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이 물에 잠겨 한뎃잠 잔 간월도 흑두루미

김진수 2014. 1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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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민 요구로 간월호 수위 높여 천혜의 잠자리 침수, 환경단체 항의로 20여일 만에 복구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 이동 흑두루미가 천수만·순천만 이동경로 몰려, 여건은 악화 일로

 

흑두루미-1-1-착지.jpg » 간월호 모래섬은 흑두루미와 겨울 철새의 안전한 잠자리다. 날이 어두워지면 흑두루미들이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간월호 모래섬으로 날아든다.

  
지난달 27일 충남 서산 천수만, 해가 지자 간월호로 날아온 흑두루미(천연기념물 제228호)들이 한 마리씩 차례로 모래섬에 내려앉기 시작한다. 낮 시간 동안 천수만 주변 논에서 먹이를 찾거나 쉬다가 주위가 어두워지자 잠자리를 찾아 이곳 모래섬으로 날아든 것이다. 흑두루미들은 지난 10월22일 처음 이곳으로 날아왔지만 20여 일 동안이나 ‘한뎃잠’을 잤다.
 
그동안 천수만을 찾은 흑두루미가 잠을 자던 곳은 간월호 한가운데 있는 모래섬이었다. 이곳은 너구리나 삵 같은 천적의 접근이 어렵고, 주위가 넓게 트여 있어 하늘에서 날아오는 천적의 움직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먹이를 먹을 때도 무리 중 한두 마리는 반드시 보초처럼 머리를 들어 주변을 경계할 정도로 조심성이 많은 흑두루미이다. 이곳은 이들이 안심하고 밤을 보낼 수 있는 안전한 곳이었다.
 
하지만, 먼길을 거쳐 이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 이 모래섬은 물에 깊이 잠겨 있었다. 간월호 수위가 높아져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흑두루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20여 일을 논 한가운데서 편치 않은 잠을 잤다.
 

흑두루미2-착지.jpg » 잠자리에 내려앉는 흑두루미 뒤로 고기잡이 배가 보인다. 현대건설이 농경지를 일반인에게 분양한 뒤로는 간월호 어로활동도 많아졌다.


간월호의 물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천수만 주변 바다 자원 보호와 어민들의 고기잡이를 위해 물을 가둬 수위를 높였던 것이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의 항의로 담수호 물을 빼 수위를 낮추고서야 흑두루미의 잠자리인 모래섬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꼭 이번 잠자리 소동만이 아니라도 천수만은 이미 두루미와 겨울 철새들에 월동지로서의 매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지역 활동가들은 2009년부터 매년 흑두루미를 위해 많은 양의 먹이를 주고 있다. 월동하는 흑두루미 수도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올핸 270여 마리가 큰 무리를 이뤄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경작하던 농경지를 일반에게 분양하고 난 뒤론 낙곡률이 떨어지고 추수가 끝난 볏짚도 소여물로 쓰기 위해 볏짚말이를 해 놓아 철새들의 먹이가 부족하다.
 
또 지금은 농로 정비를 위한 대규모 도로 공사가 벌어져 매일 수십 대의 중장비와 사람들이 드나들어 몹시 시끄럽다. 천수만은 철새의 보금자리가 아니다. 대규모 도로 공사가 끝나면 지금은 논의만 진행중이던 환경생태공원과 골프장 등 대규모 레저시설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
 
흑두루미4-착지.jpg » 간월호로 날아 온 흑두루미가 사뿐히 내려 앉고 있다.

 

흑두루3-착지.jpg » 내 자리는 어디? 뒤늦게 잠자리로 날아 온 흑두루미가 밤새 쉴 자리를 찾아 내려 앉고 있다.

 

국토 전역을 공사장으로 만든 4대강 사업은 월동지를 찾아가는 흑두루미의 하늘 길도 바꿔 놓고 있다. 낙동강을 따라 일본 이즈미로 가던 흑두루미들은 낙동강을 따라 남하하는 동쪽 길과 서산 천수만과 순천만을 따라가는 서쪽 길을 이용했다.
 
낙동강을 따라가는 길이 지름길에 가깝다. 그런데 4대강 사업으로 경북 구미 해평습지와 낙동강 하류의 모래톱이 사라졌다. 먼길 가던 흑두루미들이 잠시 쉬기 위해 내려앉던 쉼터가 없어졌다.
 
쉼터 없는 길을 흑두루미들은 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겨우 달성습지서 몇 무리의 흑두루미가 관찰되었을 뿐이다.
 
흑두루미 가족 경계음.jpg » 순천만의 흑두루미 가족. 머리가 하얀 어미새들은 뒤따라오는 어린새에게 연신 경계음을 낸다.

 

전남 순천만 일대엔 11월30일 현재 719마리의 흑두루미가 날아왔다. 지난해 이맘때 630여 마리에 비해 수가 늘었고 해마다 월동하는 개체수가 늘고 있는 추세다.
 
순천시가 순천만 일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전봇대를 뽑고 먹이주기를 하며 월동지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대 흑두루미 월동지인 전남 순천만 일대도 상황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새들이 쉴 갯벌이 풍부하지만 생태보전지구로 지정된 논과 주변 습지를 고려하면 한해 겨울 이곳에서 월동할 수 있는 개체수는 최대 1000~1500여 마리로 보고 있다. 현재 719마리가 있지만 날씨가 가장 추운 1월 중순쯤 천수만 흑두루미들이 합류하면 이미 거의 포화상태인 셈이다. 

 

순천만 흑두루미-1.jpg » 한 무리의 흑두루미들이 순천만 논위를 날고 있다.

 

2.jpg » 흑두루미 무리와 함께 검은목두루미(오른쪽 아래) 한쌍도 매년 순천만을 찾아와 겨울을 나고 있다.

 
전 세계에 1만 2000여 마리만 남아 있는 흑두루미는 러시아 남부와 몽골 등지에서 번식을 마친 뒤 1 만여 개체가 우리나라를 통과해 일본 이즈미로 날아가 겨울을 보낸다. 일본에선 겨울철에도 마르지 않는 무논을 운영해 잠자리를 만들어 주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은 논에 먹이를 줘 흑두루미들이 겨울을 나게 한다.

 

DSC_0909_2.jpg » 일본 이즈미의 두루미 월동지 모습. 사진=<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도연 스님 누리집, http://www.hellonetizen.com/)
 
전문가들은 전 세계 흑두루미의 90%에 이르는 1만여 마리가 한곳에서 월동하는 이즈미 시는 생태적 과포화 상태인 것으로 보고 있다. 마치 좁은 우리에 넣고 기르는 가축처럼 먹이가 놓인 논에 밀집한 흑두루미들이 한 자리서 먹고 싸는 환경은 조류독감 등 전염병 등에 노출될 경우 종 보존 자체가 위태로운 치명적 상황도 우려하고 있다.
 
서산/ 글·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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