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개의 습격, 밥의 반란

조홍섭 2015. 04. 06
조회수 76595 추천수 0

남아공 백상아리 단골 먹이 케이프물개, 청새리상어 잡아 내장만 먹어

잠수부 2차례 목격 학술지에 보고, 남획으로 줄던 상어의 새 복병 주목

 

seal1.jpg » 청새리상어를 공격해 내장을 먹는 케이프물개. 해양 표면에서 일어나는 포식자의 행동 가운데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다. 사진=크리스 팔로우스

 

대서양의 차가운 용승류와 인도양의 난류가 만나는 남아프리카 남쪽 바다는 어족자원이 풍부해 많은 포식자가 몰려든다. 특히, 거대한 백상아리가 케이프물개를 사냥해 물 밖으로 집어던지고 이를 잡기 위해 뛰어오르는 모습이 놀라움을 안겨준다.
 
그러나 작은 물고기를 주로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진 케이프물개가 자기 크기의 청새리상어를 잡아먹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개가 상어의 밥이란 통념을 깬 관찰결과가 학계에 보고됐다.

 

seal6_Thomas Bjørkan _View_at_Cape_Point.jpg » 물개의 상어 포식이 목격된 바다에서 가까운 케이프 포인트의 전경. 사진=Thomas Bjørkan, 위키미디어 코먼스

 

<스미소니언 매거진>의 보도를 보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남단인 케이프포인트에서 잠수부 일을 하는 크리스 팔로우스는 2012년 관광객들과 함께 바깥 바다에서 상어를 관찰하고 있었다. 미끼에 이끌린 청새리상어 10마리가 몰려들었다.
 
그런데 이곳에 젊은 수컷 케이프물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보통 작은 물고기와 오징어 따위를 잡아먹는 물개가 노린 것은 뜻밖에도 상어였다.
 
이 물개는 크기가 자기만 한 1.4m 길이의 청새리상어를 공격했다. 배를 물어뜯어 구멍을 낸 뒤 속에서 위와 간 등 내장을 꺼내먹었다.

 

나머지는 먹지 않고 내버렸다. 이런 식으로 10마리의 상어 가운데 5마리를 차례로 죽였다. 익숙한 솜씨였다.

 

seal2.jpg » 케이프물개의 청새리상어 공격 모습. 사진=크리스 팔로우스

 

seal3.jpg » 상어를 물고 물 표면에 올라운 물개. 2012년 촬영한 장면이다. 사진=크리스 팔로우스  
 
20여년 잠수경력의 팔로우스가 물개의 이런 행동을 본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2004년에도 보트를 타고 가던 중 젊은 물개 한 마리가 다 자란 청새리상어를 추격해 잡은 뒤 내던지고 마침내 죽여 내장만 먹는 모습을 15분 이상 관찰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촬영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팔로우스는 두 번의 관찰결과가 단지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다른 해양학자들과 함께 학술지 <아프리카 해양학 저널> 최근호에 그 내용을 보고했다. 현장을 생생하게 촬영한 사진이 뒷받침돼 있던 것도 발표의 배경이었다.

 

seal5_Brian Dell Bdell555_Fur_Seals_on_Duiker_Island.jpg » 남아프리카의 케이프물개 서식지. 보호 덕분에 최근 개체수가 늘었다. 사진=Brian Dell Bdell555, 위키미디어 코먼스
 
물개는 일반적으로 상어의 먹이이다. 케이프물개는 이 해역 백상아리의 주요 먹이 동물이다. 물개가 새끼 상어나 그물에 걸려 죽은 상어를 먹는 일은 있어도 이처럼 자연 상태에서 포식자인 중형 상어를 잡아먹는 모습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위 포식자는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먹이 생물의 사망률과 위험 회피 행동을 좌우한다. 이 해역에서 청새리상어와 케이프물개는 모두 포식자로서 먹이인 물고기를 두고 경쟁한다.
 
케이프물개는 17~18세기 남획으로 크게 줄어 1920년에는 2000마리만 남았다. 그 후 보호조처로 회복해 현재 170만 마리로 불어났다. 최근엔 물고기를 다 잡아먹는다는 어민의 불평을 사고 있다.

 

seal4_Mark Conlin_NMFS _1024px-Prionace_glauca_1.jpg »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에 가장 널리 분포하는 상어인 청새리상어. 물고기와 오징어 등을 주로 잡아먹는 포식자이나 남획으로 위험 신호가 켜졌다. 사진=Mark Conlin? NMFS, 위키미디어 코먼스

 
청새리상어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분포하는 중간 크기의 상어이다. 남획으로 최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위험 근접종’으로 지정했다. 만일 이번 관찰처럼 물개에게 손쉽게 다량 잡아먹힌다면 이 상어의 보전 전략은 새롭게 짜여야 할 것이다.
 
잡은 먹이에서 에너지가 풍부한 부위만 먹는 행동은 드물지만 다른 포식자에서도 나타난다. 대서양대구를 먹는 하프바다표범이나, 고래에서 지방이 풍부한 부위만 먹는 백상아리에서 그런 행동이 보고된 바 있다.
 
연구자들은 “이런 행동이 우발적인지 일상적인 사냥 전술인지 소형 카메라 부착 연구 등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라고 논문에서 지적했다. 먹이의 딱딱한 부위만 확인할 수 있는 위 내용물과 배설물 조사방식으로는 내장만 먹는 이런 물개의 행동을 알 수 없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 Fallows, HP Benoît & N Hammerschlag (2015): Intraguild predation and partial consumption of blue sharks Prionace glauca by Cape fur seals Arctocephalus pusillus pusillus, African Journal of Marine Science, DOI: 10.2989/1814232X.2015.1013058
http://dx.doi.org/10.2989/1814232X.2015.101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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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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