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 된 너구리 클라라 ‘사랑의 덫’을 가르치다

김봉균 2015. 0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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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때 구조한 보호자 각인 효과, 사람 너무 따라 야생 복귀 불가능

서산 버드랜드서 야생동물 구조 가르치는 교육자 노릇 톡톡

 

cla5.jpg » 너구리 클라라는 사람과 떨어지면 불안해 할 정도로 사람을 따르지만 답답한 계류장을 벗어나 산책하는 걸 무엇보다 좋아한다.

 

충남 서산 버드랜드에 위치한 야생동물 치료센터에는 여러 교육동물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고를 겪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영구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대중 교육에 쓰이는 동물을 가리킵니다.
 
이 동물을 통해 야생동물 보호의 중요성과 야생동물을 위협하는 요인을 알리고, 동물의 전반적인 특징 등을 생생하게 알리는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버드랜드에는 그 이름과 취지에 걸맞게 교육동물의 대부분은 조류입니다. 그러나 이곳의 유일한 포유류 교육동물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바로 너구리 ‘클라라와 데이비드’입니다. 오늘은 먼저 클라라를 소개합니다.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와 치료센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클라라’란 이름을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마스코트와 같은 존재이지요.
 
클라라는 2013년 7월 저희 곁으로 왔습니다. 당시 태어난 지 약 2~3개월 정도로 추정되는 작디작은 새끼 너구리였죠.
 
클라라가 ‘13-632 너구리’로 접수되었던 당시엔 새끼 너구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굉장히 많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3-632 너구리’ 역시 여러 새끼 너구리 중 한 마리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습니다만, 이 친구만큼은 굉장히 특별했습니다. 좋지 않은 의미에서 말이죠.
 
cla2.jpg »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다른 새끼 너구리들보다 훨씬 더 왜소하고 연약했던 당시의 ‘클라라’ 모습.  
 
클라라는 5월 중순 동네 야산에서 산책을 즐기던 어느 일반인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희에게 오기까지 약 2개월간 그 일반인의 집에서 보호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클라라 보호자는 너구리나 야생동물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영양분이 균형 잡히지 않은 먹이를 준 것이 분명했습니다.
 
클라라의 발육상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클라라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다른 너구리보다 훨씬 더 작았습니다. 심지어 다리도 휘어있었죠.
 
또 보호하는 기간 동안 관리가 소홀해 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겪었고 이로 인해 좌측 전완골과 우측 대퇴골에 골절이 발생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클라라는 사람의 손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졸졸 따라다니기까지 했으니 말이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전혀 없는 강아지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보호자가 사랑을 듬뿍 담아 클라라를 돌보았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클라라는 사람의 품에 안겨 사랑을 받으며, 사람을 어미처럼 여겼을 것입니다.
 
클라라에게 향했던 사람의 사랑과, 그 사랑을 신뢰했던 야생동물 사이의 2개월은, 짧지만 한 생명의 평생을 결정할 만큼 강렬했습니다.
 
cla3.jpg » 흡사 강아지와 같았던 너구리 클라라, 왜 클라라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까요?  
 
야생동물이 사람에게 ‘각인’이 되거나 따르게 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런 친구들은 야생동물이지만 야생에서 살아가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사람에게 가까워진 동물은 사람 거주지 주변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이는 수많은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주지 주변의 도로 위에서 차량 충돌 사고를 당해 싸늘하게 식어갈 수 있고, 사람에게 붙잡히거나 개, 고양이에 물려 희생될 가능성이 매우 커집니다.
 
때문에 저희도 새끼동물을 돌볼 땐 긍정적인 자극을 줄여 야생동물에게 사람이 익숙해지는 것을 막고자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cla4.jpg » 새끼 동물을 관리할 때는 최대한 사람에 의한 자극을 줄여야 하고, 먹이를 주거나 접근이 필요하다면 가면을 쓰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클라라를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보았습니다. 최대한 사람의 접촉을 줄이며 보살피고, 이중 각인을 기대하며 다른 너구리들과 합사도 시켜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너구리들에 공격당하기 일쑤였죠. 결국, 이 너구리는 다시 사람의 품에 안길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딱딱한 ‘13-632 너구리’ 대신 ‘클라라’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야생동물은 반려동물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더군다나 가정집에서 기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클라라를 처음 구조하여 보호하셨던 분은 클라라를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에 사랑을 듬뿍 담아 돌보았지만, 결국 그 애틋한 마음이 클라라의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평생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좁은 공간에서나마 사람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클라라의 야생 복귀를 막은 건 다름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잘못된 사랑이 덫이 된 셈이죠.

 

cla6.jpg » 산책 도중 도로 경계석에 자신의 냄새를 묻혀 영역을 표시하는 클라라. 야생의 본능은 여전히 살아있다.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있지만 클라라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교육동물로 활약하며, 많은 이에게 부적절한 구조 및 사육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야생동물의 삶을 대표로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클라라가 가장 좋아하는 건 산책 시간입니다. 날씨가 굉장히 궂은 날이 아니라면 매일 1~2회, 최소 30분 이상 답답한 계류장 밖으로 나와 산책을 즐깁니다.
 
산책을 할 때에는 이곳저곳의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다가 몸을 비비거나 소변을 묻히는 등 자신의 영역표시를 하기도 하지요. 겁이 많아 산책을 하다가도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살짝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산책을 할 수 없는 날에는 계류장 안에서 자신을 돌봐주는 재활사와 뒤엉켜 놉니다.
 
cla7.jpg  
 
cla8.jpg » 산책을 하거나 자신을 돌봐주는 재활사와 뒤엉켜 노는 것을 좋아하는 클라라.  
 


2013년 10월에는 너구리 ‘데이비드’와 부부의 연을 맺기도 했습니다. 다음 편에서 다루겠지만 데이비드는 클라라와 같은 해 차량에 치는 사고를 겪어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다가 피치 못할 사고로 인해 이곳에 오게 되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며 지내고 있습니다.
 
cla1.jpg » 왼쪽이 클라라 오른쪽이 데이비드입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사연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지만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부 사이가 되었습니다. 
 
비록 클라라가 나름 잘 지내고 있고,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보호받고 있다 하더라도 필자는 클라라가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야생에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즐겁게 살아가지 않았을까요?
 
어떤 사고에 의해 신체 일부가 훼손당해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동물들도 안타깝지만, 신체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단지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클라라는 어찌 보면 더욱 안타깝습니다.
 
다시는 클라라와 같은 친구들이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클라라가 이곳에서 교육동물로서 일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마 클라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cla10.jpg » 클라라의 눈동자에 비치는 철망이 보이시나요? 저 눈동자에 자연이 비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봉균/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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