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가족과 미국행, 195번만에 얻은 일

조홍섭 2015. 01. 26
조회수 27245 추천수 0

인터뷰: 서진원 미국 덕밸리 인디언보호구역 어류·야생동물·공원 관리소장

공기업 어류전문가 자리 버리고 무작정 미국행, 구직 1년반만에 195번째 성공

인디언 1300명 사는 서울 2배 야생 땅, 인공호수 관리해 주민에 낚시 면허료 수입

 

in0.jpg » 18일 산천어 축제가 한창인 강원도 화찬에서 부대행사로 열린 산천어 종복원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서진원 박사. 그는 이곳이 자생지가 아닌 산천어의 유출을 막기 위해 3배체 도입을 제안했다. 사진=조홍섭 기자

 

“인천 공항에 도착했는데 기관장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더군요. 며칠 전 학교에서 농구 경기가 열렸을 때 나타났던 퓨마를 우리 직원이 잡았다는 내용이었죠.”
 

재미 어류학자인 서진원(42·사진) 박사는 물고기뿐 아니라 야생동물과 공원관리 업무를 담당한다. 올빼미, 수달, 비버, 방울뱀, 퓨마, 사슴 등 다양한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나아가 관내 저수지와 강에 송어가 잘 살도록 해 낚시꾼이 몰리도록 하고, 사냥 면허와 캠핑장 운영으로 지역 주민에게 소득을 안겨주는 일도 중요하다.
 

여기까지는 여느 지방자치단체 공원 관리 책임자들이 하는 일과 다를 게 없다. 특별한 건 그가 일하는 곳이다. 그는 미국 덕밸리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어류·야생동물·공원 관리소장을 맡고 있다. “미국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많지만 아마도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관리자로 일하는 사람은 제가 유일할 겁니다.”


in2.jpg » 서진원 박사가 일하는 인디언보호구역의 위치(붉은 사각형). 아이다호와 네바다 주 경계에 자리잡고 있고 콜롬비아강 지류인 스네이크강이 흐른다.   

 

18일 산천어 축제가 한창인 강원도 화천에서 ‘토종 산천어 종복원’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서 박사를 만났다. 그가 일하는 덕밸리 인디언 보호구역은 네바다와 아이다호 주 경계에 절반씩 걸친 서울 2배 면적의 정사각형 땅으로, 쇼쇼니(쇼숀)족과 파이유트족 인디언 약 1300명이 산다.

 

“연방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지만 경제, 문화, 교육, 사법부 등을 갖춰 자치정부 같은 구조를 지닌다. 4년마다 선출되는 추장 격인 기관장이 행정부를 이끈다”고 그가 설명했다.
 

어류학자인 그가 이곳에 오게 된 근본 이유는 당연히 물고기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약간의 무모함과 운이 없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뒤 귀국해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어류생태 담당 연구원으로 7년 동안 일했다. 촉망받는 어류 전문가였지만 그는 7년 만에 사표를 냈다. 건설 위주의 조직인데다 생태에 대한 관심이 적어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미국 아이다호 전력회사 어류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해 보니 수력발전 댐 17곳을 관리하는 직원이 2000여 명인데 어류 전문가가 30명가량 된다는군요. 한국수자원공사에는 직원 4000명 중 제가 유일한 어류 전문가였습니다.”
 

in4.jpg » 미국에서 어류 조사를 하는 서진원 박사.

 

2011년 안정된 직장을 버린 그는 가족을 데리고 여행비자로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무 준비도 없었다. 퇴직금과 약간의 저축한 돈으로 2년쯤 버티면 직장을 구할 자신이 있었다.

 

애틀랜타 공항에서 간신히 6개월 방문 허가를 얻었다. 미국에서 학위를 따고 한국의 유수한 기관에서 경력을 쌓은 것을 과신했을까, 입사 지원서를 내는 족족 떨어졌다. “직접 찾아가 면접을 한 것만 20번이 넘습니다. 왕복 20시간씩 차를 몰고 가서 대형마트 주차장 차 안에서 자기도 했는데….”
 

1년 반 동안 197번 지원서를 냈다. 그런데 195번째 낸 곳에서 면접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동료가 ‘여기 한번 해보라’고 건네준 인디언 보호구역의 자리였다. 서부영화에서 봄 직한 야생말이 뛰어다니는 끝없는 황무지를 달려 사무실에 갔다. 어류학자를 뽑는데 ‘경력 과잉’이었다. 하지만 면접 후 10분 만에 합격을 통보받았다.
 

in3.jpg » 보후구역 안에는 인공호수 3곳이 있어 이곳에 풀어놓은 무지개송어를 낚으려는 외부인으로부터 면허료를 받는 것이 주민의 큰 소입원이다. 사진=서진원 박사

 

뛸 듯이 기뻤다. 비록 가족은 자동차로 2시간 반 떨어져 주말에만 만날 수 있지만 마침내 직장을 얻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지역은 미국에서도 유명한 연어·송어가 회유하는 컬럼비아강 지류인 스네이크강이 인근에 흐른다. 그러나 수많은 댐이 들어서 연어과 어류를 복원하는 것이 정부의 큰 과제다. 어류학자들에겐 세계적으로 알려진 곳이다.
 

스네이크강 상류 인근에 위치한 덕밸리 인디언 보호구역도 각종 댐 건설로 연어가 돌아오지 못한다. 대신 미국 정부는 인공호수를 3곳에 조성하고 여기에 무지개송어를 해마다 방류해 외부 낚시인들로부터 낚시면허 수입을 얻도록 했다.
 

낚시로 수입을 올린다는 점에서 덕밸리 인디언 보호구역은 화천과 비슷하다. 애초 자생지가 아닌 곳에 낯선 물고기를 풀어놓는 것도 같다. 산천어 축제의 원조인 화천은 애초 산천어가 살던 곳이 아니다. 만일 행사를 위해 풀어놓은 산천어가 관리 부주의로 하천으로 풀려나간다면 생태계 교란 우려가 있다.
 

그가 이번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유는 그런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그는 수정란을 처리해 염색체가 3쌍인 3배체 물고기를 생산해 행사장에 풀어놓을 것을 제안했다.

 

3배체 물고기는 애초에 불임이어서 환경에 누출돼도 번식하지 못한다. 그는 “3배체 물고기는 유전자에는 손을 대지 않고 염색체만 늘린 것이어서 유전자 조작 논란과는 거리가 멀다”고 덧붙였다.
 

in1.jpg » 전통 행사 때 춤을 주로 추는 이와 함께 선 서진원 박사. 일상적인 복장은 아니다.

 

S1000014.JPG » 서 박사가 근무하는 보호구역의 기관장(추장)인 린드세이 매닝과 직원들. 사진=서진원 박사  

 

그는 어류 전문가로 채용됐지만 열달 만에 소장으로 승진했다. 인디언 보호구역의 환경·생태 분야 핵심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올랐다. 이 자리엔 따로 정년이 없다. 10년 뒤에 그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추장이 돼 있을지 모르죠, 하하.”
 

그는 “이곳에서도 한국인은 처음이지만 외모가 비슷해서인지 잘 대해 준다”고 말했다. “백인 문화와 좀 다르고 장난 좋아하는 아시아인 정서와 비슷한 게 있어요. 15분쯤 느긋하게 여유를 갖는 ‘인디언 타임’도 있고요.” 

 

화천/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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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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