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멧돼지 갈래, 경상 전라 제주 달라

조홍섭 2015. 0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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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중국 거쳐 한반도로 남하…아시아 멧돼지 지역별 형질 차이 밝혀져

전라도 멧돼지는 경기도, 경상도와 단절돼 고립…제주는 중국산? 자생종?

 

boa2.jpg » 비무장지대의 멧돼지. 한반도의 멧돼지는 지역에 따라 매우 다른 형질을 지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진=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한반도의 멧돼지는 어디서 왔을까.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멧돼지는 다 같은 종류일까. 동아시아 멧돼지의 고향은 어디일까. 대도시에도 종종 출현하는 흔한 동물이지만 멧돼지의 기원을 둘러싼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다.
 
멧돼지가 처음 출현한 곳은 동남아 섬이다. 빙하기 때 섬이 육지와 연결되면서 퍼져나간 멧돼지는 현재 아시아의 대부분과 유럽, 북아프리카에 분포한다. 아메리카와 호주에는 사냥용으로 풀어놓았거나 기르던 것이 야생화 했다.
 
 boa2_Altaileopard_1280px-Sus_scrofa_range_map.jpg » 멧좨지 분포도. 녹색은 자생지, 푸른색은 옮겨놓은 곳이다. 그림=_Altaileopard,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아시아의 멧돼지는 형질에 차이가 없는 단일한 종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멧돼지는 미얀마·타이·베트남에서 기원했다는 주장과 가축화한 멧돼지가 동아시아에서 독특하게 야생화 했다는 주장 등이 나왔다.
 
동아시아 멧돼지의 기원을 밝힐 주목할 연구가 나왔다. 이항 교수 등 서울대 수의대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비엠시 유전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동아시아 멧돼지 집단의 유전적 차이와 구조를 초위성체 좌위 분석을 통해 처음으로 규명했다. 기존 연구가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를 대상으로 했다면 이번 연구는 유전자 전체를 조사한 것이다.
 

Hajotthu _1280px-Frischlinge2008s.jpg » 멧돼지 새끼들. 사진=Hajotthu,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자들은 동남아와 동아시아 6개국 멧돼지 238마리의 유전자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멧돼지는 지역적으로 다양하게 분화돼 모두 7가지 무리로 나뉜 것으로 나타났으며, 기원지인 동남아에서 중국 남동부를 거쳐 동북아로 퍼져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흐름은 유전 다양성의 차이로 나타났다. 유전 다양성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남동부 윈난성에서 가장 높았고 러시아 연해주는 중간 수준, 한반도는 가장 낮아 동남아의 절반 수준이었다. 멧돼지의 조상은 동남아 섬에서 남중국을 거쳐 동북아로, 한반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확산해 나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1280px-Bache_mit_Frischlingen_2010s.jpg » 멧돼지는 산을 타고 이동할 수 있지만 영역은 비교적 좁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한반도에 멧돼지가 처음 출현한 고고학적 증거는 78만~13만년 전이다. 이번 연구로 러시아 연해주로부터 백두대간을 타고 남쪽으로 퍼져 나갔음이 밝혀졌다.
 
북쪽으로 갈수록 러시아 연해주 멧돼지와 유전적으로 비슷한 것이 그런 이동 경로를 말해준다. 특이한 것은 좁은 면적이지만 한반도 안에서도 멧돼지의 유전적 형태가 지역마다 달랐다는 사실이다.
 
이번 연구에서 멧돼지 집단 사이의 유전적 공통점과 차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주성분(PCA) 분석 결과를 보면, 제주 멧돼지는 본토의 멧돼지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본토 멧돼지 가운데는 경상도가 연해주와 가깝고 이어 경기와 강원이 비슷했다. 전라도 멧돼지는 이들과 상당히 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boa-9jpg.jpg » 지역별 동아시아 멧돼지 집단의 유전적 관계(A). 각 집단의 차이와 공통점을 보여주는 주성분(PCA) 분석도(B).  

 

연구자들은 멧돼지가 산을 넘을 수는 있지만 백두대간이 확산의 장벽 구실을 한 것으로 풀이했다. 멧돼지는 태어난 곳에서 멀리 가지 않아 영역 면적은 6.5㎢ 이하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와 전라도는 평야로 연결돼 있지만 멧돼지의 이동은 매우 단절돼 두 집단 사이의 유전적 구성은 3.6%만 같았다. 제주도만큼은 아니지만 전라도 멧돼지도 상당히 고립된 양상을 나타낸 것이다.
 
이항 교수는 “외국의 예를 봐도 이렇게 좁은 땅에서 멧돼지의 유전 형질이 지역적 차이를 보이는 예는 드물다. 이런 유전적 차이를 앞으로 멧돼지 관리 때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서 제주 멧돼지는 가장 특이했다. 제주에는 1~8세기 동안 멧돼지가 있었다는 역사 기록이 있다. 한동안 사라졌던 제주 멧돼지는 최근 다시 출현해 급속히 늘어 문제가 되고 있다.

 

boa5.jpg » 최근 급증한제주 멧돼지를 당국이 포획하는 모습. 사진=제주 / 연합뉴스  
 
제주도 한라산연구소는 2011년 멧돼지 22마리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제주의 재래돼지나 본토의 멧돼지와 전혀 다른 중국 멧돼지로 드러났다고 밝힌 바 있다. 모든 멧돼지가 한 마리의 어미로부터 기원해 중국에서 들여온 멧돼지가 사육장에서 탈출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연구에서도 제주 멧돼지는 유전 다양성이 매우 낮았다. 또 한반도 본토와는 거의 관련이 없고 중국 멧돼지와 유전적으로 가까웠다.
 
이 교수는 “제주에는 한동안 사라졌던 멧돼지가 최근 급증해 중국에서 들여온 개체가 야생으로 탈출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육지와 단절돼 진화한 독특한 형질의 개체가 숨어있거나 사육되다가 야생으로 탈출했을 가능성도 있어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확한 기원이 밝혀지기 전에 무조건 박멸하는 것은 곤란하다”라고 덧붙였다.
 
아시아의 멧돼지가 이처럼 유전적으로 다양하고 지역적으로 분화돼 있음이 밝혀지면서 그 관리 방법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단순히 사냥감이나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로운 동물로 제거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아시아 멧돼지의 유전 다양성은 유전자원으로서 가치가 높다. 집돼지의 품종개량이나 질병 저항 형질을 개발하는데 유용하다.”라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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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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