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보전 공들인 10년, 순천만 ‘천학 도시’ 꿈 현실로

김정수 2015.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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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류 천마리 겨울 나는 순천만, 민·관 협력 생태계 보전 결실로
성탄선물처럼 온 천학도시 뒤엔 낙동강 훼손 4대강 사업도 한몫

 

sun0.jpg » 전남 남해안 순천만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흑두루미들이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인근 대대뜰 논에 모여 먹이를 찾고 있다.

   
지난달 25일 전남 순천만에서 월동하는 흑두루미를 비롯한 두루미류의 개체수가 1000마리를 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순천시의 이날 아침 모니터링에서 흑두루미 966마리, 재두루미 35마리, 검은목두루미 4마리 등 두루미류 3종 1005마리가 관찰된 것이다.
 

두루미류 새 1000마리를 품는 도시라는 의미의 이른바 ‘천학 도시’는 순천시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순천만에서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는 흑두루미 수를 헤아리면서 자연스레 갖게 된 목표였다. 그 목표 달성의 순간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찾아왔다.
 

흑두루미를 포함해 순천만에서 겨울을 나는 두루미류 새들은 낮에는 주변 농경지 곳곳에 흩어져 먹이 활동을 하다가 해가 지면 주로 순천만 동쪽 해룡면 쪽 갯벌에 모여 잠을 잔다. 따라서 천마리 학을 모두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깨어나 농경지로 날아갈 때다.
 

새해 이튿날 아침 천 마리 학을 만나러 순천시 흑두루미 모니터링 팀을 따라 흑두루미 잠자리가 내려다보이는 순천만자연생태공원 용산전망대에 올랐다. 두루미류 수를 세는 순천시의 공식 모니터링은 실수를 막기 위해 2인 1조 두 개팀이 동시에 진행한다.

 

sun2.jpg » 용산전망대에서 바라본 순천만 전경.
 

“두 마리가 날아올랐네요.” 탐조용 필드스코프(망원경)를 지켜보던 강나루 순천만자연생태해설사의 이야기를 듣고 시계를 보니 7시15분이다. 동이 트려면 20여분이나 남았는데도 먹이터를 찾아 날아간 걸 보면 꽤나 부지런한 녀석들이다. 

 

하지만 탐조용 스코프로 어렴풋이 보이는 개펄 안쪽 잠자리의 나머지 흑두루미떼들은 대부분 잠에서 깨어나기 전인 듯 머리를 가슴에 파묻고 몸을 웅크린 채 꼼짝하지 않았다. 점차 밝아오는 여명에 흑두루미들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반사돼 보였다. 이들이 서 있는 개펄이 물속에 잠긴 상태라는 이야기다.
 

동이 트면서부터 흑두루미들은 3~4마리의 가족 단위나 몇개 가족으로 구성된 소그룹으로 날아올라 건너편 농경지 쪽으로 날아갔다. 20여마리 가까이 한꺼번에 날아오른 경우도 있었지만, 날아가면서 한 줄로 대열을 만들었기 때문에 개체수를 헤아리기가 어렵지 않았다.
 

“흑두루미 무리 크기가 지난번 모니터링했을 때보다 작은데요.” 황선미 순천시청 두루미류 모니터링 담당 주무관이 말했다. 지난달 25일 관찰했을 때 보다 250~300여마리 적어 보인다는 것이다.

 

나머지 흑두루미들은 금방 확인되지 않았다. 용산전망대에 도착할 때쯤부터 뿌리기 시작한 눈발이 점점 거세져 동이 텃는데도 시야가 좋지 않은 탓이다. 이들은 잠시 뒤 기존 잠자리에서 서쪽으로 1.5㎞ 가량 떨어진 장산 갯벌 쪽에 세 무리로 흩어진 채 발견됐다.
 

장산 갯벌에서 이처럼 많은 흑두루미들이 잠을 자기는 지난해 10월22일 순천만에서 이번 월동기 첫 흑두루미들이 관찰된 이후 처음이다. 강 해설사와 황 주무관은 그 이유로 전날 새벽 해맞이 관광객들이 새벽부터 새들 잠자리 근처로 접근하는 바람에 위협을 느꼈을 가능성을 꼽았다.

 

강 해설사는 “흑두루미는 두루미나 재두루미보다 사람들의 접근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농경지에서 고양이나 개 등에게 위협을 받으면 조금 날아올라 근처 농경지로 피하는 정도지만, 사람들이 접근하면 갯벌로 다시 날아가 1시간 가까이 먹이터로 돌아오지 않곤 한다”고 말했다.
 

점점 거세지는 눈 때문에 장산 갯벌 쪽 잠자리에서 날아오르는 흑두루미 수를 정확히 세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쉬웠지만 모니터링팀은 결국 이날 개체수 집계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sun1.jpg » 2009년 두루미를 위협하던 전봇대를 없앤 뒤 흑두루미가 논에 내려앉고 있다.

 

순천이 ‘천학 도시’의 꿈을 이룬 것은 그냥 건네진 선물 같은 것이 아니다. 순천만 갯벌과 주변 습지는 1990년대 중반 한때 골재채취 예정지였다.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골재채취를 막아내지 못했다면 국내 최대 흑두루미 월동지도, 연간 2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국내 최대 생태관광지도 없을 뻔했다.
 

골재채취 허가 취소 요구에서 시작돼 8년여 동안 이어진 시민단체의 순천만 보전 운동은 2003년 28㎢에 이르는 순천만 갯벌과 갈대숲 등이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결실을 맺었다. 습지보호구역 지정 이후 순천시는 개발보다는 보전을 통한 생태관광지 조성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2008년엔 순천만으로 흘러드는 동천 양안의 농경지 100만㎡를 사들여 습지를 조성하고 갯벌 인근 식당과 매점을 이전하는 등 생태 복원에 나섰다. 이듬해에는 흑두루미 등 대형 철새들의 이동에 위협이 되는 전깃줄을 없애기 위해 순천만 습지 주변 전봇대 282개를 철거하기도 했다.

 

농민들의 협조를 받아 흑두루미들의 주요 먹이터인 대대뜰의 논 59㏊에서는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여기서 생산되는 벼 가운데 50t은 따로 비축했다가 철새 월동기에 매일 300㎏씩 이들의 먹이로 주변 농경지에 뿌려주고 있다.
 

1990년대 말까지 100마리가 안 됐던 순천만의 두루미류 월동 개체수가 이번 겨울 1000마리를 넘어선 것은 순천시가 주민들과 함께 흑두루미 월동 여건을 꾸준히 개선해온 결과라는 것이 조류 전문가들의 견해다.

 

crane.jpg
 

순천만 사람들이 원한 것은 아니지만 낙동강을 파헤친 4대강 사업이 천학 도시 꿈 실현을 거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두루미네트워크 이기섭 대표는 “구미 해평습지 등 낙동강 지역을 거쳐 일본의 월동지로 이동하던 흑두루미들 상당수가 4대강 사업 이후 서해안을 경유하는 쪽으로 이동 경로를 바꾼 것도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서해안을 따라 남하해 세계 최대 흑두루미 월동지인 일본 규슈현 이즈미로 가던 길에 순천만에 기착한 개체들이 순천만의 좋은 월동 여건 때문에 그대로 머무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천학 도시’의 꿈을 이룬 순천시는 2023년까지 순천만 주변에서 내륙·연안습지 70만㎡를 복원하고 400㏊의 흑두루미 쉼터를 조성해 두루미류 월동 개체를 2000마리까지 늘리는 새로운 목표를 준비하고 있다.
 

이 대표는 “순천만의 두루미류 수용 능력은 1000마리 정도가 한계로 보이지만 순천시의 보호 활동에 따라 늘어나는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순천/ 글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사진 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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