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색에 꿈틀꿈틀, 독충 애벌레 흉내 내는 어린 새

조홍섭 2014. 12. 24
조회수 53535 추천수 0

어미가 와도 독충 애벌레 흉내, 포식자 속이는 '베이츠 의태' 새 첫 보고

페루 열대림서 발견, 둥지 떠날 때 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

 

16OBOX-superJumbo_s.jpg » 독충 애벌레를 흉내 내는 어린 새. 둥지를 떠나기 직전 다 자란 모습이다.

 

애벌레는 새에게 영양가 풍부하고 먹기 좋은 먹이다. 일부 애벌레는 새를 피하려고 화려한 색깔로 오히려 눈에 띄는 전략을 편다. 독이 있음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경험 없는 새라도 이런 애벌레를 먹은 끔찍한 기억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새가 독 있는 벌레를 흉내내기도 한다. 페루의 열대우림에 사는 어떤 새는 둥지를 떠나기 전 독충 애벌레의 모습과 행동을 흉내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실은 독성이 없지만 포식자가 기피하는 색깔이나 형태를 취하는 행동을 베이츠 의태라고 하는데 새에서 이런 행동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구스타보 론도뇨 콜롬비아 칼리 이세시대 생태학자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아메리칸 내추럴리스트>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 ‘성가신 문상객’으로 불리는 이 새가 둥지에서 보이는 특이한 의태 행동을 보고했다.

 

어린 새의 몸에는 끄트머리가 흰 선명한 오렌지색 솜털이 나 있는데, 이 지역에 분포하는 독나방의 애벌레와 흡사하다. 솜털마다 1~10개의 기다란 오렌지색 가시가 나 있어 독침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 새의 크기는 14㎝로 독나방 애벌레의 크기 12㎝와 비슷하다.

 

screen-shot-2014-12-09-at-1-03-56-pm.png » 태어난 지 하루 만인 어린 새의 모습. 오른쪽은 아직 깨이지 않은 알과 함께 있는 모습.

 

screen-shot-2014-12-09-at-1-04-08-pm.png » 알에서 깬 지 9일째(왼쪽)와 14일째 어린 새의 모습.

 

screen-shot-2014-12-09-at-1-04-17-pm.png » 18일째의 어린 새와 이 새가 흉내 내는 독충 애벌레.  

 

screen-shot-2014-12-09-at-1-05-59-pm.png » 독충 애벌레의 독침을 배딺은 어린 새 깃털의 상세 모습.
 

어린 새의 행동도 애벌레를 빼닮았다. 보통 어린 새는 어미가 먹이를 물고 오면 입을 벌리고 먹이를 재촉한다.

 

하지만 이 새는 조르는 대신 한동안 머리를 좌우로 느릿느릿 움직이며 꿈틀거리는 동작을 한 뒤 비로소 먹이를 받아먹는다. 연구진은 “도착한 새가 어미인지 포식자인지 확인하기 위한 것 같다. 포식자라면 독충의 동작을 보고 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가신 문상객'이라 불리는 새가 흉내 내는 대상인 페루 마누 국립공원의 독충 애벌레

 

 

어미가 먹이를 물어와도 벌레처럼 행동하는 어린 새의 모습

 

 

실제로 이 새가 서식하는 페루 마누 국립공원에서는 포식자가 많아 이 새가 독립하기 전에 둥지가 파괴되는 비율이 80%에 이른다. 그러나 독충을 닮은 깃털과 행동이 생존율 향상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논문은 밝혔다.

 

laniocera_hypopyrra_-_cinereous_mourner.jpg » 어미 새의 모습. 둥지에서 의태를 할 때와는 딴판이다.

 

어린 새는 둥지를 떠나기 전 14일 동안만 독충 애벌레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둥지를 떠나면 전혀 다른 색깔의 새가 된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Londono, Gustavo A.; Garcia, Duvan A.; Martinez, Manuel A. Sanchez (2014). “Morphological and Behavioral Evidence of Batesian Mimicry in Nestlings of a Lowland Amazonian Bird”. The American Naturalist. doi:10.1086/679106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구스타보 론도뇨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거미 장거리 비행 비결은 산들바람 소용돌이 타기거미 장거리 비행 비결은 산들바람 소용돌이 타기

    조홍섭 | 2018. 06. 19

    수백킬로 바다도 건너는 뛰어난 이동능력, 비결은 공기역학 이용미풍이 일으킨 소용돌이 타고 상승 뒤 나노섬유 거미줄로 '비행선'해저화산 폭발로 대양에 새로 생긴 섬에서 처음 발견되는 생물은 십중팔구 거미이다. 거미는 수백㎞ 거리와 4500m 상...

  • 고려인삼의 힘, 빙하기 견디며 DNA 2배 된 덕분고려인삼의 힘, 빙하기 견디며 DNA 2배 된 덕분

    오철우 | 2018. 06. 18

    유전체로 본 인삼 생태와 기원음지 성장하며 월동…생육 독특약리작용 물질 만들어 뿌리 저장36억 염기쌍에 유전자 5만9천종고려인삼, 원산종보다 게놈 2배빙하기 때 ‘종 합성’으로 불어나덕분에 추위 강한 생명력 확보100만년 전 북미대륙으로 퍼져...

  • 달팽이 속살만 빼먹는 뱀 아세요?달팽이 속살만 빼먹는 뱀 아세요?

    조홍섭 | 2018. 06. 18

    아래턱 밀어넣고 굽은 이로 살 물어 끄집어 내4종은 멸종 위기…신종 명명권 경매해 보호기금남아메리카 열대림에는 달팽이를 전문으로 잡아먹는 나무 뱀이 산다. 달팽이는 부드러운 속살을 단단한 껍질로 보호하지만, 이를 돌파할 수 있다면 먹이 ...

  • 연 2회 사하라 넘는 장거리 이동 나비 비밀 밝혀져연 2회 사하라 넘는 장거리 이동 나비 비밀 밝혀져

    조홍섭 | 2018. 06. 15

    북유럽서 지중해·사하라 사막 건너 열대 아프리카 왕복 1만2천㎞ 이동날개 동위원소 분석해 확인…된장잠자리와 함께 최장거리 이동 곤충에대양을 건너고 대륙을 넘나드는 새들이 있지만 곤충도 장거리 이동을 한다. 된장잠자리는 아프리카에서 인도양...

  • 독 내뿜는 포유동물 ‘갯첨서’의 비밀 풀렸다독 내뿜는 포유동물 ‘갯첨서’의 비밀 풀렸다

    조홍섭 | 2018. 06. 12

    반나절 못 먹으면 굶어 죽는 높은 대사율먹이 쉽게 잡아 저장하려 침에 독액 분비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계곡에는 특별한 동물이 산다. 모습이 얼핏 쥐 같지만 길고 뾰족한 주둥이를 지니고 물가나 물속에서 먹이 사냥을 하는 이 동물은 갯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