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 바람기와 수컷 고환의 ‘군비경쟁’

조홍섭 2014. 11. 14
조회수 50425 추천수 0

  수컷의 새끼 살해에 암컷 여러 수컷 교미로 맞대응
  수컷끼리 정자 경쟁을 촉발 시켜 큰 고환으로 진화

 

Cornelia Kraus.jpg » 유아살해에 대항해 암컷이 바람기 전략을 펴면 수컷 사이에 정자전쟁이 불가피하다.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는 쥐여우원숭이의 거대 고환은 이렇게 생겼다. 사진=코넬리아 크라우스, 케임브리지 대학.

 

사자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가장 불편한 장면은 새로운 우두머리가 돼 무리에 들어온 수컷이 암컷의 저항을 뚫고 새끼 사자를 죽이는 모습일 것이다.

 

그래야 암컷이 다시 임신할 수 있게 되고, 수컷은 기껏 2년 정도인 지배 기간 동안 최대한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수 있다. 새끼 사자 네 마리 중 한 마리는 이렇게 죽는다.
 

그러나 유아살해는 사자만의 일은 아니다. 원숭이, 토끼, 다람쥐, 곰, 물개, 담비 등 포유류에 널리 퍼진 행동이고, 여러 차례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우연하거나 특별한 행동이 아니란 뜻이다.
 

wa1.jpg » 새끼를 죽이려는 수컷 개코원숭이에 암컷이 저항하고 있다. 사진=엘리스 허처드

 

wa2.jpg » 수컷이 죽인 새끼 개코원숭이를 암컷이 옮기고 있다. 사진=앨리스 바니엘  

 

포유류의 유아살해를 포괄적으로 조사해 ‘암컷과 수컷 사이의 진화적 군비경쟁’으로 설명한 연구가 나왔다. 디에터 루카스 영국 켐브리지대 박사후 연구원 등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14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이런 사실을 밝혔다.
 

유아살해를 하는 119종을 포함한 260종의 포유류를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에서 유아살해는 주로 사회성 동물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외톨이 생활을 하거나 일부일처 생활을 하는 포유류에서는 드물었다.
 

적은 수의 수컷이 많은 암컷을 독점해 번식하는 사회성 동물에서는 수컷끼리 경쟁이 심하다. 그런 곳에서 수컷은 번식 기회를 늘리기 위해 다른 수컷의 새끼를 죽이고 그 새끼의 어미를 임신시켜 자신의 새끼를 낳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유아살해를 하는 집단에서 수컷의 지배는 평균 2차례 번식을 하는 기간으로 그렇지 않은 집단의 4번에 견줘 매우 짧았다.
 

wa3.jpg »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는 쥐여우원숭이. 유아살해로 인해 수컷의 고환이 비대해졌다. 사진=엘리스 허처드

 

수컷의 유아살해에 대한 암컷의 대응책은 뭘까. 기존 가설은 암컷끼리 뭉치거나 기존 수컷과 힘을 합쳐 침입 수컷을 막아내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는 달랐다. 암컷은 여러 수컷과 교미해 부성을 희석시키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수컷은 자기 자손일지도 모르는 새끼를 죽이는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암컷의 ‘바람기’ 전략은 수컷 사이의 정자 경쟁을 촉발했고, 이는 고환이 큰 수컷이 번식에 유리한 자연선택을 이끌었다. 연구진이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유아살해가 진화한 지 오랜 동물일수록 고환의 크기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고환이 어느 정도 커지면 유아살해도 사라졌다. 암컷의 바람기 전략이 수컷의 번식 독점을 저지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암컷과 수컷 사이의 전쟁은 현재 진행중이다. 유아살해는 암컷과 수컷 사이의 진화적 군비경쟁 과정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행동이다”라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D. Lukas and E. Huchard, “The evolution of infanticide by males in mammalian societies,” Science, 14 November 2014 . Vol 346 Issue 6211, http://www.sciencemag.org/lookup/doi/10.1126/science.125722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말꼬리 가짜 뿔로 코뿔소 밀렵 막을까말꼬리 가짜 뿔로 코뿔소 밀렵 막을까

    조홍섭 | 2019. 11. 20

    외형, 느낌, 속성 놀랍게 비슷…“진품 수요 더 늘려” 비판도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코뿔소의 밀렵을 막을 수 있을 만큼 진짜와 속속들이 똑같은 가짜 코뿔소 뿔을 말총으로 만드는 기술이 개발됐다. 말꼬리 털로 진짜 코뿔소 뿔과 구분하기 힘든...

  • 핵무기 벙커 속 개미떼는 어떻게 살아남았나핵무기 벙커 속 개미떼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조홍섭 | 2019. 11. 19

    고립된 벙커 100만 마리 일개미 집단…동료의 주검이 유일한 먹이캄캄하고 추운 데다 먹이가 전혀 없는 콘크리트 방에 100만 마리의 일개미가 고립됐다. 그곳에서 개미들이 여러 해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동료의 사체 덕분이었다.폴란드 ...

  • 겨울잠 자던 박쥐가 깨는 이유, 목말라서겨울잠 자던 박쥐가 깨는 이유, 목말라서

    조홍섭 | 2019. 11. 15

    관박쥐 15일마다 깨 이동, 붉은박쥐는 털에 응결한 물방울 핥아날씨가 추워지고 먹이가 사라지면 일부 동물은 겨울잠으로 힘든 시기를 넘긴다. 가을 동안 비축한 지방이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이 문제...

  • 앵무새는 왜 먹이를 낭비할까앵무새는 왜 먹이를 낭비할까

    조홍섭 | 2019. 11. 14

    나무 밑에 버린 열매·씨앗이 86종 먹여 살려…‘솎아내기’일 수도 ‘자연에 낭비란 없다’고 흔히 말한다. 한 생물의 배설물까지 다른 생물의 유용한 자원이 된다. 그러나 앵무새를 보고도 이런 격언이 맞는다고 느낄까.앵무새는 야생이든 집에...

  • 쥐와 꿀벌 이어 꽃게도 미로학습 통과쥐와 꿀벌 이어 꽃게도 미로학습 통과

    조홍섭 | 2019. 11. 13

    갈림길 5곳 복잡한 미로 통과…2주 뒤에도 기억 유지미로학습에 나선 생쥐는 여러 갈래 길에서 막다른 골목을 피해 목표에 도달하는데, 반복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인다. 척추동물뿐 아니라 꿀벌과 개미 등 곤충도 이런 공간학습 능력을 보인다.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