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에 모인 한 ·러 ·일 황새 자연복원 꿈 이룰까

도연 2014.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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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온 봉순이, 야생 황새 하동이, 복원센터 탈출 미호에 어린 희망이까지

한국 야생서 번식·정착하는 황새쌍 나오나 주목, 서식지 생태복원이 관건


st1.jpg » 지난 10월 중순부터 경남 하동에서 잇따라 발견된 황새 4마리가 한 하천 하구에 모여 먹이를 찾고 있다.(왼쪽부터 러시아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야생 황새 희망이, 교원대 황새복원센터에서 탈출해 야생에 적응한 미호, 지난봄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열달째 머무르고 있는 봉순이, 봉순이와 짝을 이룬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야생 황새 하동이.


지난 3월18일 경남 김해 화포천에서 황새 한 마리가 발견됐다. 다리에 채워진 식별표지 'J0051'를 통해 일본에서 날아온 두 살짜리 암컷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화포천과 봉하뜰의 유기농 농경지에 주로 머무르던 녀석한테 ‘봉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봉하뜰에 온 여자아이라는 뜻이다. ( ▶ 그분의 환생처럼 홀로 그 멀리서 고고하게 왔다 http://ecotopia.hani.co.kr/205372   )

 

봉순이는 봉하뜰 근처 유기농 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가끔 먹이를 찾았는데, 그곳에 농부가 농약을 살포하던 9월17일 사라졌다. 인간이 자신을 쫓아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0월20일, 봉순이는 놀랍게도 화포천에서 100㎞ 넘게 떨어진 경남 하동군의 한 농경지에서 다시 관찰됐다.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또 다른 황새 한 마리와 함께 있었다. 새로운 녀석은 ‘하동’이라 부르기로 했다.

 

봉순이와 비슷한 크기의 하동이는 황새의 고향 러시아에서 남하한 야생 황새로 추정됐다. 하동이와 봉순이가 짝을 이룰 수 있을까? 한국교원대 황새복원센터 박시룡 교수가 하동이 사진을 보고 수컷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지만 확신할 순 없다.
 

11월4일 아침, 안개 자욱한 습지에 황새 한 마리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봉순이나 하동이일 것으로 생각하고 촬영해 보니 다리에 ‘B49’라고 찍힌 가락지를 달고 있었다. 지난 4월28일 교원대 황새복원센터에서 치료 중 놓친 ‘미호’였다. 일본 황새, 러시아 황새, 한국 황새가 한곳에 모이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st3.jpg » 황새 미호가 하동의 한 하천 하구 상공을 나는 모습.
 

미호가 등장하자 봉순이의 행동이 거칠어졌다. 봉순이는 미호가 하동이 옆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했다. 미호는 암컷이었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하동이는 수컷임이 확실했다. 세 마리의 황새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비행 솜씨를 뽐낸 뒤 서로 친구가 됐다.

 

미호가 야생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교원대 황새 복원사업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들판은 커다란 새 세 마리로 활기가 넘쳤다.
 

이틀 뒤 이른 아침 야영텐트에서 나와 보니 습지의 황새가 네 마리로 보였다. 잠이 덜 깼나?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분명히 네 마리였다. 경사에 경사가 겹친 셈이다.

 

네 번째로 발견된 황새는 깃털의 형태로 보아 어린 개체로 짐작됐다. 녀석은 가까이 다가간 미호에게 선선히 곁을 내주었다. 하동이와 이 녀석이 모두 수컷이어서 봉순·미호와 각기 짝을 이룬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야생 황새가 정착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녀석한테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이유다.

 

st2.jpg » 황새 봉순이가 하동의 한 하천 하구에서 뱀장어를 잡는 모습.
 

황새들이 특히 좋아하는 먹이활동지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기수역이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숭어와 뱀장어 같은 물고기는 염도가 낮은 민물을 만나면 활동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황새들이 용케 이 정보를 알아내 기수역에 모인 것이다.

 

수확이 끝난 인적 드문 농경지도 황새들의 먹이터가 됐다. 농약 사용이 줄어든 결과다. 돌담식 농수로도 황새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콘크리트가 아닌 돌담식 농수로는 다양한 수서생물이 서식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황새는 번식 조건이 까다롭다. 둥지를 지을 높은 나무가 필요하고 인간의 간섭이 적어야 한다.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 가축 먹이로 볏짚을 수거하는 바람에 황새들의 먹잇감인 생물들의 서식 공간이 사라지게 된 것도 문제다.
 

그러고 보면 현재 봉순이와 친구들이 모여 있는 지역의 환경은 황새들의 번식지라기보다는 월동지 정도에 적합한 수준이다. 하지만 봉순이가 가을이 되면 일본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계속 머물러 있고, 교원대에서 태어난 미호까지 찾아온 점으로 미뤄 정착 번식지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t4.jpg » 황새가 복원되려면 높은 나무와 사람의 간섭이 적고 안정적인 먹이를 공급하는 습지 등 생태계 복원이 우선 필요하다.
 

문제는 야생동물의 가장 큰 천적인 인간의 위협이다. 황새들이 선호하는 잠자리는 염습지 갈대밭이었다. 하지만 물고기 잡는 사람이 침입하자 더는 그곳을 잠자리로 이용하지 않았다. 결국 황새 서식지에 사람의 출입을 어떻게 차단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숙제인 셈이다.
 

일본이 황새를 인공 증식시킨 뒤 방사를 망설이고 있을 때 효고현 도요오카에 야생 황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처음 발견된 날(2002년 8월5일)을 따 ‘하치고로’라고 불린 황새다. 일본은 도요오카를 떠나지 않고 살아가는 녀석의 모습에 자신감을 얻어 2005년부터 황새를 방사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한국에서 번식하던 황새는 밀렵과 농약 중독으로 1980년대 초 모두 사라졌다. 그 뒤 1996년부터 황새 인공 증식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복원사업은 내년 충남 예산 황새마을에서 단계적 방사를 앞둘 정도까지 진행됐지만 환경은 아직 황새가 맘 놓고 살아가기엔 요원하다.

 

봉순이와 친구들이 우리에게 하치고로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지 속단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황새가 우리 곁에 머물도록 하기 위한 서식지 생태 복원은 이제부터다. 

 

글·사진 도연 스님(조류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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