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 자르고 8달까지, 전갈의 지독한 생존

조홍섭 2015. 02. 06
조회수 51863 추천수 0

포식자 만나면 소화관, 항문, 독침 포함한 꼬리 일부 떼어내고 달아나

수컷에 흔해, 배설물이 뱃속에 쌓이지만 작은 먹이 먹고 짝짓기 해내

 

sc1.jpg » 자절을 하는 남아메리카 아난테리스 속 전갈의 일종. 점선은 자절이 일어날 수 있는 부위이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의 몸 일부를 떼어주고 목숨을 구하는 전략을 쓰는 동물이 있다. 도마뱀은 대표적인 예이다. 자발적으로 몸의 일부를 잘라내는 이런 행동을 ‘자절’이라고 한다.

 

절지동물에서도 자절은 흔하다. 거미 가운데는 포식자에게 쫓기면 다리를 떼어내는 종류가 있다. 떨어진 다리는 계속 꿈틀대 포식자의 주의를 끌고 그 틈에 몸통은 달아난다. 게, 여치, 진드기 등도 자절을 한다.
 

남아메리카의 드문 전갈인 아난테리스 속 전갈도 자절을 한다. 게다가 이 전갈은 다리나 꼬리 같은 덜 중요한 부위가 아니라 독침과 배설기관 같은 주요 부위를 스스로 떼어내고 위기를 모면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sc2-1.jpg » 핀셋으로 꼬리 끝부분을 집자 독침이 포함된 끝 마디를 자절한 전갈.

 

카밀로 마토니 아르헨티나 국립 코르도바 대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야외와 실험실에서 이 전갈의 자절 전략을 관찰하면서 전갈이 왜 이런 전략을 진화시켰는지를 규명하는 연구를 했다. 연구결과는 1월28일치 온라인 공개 과학저널 <플로스 원>에 실렸다.
 

연구자들은 남아메리카 열대림에서 이 속의 전갈 14종이 자절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핀셋으로 독침이 있는 ‘꼬리’(실은 배의 일부) 부위를 집으면 그 위치에 따라 1~4번째 어느 마디라도 잘라냈다.
 

잘린 꼬리는 몇 초 동안 꿈틀댔고 만지면 반응을 했으며, 잘린 독침으로 쏘려는 행동도 했다. 거미의 예처럼 꼬리의 일부를 내주고 포식자로부터 회피하려는 전략임이 분명했다.

 

sc5.jpg » 자절로 독침이 사라진 수컷이 귀뚜라미를 잡아먹는 모습. 자절은 생존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행동이 의도적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은 마취를 했을 때 같은 자극에도 자절이 일어나지 않았고, 몸의 다른 부위를 잡으면 꼬리를 자르지 않는다는 데서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야생 전갈의 5~8%에서 자절한 개체가 발견되는 것으로 미뤄 이 전략이 꽤 흔하게 쓰인다고 보았다.
 

자절 뒤 생존율도 높았다. 몸의 일부를 자른 모든 개체가 3주까지 생존했다. 실험한 22마리 중 한 마리만 25일 뒤 사망했고 나머지는 8달까지 살았다.

 

sc4-1.jpg » 자절 5일 뒤 마디 상처가 모두 아문 모습.  
 

이런 높은 생존율이 놀라운 것은 잘라내는 부위에 소화관의 일부와 독침, 그리고 항문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자절한 개체의 상처는 매우 신속하게 아물어 5일이면 완전히 나았다. 떨어져 나간 부위는 다시 재생되지 않는다.
 

문제는 상처가 아물면서 소화관까지 폐쇄된다는 점이다. 배설할 길이 완전히 막히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주사전자현미경으로 배설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배 아래에 쌓여 배가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을 확인했다. 일부 개체에서는 뱃속의 압력이 너무 커져서 끄트머리 마디가 추가로 떨어져 나가면서 배설물이 빠져나가는 일도 벌어졌다. 배설이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주요 사냥 무기인 독침도 없어졌기 때문에 자절을 한 개체는 집게를 이용해 작은 먹이를 사냥했다.
 

sc7.jpg » 배설을 하지 못해 배설물(흰색)이 뱃속에 쌓여 배가 부풀어 있는 모습.

 

특이하게도 자절 행동을 하는 것은 주로 수컷 성체이고 어린 개체나 암컷은 거의 하지 않았다. 꼬리를 일부 잘라낸 수컷은 암컷과의 짝짓기도 무난해 해냈다. 연구자들은 수컷은 번식을 위해 부지런히 암컷을 찾아 돌아다녀야 하고 이 과정에서 포식자에 붙잡힐 확률도 높아 자절 전략을 택하게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반대로 암컷은 뱃속에서 새끼를 길러야 하기 때문에 큰 먹이를 먹어야 하고 주요 사냥 무기인 독침을 포기하기 힘들다. 또 배설을 하지 못한다면 뱃속에 새끼가 차지할 공간도 줄어든다. 상대적으로 수명이 긴 것도 자절을 하지 않는 적응을 하도록 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았다.
 

또 어린 개체는 일찍부터 소중한 장기를 포기하지 않는 쪽으로 적응했을 것이다. 어쨌든 수컷 전갈의 자절은 진화과정에서 손익계산이 유리한 쪽으로 결론이 난 행동인 셈이다. 수컷 전갈에게, 세계 최악인 8달 동안의 변비를 견딜 만큼 생명은 소중하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attoni CI, Garcia-Hernandez S, Botero-Trujillo R, Ochoa JA, Ojanguren-Affilastro AA, Pintoda-Rocha R, et al. (2015) Scorpion Sheds ‘Tail’ to Escape: Consequences and Implications of Autotomy in Scorpions (Buthidae: Ananteris). PLoS ONE 10(1): e0116639. doi:10.1371/journal.pone.0116639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마토니 외 <플로스 원>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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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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