시나방 애벌레를 감염시킨다.


연구진은 이런 행동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egt 유전자임을 밝혀냈다. 이 유전자는 곤충의 탈피를 일으키는 호르몬 작용을 억제하는 효소를 만드는 데 관여한다. 곤충은 탈피할 때 숨어서 먹이도 먹지 않는데, 이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이끄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이 유전자를 제거한 집시나방 애벌레는 바큘로바이러스에 감염돼도 꼭대기로 오르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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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나방.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적인 산림해충이다.


이번 연구는 숙주를 좀비로 만드는 기생 행동의 유전적 메카니즘을 밝혔다는 의미를 갖는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이 연구 결과는 확장된 표현형의 증거를 제시했다"고 밝혔다. '확장된 표현형'이란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유전자가 한 개체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특정한 형태나 행동(즉 표현형)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유전자 복제라는 목적을 위해 다른 종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 행동을 원격 조정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산림해충인 집시나방을 방제하는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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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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