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뒤로 숨은 기름유출 사고 명칭

김찬국 2014. 12. 30
조회수 19557 추천수 0

환경상식 톺아보기-가해자 실종된 기름유출사고 이름짓기
외국은 물론 국내서도 원인제공 기업이나 배 이름으로 사고 명명
지명 붙인 사고 접한 대학생들 자연재해로 인식, 분노와 지지도 적어
 
김명진_의항해수욕장_s.jpg » 2007년 12월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해수욕장에서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기름을 거두고 있다. 이 사건의 명칭이 무엇이라고 떠오르는가? 사진=김명진 기자


요즘 대학생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해양 기름유출 사고는 무엇일까? 환경 관련 강의를 하며 살아가는 글쓴이가 대학생이었던 1990년대에는 해양 기름유출 사고라고 하면 미국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엑손 발데스호 사고나 우리나라 남해안에서 벌어진 씨프린스호 사고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이 중 ‘엑손 발데스호 사고’는 1989년 3월24일 미국 석유회사 엑손의 대형 유조선 엑손 발데스호가 알래스카를 경유하던 중 암초에 부딪혀 좌초한 일로 해양 기름유출 사고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씨프린스호 사고’는 1995년 7월23일 키프로스 선적의 유조선 씨프린스호가 우리나라 남해안에서 태풍 속에 좌초되어 원유와 연료유 일부가 유출된 일1)로 당시 우리나라 해양 기름유출 사고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례였다.
 
1_[사진1] Exxon_Valdez_Cleanup.jpg

 

2_[사진2] Deepwater_Horizon_fire.jpg » 1989년 발생한 엑손 발데스호 사고(위)와 2010년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 등 해양 기름유출 사고는 원인 제공 기업이나 유조선의 이름 등을 포함하여 그 이름을 짓는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하지만 20대 초반인 요즘 대학생들에게 두 사례는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이름이기 마련이다. 이들과 환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오히려 2010년 4월20일 세계 2위 석유회사인 브리티시 피트롤리엄(BP)의 석유시추시설 딥워터 호라이즌이 미국 멕시코만에서 폭발하여 대량의 원유가 유출된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를 소개하거나, 대부분 ‘○○ 기름유출사고’로 기억하는 우리나라에서 약 7년 전에 발생한 그 일을 소개한다.
 
하지만 내가 “여러분이 잘 기억하고 있는 ‘허베이 스피리트호 원유 유출사고2)’에 대해 소개하겠다.”라고 하면 대부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의아한 반응을 보인다.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알려준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7년 12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대규모 해양 기름유출 사고라고 말하면 그제야 기억을 떠올리며 아는 체한다. 그해 겨울 초중등학교 시절에 겪은 기름 유출사고와 복구에 대한 이야기를 잘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23만여 명의 자원봉사자 중에 자신이나 부모, 친구들이 포함된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우리는 왜 그 사고를 피해지역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그 일은 2007년 12월7일 삼성중공업의 예인선이 끌고 가던 대형 크레인이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홍콩(중국) 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충돌하여 원유 1만 2547㎘가 유출된 사고를 말한다. 이 사고로 인근 212개 양식장과 15개의 해수욕장을 포함하여 375㎞에 이르는 해안이 오염되었고, 많은 자원봉사자가 복구를 위해 애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3_[사진3] Manripo071210_2.jpg

 

4_[사진4] A_monument_of_2007_Samsung-Hebei_Spirit_oil_spill.jpg » 2007년 12월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기름유출사고의 복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위)와 이들을 기념하는 시비 ‘누가 검은 바다를 손잡고 마주서서 생명을 살렸는가’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그 해 겨울의 추위를 따뜻한 마음으로 맞섰던 자원봉사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우리’들이 왜 그 사고의 이름에 피해지역을 포함하여 ‘○○ 기름유출사고’라고 하였는지 설명을 해야만 했다.
 
1969년 유조선 토리 캐넌호가 영국 공해상에서 좌초된 ‘토리 캐넌호 사고’, 1978년 미국 석유회사 아모코 소유의 유조선 아모코 카디즈호가 프랑스 연안에서 암초와 충돌한 ‘아모코 카디즈호 사고’, 1989년의 ‘엑손 발데스호 사고’, 1999년 유조선 에리카호가 침몰하여 프랑스 해역 약 400㎞를 오염시킨 ‘에리카호 사고’, 2002년 바하마 선적의 유조선 프레스티지호가 스페인 해안에서 침몰한 ‘프레스티지호 사고’ 등과 2007년 12월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그 사고의 이름짓기 방식이 왜 그렇게 달랐는지 설명하는 것은 난감한 일이었다.
 
원인 제공 기업이나 유조선의 이름 등을 따서 해양 기름유출사고의 이름을 짓는 국제적인 관례3)에서 벗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1993년 제5금동호 사고, 1995년 씨프린스호 사고, 1997년 제3오성호 사고 등과 같이 우리나라 해양 기름유출 사고의 명칭에도 예외 없이 사고를 일으킨 선박의 이름이 포함되었다.
 
7년 전의 피해주민들은 언제 보상을 받았을까?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하고 몇 년이 지난 후부터 강의에서 만난 대학생들에게 피해지역 주민들이 언제 보상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하는지 종종 묻곤 했다. 수년이 지났으니 ‘당연히’ 이미 받았을 것이라고 답하는 이들이 많았고, 그것이 이들이 기대한 ‘상식’이었다.
 
하지만 상당한 기간 동안 나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야만 했다. 설령 충분한 보상이 적시에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피해주민들의 삶과 지역공동체가 온전히 회복되기는 어렵지만, 당시까지는 피해주민에게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펀드)의 절차대로 보상금이 지급되기까지 오랜 기간이 필요하고, 2002년 ‘프레스티지호 사고’ 당시 스페인 정부가 조속히 지급한 대지급 방식이 우리나라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아 4명의 피해 어민이 생계문제로 자살하였다는 사실은 ‘상식’을 기대하는 젊은이들에게 차마 알려주기 어려운 일이었다.
 
2010년 ‘딥워터 호라이즌 사고’에서 석유회사 브리티시 프트롤리엄이 약 280억 달러(약 30조 원)의 손해배상금을 직간접적으로 지급하기로 한데 반해,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추위 속에서 기름을 닦는 동안 우리나라 대기업인 삼성중공업이 진행한 일이 가입한 책임보험의 한도인 56억 원으로 배상 책임을 제한해 달라는 소송이었다는 점을 알려주어야 할 때는 더욱 곤란하였다.4)
 
그러던 중 지난 10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피해주민 중 일부에게 피해보상금이 지급되었다는 소식이다. 태안군 지역 내 전체 피해신고 2만7087건 중 맨손어업 1만4613건에 대해 피해민과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 간의 화해가 결정되어 2014년 10월23일부터 지급이 시작된 것이다.
 
이 중 태안남부수협 소속 524명에게 정부 대지급금 15억8300만원이 건네져서 1인당 약 300만원의 보상이 이루어진 셈이다. 약 7년이 지나서 맨손 어업민 중 일부에게 보상금이 지급되었지만, 아직 피해신고의 절반가량은 재판이 진행 중이고 여기에는 양식, 어선어업 등 수산 분야와 민박, 펜션, 음식, 도소매 서비스업 등 관광 분야가 포함된다. 
 
5_[사진5] Prestige_oil_spill.jpg

 

6_[사진6] Manripo071210_5.jpg » 대규모 해양 기름유출 사고는 해양 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복구를 위한 수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이는 2002년 프레스티지호 사고(위)와 2007년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두 사고의 두드러진 차이 중에는 이름짓기 방식과 피해 보상에 걸린 시간이 포함된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우리의 관심과 상식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그동안 만난 이들 중에 피해지역 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또한 자신이 늘 들어왔던 그래서 불러왔던 ‘○○ 기름유출 사고’라는 이름이 피해주민들을 더 어렵게 하고 원인 제공 기업의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부르는 이름에 따라 무언가 바뀔 여지가 있는 것일까?
 
나현정(2010)은 특정 사건에 대한 이름짓기(labeling)의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대학생들에게 ‘삼성-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와 ‘태안 기름유출사고’라고 명칭만 다르게 붙인 동일한 기사를 읽게 하였다. 이 실험 결과, ‘삼성-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라는 이름이 등장한 기사를 읽은 대학생들은 사고의 책임을 해당 기업으로 돌렸다. 또한 원인 제공자인 해당 기업에 대한 분노 정서와 피해 지역에 대한 동정 정서를 동시에 경험하였고, 해당 기업에 대한 비판적 행동 의지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태안 기름유출사고’라는 이름이 등장한 기사를 접한 대학생일수록 이 사고를 인간의 힘으로 통제하기 힘든 재해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고, 피해지역에 대한 동정 정서나 지지적 행동의지와 관련성을 보이지 않았다.5)
 
우리는 7년 전 추운 겨울을 이겨낸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와 성금과 응원으로 피해지역을 도운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우리 중 일부가 나서 왜 ‘○○ 기름유출 사고’라고 부르지 않고 해양 기름유출 사고의 이름짓기 ‘상식’을 따라야 하는지, 피해지역과 주민들을 어떤 방식으로 돕고 그 과정에서 정부와 원인을 제공한 이들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 보다 활발하게 논의하였다면 오늘 우리가 갖는 안타까움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20년 후 이 사고는 어떻게 기억될까?
 
1999년 녹색연합은 1950년대 이후 발생한 대한민국 환경 10대 사건을 정하면서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을 1위로 선정하였다.6) 하지만 2014년 현재 내가 만나는 20대 초반의 대학생 중 낙동강 페놀오염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혹시 중고등학교 교과서나 환경 서적에서 그 이름을 들어 기억하는 이가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경유로 낙동강에 페놀이 유입되었는지 아는 이는 거의 없다.
 
그 사고의 이름은 그저 ‘낙동강 페놀오염사건’이다. 1991년 3월14일 페놀 30톤을 1차 유출한 두산전자 구미공장이 30일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로 20일 만에 조업 재개가 허용된 이후 4월22일 페놀 1.3톤을 2차 유출한 사건을 해당 기업과 연결해 기억하는 이들이 현재 얼마나 있을까? 
 
벌써 7년이 지났다. 피해지역 주민 중 어떤 이들에게 2014년 겨울은 여전히 추운 겨울일 수 있다. 2007년의 겨울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냈던 자원봉사자들은 자신의 수고와 노력에도 상식이 구현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과 마찬가지로 원인을 제공한 기업은 대부분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7년이 지난 12월7일에도 뉴스 방송은 약속이나 한 듯 ‘○○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라고 부르고 있다.7)
 
2014년 10대 뉴스를 정하면서 어느 신문은 이들 뉴스를 관통하는 것이 ‘상식의 실종’이라고 하였다. 2007년에 발생한 그 사건을 다시 바라보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 역시 ‘상식’이지 않을까?
 
김찬국 한국교원대학교 환경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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