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 속 옹달샘, 새가 와서 먹지요

김성호 2011. 10. 10
조회수 19026 추천수 1

유리딱새, 힝둥새, 새매까지 숲속의 귀한 새들이 줄지어 찾는 옹달샘

조심스럽게 접근해 다투지도, 독차지하지도 않고 얼른 마시고 떠나

 

몇 해 전, 1,200여 편의 동시를 영원한 선물로 남겨주시고 세상을 떠나신 분이 계십니다.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님입니다. 남기신 동시의 수도 상상을 훌쩍 뛰어넘지만 동시 중 동요의 노랫말이 된 것 또한 무려 800여 편이나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동요가 선생님의 동시에 곡을 붙인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아 <퐁당 퐁당>, <옹달샘>,<고추 먹고 맴맴>, <낮에 나온 반달>, <기찻길 옆>, <날아라 새들아>, <나리 나리 개나리>, <산바람 강바람>, <우산 셋이 나란히>, <어린이날 노래>, <빛나는 졸업장> 등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지냈다면 우선 나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또한 현재의 나는 지금의 모습이 아닌 어떤 다른 모습이 되어있을지 무척 궁금하기도 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이 순간까지 깊은 산속에 있는 옹달샘은 토끼와 노루가 먹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토끼는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고, 노루는 달밤에 숨바꼭질하다가 목마르면 달려 와 얼른 먹고 간다고 하셨는데,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런데 토끼와 노루 말고도 깊은 산 속에 있는 옹달샘을 찾는 친구가 또 있습니다. 선생님의 몸과 마음의 눈이 옹달샘을 지켜보고 계실 때에는 이 친구들이 다른 곳에서 놀고 있어 눈에 띄지 않았나 봅니다.

 

메마른 가을 산, 해가 떠오르며 냉랭한 숲의 한기를 밀어내기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온갖 새들이 물을 마시러 모여듭니다. 두 손을 모아 퍼내면 몇 번 지나지 않아 바로 바닥이 드러날 작은 옹달샘인데 수많은 새들이 넉넉히 목을 축이고 갑니다.

 

앞 친구들 빈 자리 채우며, 멀리서부터 조용히 접근해

 

새들이 옹달샘에 모여드는 과정을 찬찬히 지켜보는 것으로도 새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무만 무뚝뚝하게 서 있고, 흐르는 바람마저 멈춰 선다면 모든 것이 그대로 정지하는 가을 숲입니다.

 

그러한 숲의 고요함 너머로 귀를 손으로 감싸야 알아차릴 수 있는 아주 작은 크기의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귀에서 손을 떼어도 좋을 만큼 새소리가 점점 커질 즈음이면 새들이 하나 둘 씩 제 모습을 드러내줍니다.

 

아주 멀리서부터 분명 옹달샘을 향해 모여드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단숨에 날아오지는 않습니다. 아주 조금씩 무척 조심스럽게 접근합니다. 앞서는 친구 몇몇이 한 곳에 있다 이동하면 다음 친구들이 그 빈자리로 오고, 앞서는 친구가 다시 이동하면 뒤따라오는 친구들이 잠시 비었던 그 자리를 다시 채우는 식으로 접근을 합니다.

 

옹달샘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최종 나뭇가지까지 와서도 바로 내려앉지 않고 한참을 또 고민합니다. 한동안 주위를 살피던 친구가 마침내 나뭇가지를 떠나 옹달샘으로 내려와 물을 마시고 떠나면 뒤를 이어 몇 마리씩 내려 와 다시 물을 마시고 떠납니다.

 

한 무리의 새들이 그렇게 왔다 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무리의 새들이 와서 같은 방식으로 물을 먹고 갑니다. 혼자 또는 쌍을 이뤄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더라도 접근 방법은 같으며 이들은 무리와 무리 사이의 틈새를 이용하여 들를 때가 많습니다.

 

오늘의 첫 손님은 ‘쮸잉, 쮸잉’ 소리를 내는 검은머리방울새입니다. 옹달샘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나뭇가지에 앉아 한동안 주위를 살피던 친구가 드디어 물로 내려와 아주 짧은 시간에 물을 마시고 떠나자 뒤를 이어 몇 마리씩 내려 와 또 아주 급하게 물을 마시고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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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방울새

 

이 드넓은 숲에 비하면 옹달샘은 점에 해당합니다. 처음에는 어찌 이리도 쉽게 물을 찾을까 그것 참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는 오히려 당연한 능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손을 모아 몇 번 퍼내면 없어질 정도의 물이 고여 있는 곳을 정확히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더라면 새가 그 오랜 시간 동안 종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검은머리방울새가 떠나자 바로 박새, 진박새, 쇠박새, 곤줄박이의 순서로 박새과의 새들이 줄을 이어 총출동하여 물을 마시러 옵니다. 이 친구들은 서로 섞여 오기도 하는데 계곡에 접근하는 방식은 검은머리방울새와 거의 같지만 경계심을 보이는 정도는 많이 다릅니다.

 

한 나뭇가지에서 다른 나뭇가지로 이동하며 계곡에 모여드는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게다가 위장을 철저히 하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모를 리 없는 나의 존재는 아예 무시하는 듯합니다. 계곡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느긋하게 물을 마시고 더러 목욕을 하기도 합니다.

 

공중을 나는 새들에게 날개는 생명과도 같습니다. 따라서 틈만 나면 날개의 깃을 손질하며 청결을 유지하는데 날개 깃의 청결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목욕이기에 새들은 목욕을 자주하며 또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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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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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박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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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박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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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줄박이

 

박새과의 새들이 떠나자 동박새가 모습을 보입니다. 동박새는 박새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박새과가 아니라 동박새과의 새입니다. 동박새는 몸의 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육지에 잘 적응할 새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남해안의 도서지방에서 주로 서식하며 특히 동백꽃의 꿀을 즐겨 먹는 텃새이지만 근래에는 남부지방의 육지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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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박새

 

더 없이 귀하고 간절한 물일 터인데 새들이 서로 다투지 않는 것이 신통합니다. 아주 숨이 넘어가는 상황이 아니라면 일부러 충돌이 일어날 지경으로 치닫지 않아 보입니다. 주변에 있다가 옹달샘이 비어 있을 때 내려앉을 때가 대부분이며 목욕을 하더라도 홀로 차지한 채 오래 버티지도 않습니다.

 

동박새의 뒤를 이어 몸이 조금 큰 친구가 나타납니다. 흰배지빠귀입니다. 흰배지빠귀는 접근하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계곡이 있는 곳에서 한참을 떨어진 곳으로부터 땅으로 내려 와 깡충깡충 뛰듯 이동하여 물로 옵니다.

 

흰배지빠귀는 꽤나 목이 말랐었나 봅니다. 벌컥 벌컥 들이키듯 물을 마시고 떠납니다. 다시 한 번 검은머리방울새 무리가 우르르 몰려왔다 또 그렇게 우르르 떠난 뒤로 ‘치칫, 치칫’ 소리를 내며 노랑턱멧새도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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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배지빠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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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턱멧새

 

귀한 몸께서도 결국 물을 마시러 나뭇가지를 떠나 내려옵니다. 봄과 가을에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나그네새이기도 하며, 드문 경우지만 지금 이곳과 같이 남부지방에서는 월동을 하기도 하는 유리딱새입니다. 유리딱새는 생김새도 그렇지만 새침데기 같은 구석이 있습니다.

 

근처에 왔다가도 다른 새들이 물을 마시고 있으면 잠시도 기다리지 않고 휙 날아갔다가 얼마 뒤에 다시 옵니다. 세 번을 그리하며 나의 애를 태우더니 이제야 빈 옹달샘으로 내려옵니다. 물 먼저 천천히 마신 뒤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혼자 목욕을 하고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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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딱새

 

숲의 노래꾼 직박구리 역시 갈증이 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직박구리는 한 쌍으로 보이는 두 마리가 같이 왔는데 물을 마시는 것까지도 저리 할 필요가 있나 할 정도로 위계질서가 아주 확실합니다. 먹이를 먹을 때 그 순위가 아주 철저한 것은 자주 보았으나 물을 마시는 것마저 이리 할 줄을 몰랐습니다.

 

하나가 물을 다 마실 동안 하나는 옆에서 그림같이 기다려야 합니다. 직박구리도 흰배지빠뀌처럼 경계심이 아주 강합니다. 그러고 보니 생각과는 다르게 작은 새들보다 큰 새들이 오히려 더 경계심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몸이 커서 나를 포함하여 천적에게 더 쉽게 노출될 것을 고려하면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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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

 

이런 깊은 숲에는 쉽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 새들도 ‘쯔잇, 쯔잇’ 소리를 내며 계곡을 찾아왔습니다. 힝둥새입니다. 십여 마리는 되어 보입니다. 힝둥새는 노랑할미새, 알락할미새, 백할미새, 검은턱할미새, 검은등할미새와 함께 할미새과에 속하는 새로 주로 하천 주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할미새과의 새들은 가만히 있을 때 특히 꼬리를 위아래로 까딱까딱 흔드는 행동을 자주 하는데 힝둥새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에 접근하는 방식은 흰배지빠귀처럼 계곡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땅을 걷듯이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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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힝둥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가 계곡에 나타났습니다. 옹달샘은 작은 새를 부르고, 작은 새는 다시 더 크고 사나운 새를 부른 것입니다. 새매가 소리도 없이 슬며시 나타나 계곡이 잘 보이는 소나무 죽은 가지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노리는 새는 무리를 지어 물을 마시러 오는 검은머리방울새였던 모양입니다. 다시 한 번 검은머리방울새 한 무리가 몰려 왔고 줄을 이어 나뭇가지를 떠나 계곡으로 내려오는 것 중 하나를 공중에서 그대로 낚아 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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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매

 

그러나 새매의 위협마저 감수한 채 새들은 여전히 옹달샘으로 모여듭니다. 이제 목숨보다 물이 더 귀한 세상이 된 것이 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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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큰오색딱따구리 육아일기><동고비와 함께한 80일><까막딱따구리의 숲>의 저자로서 새가 둥지를 틀고 어린 새들을 키워내는 번식일정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로 세세히 기록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만난 생명들의 20년 이야기를 담은 생태에세이 <나의 생명수업>을 펴냈다.
이메일 : genexp@cho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phil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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