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사마귀의 최후>

 

  오솔길 돌아 침목다리도 건너 한길로 나섰습니다. 가을 한나절 사위는 온통 무겁고 흐릿한 날씨에 며칠 동안 내린 비가 겨우 그쳐 주기도 아쉬운 듯, 잠깐씩 해가 비쳐주던 어제보다 더 흐려지고 말았습니다. 새벽녘엔 소낙성 비까지 내려 오늘도 미리부터 햇살은 포기했었습니다. 밝지 않기론 내 기분도 마찬가지, 다소 침잠한 심상을 달래고 위안도 얻기 위한 산책이었습니다.

반쯤 말라있는 아스팔트 포장도로 한복판에 뾰족하게 솟아있는 물체가 가장 먼저 눈에 확 띄었습니다. 산골짜기에 사는 동안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기에 역시 불의의 사고를 쉽게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모양새가 별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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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아가던 완전히 장성한 ‘좀사마귀’ 한 마리가 달리는 자동차에 부딪쳐 몸에 부상을 입고 금시 떨어져 있던 것입니다. 날개도 다리도 아직은 움직임이 또렷해 보여 망설임 없이 길가 국수나무 건강한 잎새 위에 살며시 올려주었습니다. 혹시나 시간 여유와 함께 부상에서 회복될 가능성도 기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곳에 그냥 있어 봐야 다음 번 달려드는 자동차 바퀴를 피할 재간이 없어 완전히 으깨어지긴 불 보듯 빤한 위치였습니다. 길게 생각할 틈도 없이 일단 대피시키고 지켜봄은 순리에 앞서 정리에 옳을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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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내 착각이었고 과잉친절이었음이 곧 참상으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정보를 알고 잠깐 사이에 ‘곰개미’가 달려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보통 때 같으면 아무리 사마귀 종류 중 덩치가 가장 작다는 좀사마귀라도 곰개미는 한 끼 식사감도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다릅니다. 개미들은 성치 못한 사마귀의 종말적 처지를 정확히 알고 있음이 틀림없었습니다. 인간에겐 오래 전에 사라진 제6감의 또렷한 발동일 것입니다. 곧 이어 여러 마리의 개미들이 망설임 없이 삽시간에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즈음에 잠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마구 달라붙는 곰개미들을 떼어내고 다른 곳으로 사마귀를 옮겨주어야 함이 옳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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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칫거리는 사이 공격을 받은 좀사마귀가 이내 최대한의 방어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반격은 둘째 치고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한 듯 제대로 떨침의 효과조차 발휘되지 못했습니다. 묵직하게 멈춰있음만으로도 곰개미들은 좀사마귀 주변에 얼씬거리지 못함이 상식일진대, 역시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곰개미들은 정확하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기로 했습니다. 안전한 곳이란 근동엔 어디에도 없으며, 상처받은 곳이 날개나 다리 정도가 아닌 하필 치명적인 목 부위라면 부상에서 온전히 회복될 가능성일랑 어서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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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개미들의 강력한 개미산 주입에 좀사마귀의 몸은 빠르게 마비되어갔습니다. 최소한 한 마리의 곰개미는 그렇지 않아도 심하게 부상을 입은 사마귀의 뒷머리 급소를 끊임없이 집중적으로 공격했습니다. 고통을 빨리 덜어내기엔 이편이 사마귀의 입장에서도 차라리 나을 것이었습니다. 결국엔 가느다란 삶을 지향하는 한 가닥 의지마저 좀사마귀는 조용히 접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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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치 못할 운명이라면 순종할 뿐이라는 듯 파르르 떨기만할 뿐 날개도 잠시 전처럼 힘차게 털지 못하고 곰개미가 끌어당기는 대로 그토록 막강한 위력을 간직하고 자랑하던 톱 다리도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하필 내 손으로 옮겨 준 자리에서 벌어진 차라리 눈감고 싶은 상황일지언정, 도저히 회복불능일 것 같으면 이 같이 육 보시 헌신이란 종말적 처리방식을 나는 후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연계의 흐름과 전혀 무관 무자비한 인간의 자동차 바퀴에 두 번씩이나 무참해지는 것보다 이 같은 유의미한 방식이라면……, 다행이 고통을 느끼는 시간도 거의 짧았을 겁니다.

 

  활짝 펼쳐진 좀사마귀의 속 날개 색상이 유난히도 아름답다는 생각 하나만 남기기로 했습니다. 하늘도 무겁게 흐린 초가을 9월 어느 날, 참으로 아름다운 광택의 날개, 너무나도 반듯하고 멋진 좀사마귀의 날개 한 쌍, 눈물 나도록 찬연한 보랏빛 날개 한 쌍을 나는 보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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