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 유네스코 보전구역 안 전나무 수백 그루 ‘싹둑’

조홍섭 2015. 04. 01
조회수 86165 추천수 0

일제 때 심은 아름드리 전나무 수백그루, 태풍 피해 막는다며 베어내

보전관리할 생물권보전구역 완충지역 위치, 주민들 "큰 태풍 피해 없어"

 

abis1.jpg »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직동리 새말과 인접한 광릉시험림의 전나무숲이 20~30m 폭으로 머리를 깎은 듯 벌채돼 있다.

 
전나무숲은 짙은 침엽수 향기와 쭉 뻗은 수형이 고와 많은 이들이 찾는다. 그러나 굵은 전나무로 이뤄진 숲을 볼 수 있는 곳은 오대산 월정사와 부안 내소사, 광릉수목원 등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광릉숲의 상징은 수목원 관통도로변에 남아있는 커다란 전나무들이다. 그러나 이들보다 훨씬 크고 건강한 전나무가 모여있는 숲이 국립수목원 건너편 광릉 시험림 안에, 지난달까지 남아있었다.

 

abis4.jpg » 직동리 새말 인접부의 숲이 모두 잘린 채 목재와 잎, 나뭇가지가 정리돼 쌓여있다.

 
1일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직동리 산 50-9번지 운악산(해발 265m) 자락의 전나무 숲은 지난 한 달 동안의 벌목작업으로 마치 머리카락을 이발기로 민 것처럼 기다란 맨 흙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슴높이 지름이 80㎝에 이르러 한아름에 품지 못할 정도로 큰 전나무 수백 그루가 베어져 목재로 쌓여있었다. 차곡차곡 쌓아놓은 목재 더미 아래에는 나무에서 떼어낸 짙푸른 전나무 잎과 잔가지가 여기저기 긴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abis7.jpg » 벌채되기 전의 전나무 숲은 마을숲이자 경관림이었다. 사진=조상희

 

abis8.jpg » 베어지기 전의 직동리 전나무 숲 모습. 전나무숲은 짙은 침엽수 향기와 곧은 모습으로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전나무 숲은 띠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숲 바로 앞에서 40년 동안 산 직동리 새말 주민 조상희(65)씨는 “전나무 숲은 오랜 세월 마을을 감싸 안아 온 마을숲이자 경관림인데 거의 모두 베어져 황당하다.”라고 말했다.
 
태어나서부터 이 마을에 산 주민 원갑재(69)씨는 “운악산은 과거 크낙새가 서식하던 곳이고 현재도 멸종위기종인 까막딱따구리가 사는 잘 보전된 숲”이라며 “초등학교 다닐 때 전나무에 그네를 매고 대동놀이 하던 곳인데 사라져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abis6.jpg » 광릉시험림 안에 심어놓은 아름드리 전나무. 이번에 벌채한 것들보다 늦게 심은 것이다.

 

abis5.jpg » 전나무 숲을 벌채한 산림생산기술연구소가 조성해 놓은 전나무 양묘장 모습.  
 
베어진 전나무 숲은 국립산림과학원의 광릉시험림 안에 위치해 있으며,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광릉숲의 완충지역에 해당한다. 광릉시험림의 전신은 임업시험장으로 100년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임학의 산실이다.
 
이 숲을 관리하는 산림생산기술연구소는 “태풍 등 집중호우 때 나무가 넘어질 우려가 있어 안전 차원에서 주택가 위험목을 제거한 것”이라고 밝혔다. 나무가 쓰러질 것을 우려한 주민들의 민원이 잦아 이런 조처를 했다는 것이다.
 
연구소가 밝힌 벌채 명세를 보면, 2월26~3월25일 동안 1.8㏊의 숲에서 일본 강점기인 1943년 조림한 전나무 0.8㏊를 비롯해 1920년 심은 낙엽송 0.5㏊, 1960년대 조림한 잣나무와 리기다소나무가 포함돼 있다. 수령이 전나무는 72년, 낙엽송은 95년으로 베어낸 나무는 거목이 대부분이다.

 

abis3.jpg » 벌목한 전나무는 수령 72년으로 곧고 굵어 목재 가치가 큰 것으로 보인다.
 
박정환 연구소장은 “주민 안전을 위한 벌채는 완충지역에서 가능한 행위”라며 “생물권보전지역에서 벌채한다는 오해를 막기 위해 사업목적을 알리는 현수막 등을 설치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광릉 시험림 안 전나무 거목에 대한 벌채를 두고 지역주민은 물론 환경단체 등에서 지나친 처사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불과 4년 전에 지정돼 광릉숲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내부에서 정부기관이 앞장서 벌목에 나선데다, 이처럼 대규모 벌목을 할 만큼 안전상의 문제가 큰지에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생물권보전지역에서 완충지역은 절대 보전이 이뤄지는 핵심지역과 인접한 곳이다. 광릉숲에서 핵심지역은 소리봉과 죽엽산을 중심으로 한 천연활엽수 극상림 755㏊이다(그림 참조).

 

abis9.jpg » 광릉숲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지역 구분. 붉은색과 초록색은 각각 핵심지역과 완충지역으로 보전 위주로 관리해야 하는 곳이다. 벌목지역은 광릉과 죽엽산 사이 완충지역에 위치한다. 그림=국립수목원
 
완충지역은 인공림 지역으로 생물다양성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이자 산림생물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는 곳으로 1657㏊가 지정돼 있다. 그 밖의 주거지, 경작지 등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2만 2053㏊는 전이지역이다.
 
기본적으로 완충지역은 보전을 중심으로 관리돼야 하는 곳이다. 따라서 전문가들과 생태적 영향 등을 협의하지 않고 완충지역에서 일방적으로 벌채를 할 수 있는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병천 ‘산과 자연의 친구 우이령사람들’ 회장은 “전나무는 태풍 때 뿌리가 뽑히지 않고 가지가 부러지기 때문에 가지 제거 등으로 사고 예방이 가능한데 숲을 모두 베어낸 것은 지나친 대응인 것 같다. 세계적 보호구역에 등재해 놓고 충분한 검토 없이 국가기관이 나서 훼손한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관통도로변 전나무는 쇠퇴해 씨앗도 잘 맺지 못해 이곳 전나무 숲이 ‘씨앗 은행’ 구실을 할 수도 있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벌채는 60가구가 사는 새말 주거지와 시험림의 경계를 이루는 전나무숲을 폭 20~30m 규모로 이뤄졌다. 주민들은 이렇게 대규모 벌채를 할 만큼 태풍 피해가 없었다고 말한다.
 
이곳 토박이인 주민 박성범(60)씨는 “그동안 태풍 때 나무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기억은 없고 오히려 마을이 혜택을 입었는데 숲만 망가뜨렸다.”라며 당국의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포천/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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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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